멋지게 나이 들어가기 위한 노년의 태도

특집 | 노년의 삶은 정신적 원숙함을 향한 여정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는 노년의 삶
건강한 워라밸을 추구하자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초고령 사회 속 노년의 인식
대학생들로 붐비는 수원역에서 전철을 탔다. 전철이 수원역을 막 출발하려는데 자리에 앉아 있던 남학생 두 명이 벌떡 일어났다. 어르신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려는가 했더니 웬걸 매력적인 여학생 두 명을 위해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경로석이란 ‘경건하게 앉아 노인을 생각하는 자리’요, ‘경우에 따라 노인이 앉으실 수 있는 자리’라는 학생들 농담을 엿듣자니 씁쓸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미국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동일한 사람이 25세, 52세 그리고 73세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각각의 얼굴에 점수를 매기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대다수 대학생들이 73세 얼굴 사진에 가장 낮은 점수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에 대한 전반적 인식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실례라 하겠다.

일찍이 인구학자 토레스 길은 4세대 사회를 지나 5세대 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화두로 세대 간 공존 및 공생을 지목한 바 있다. 5세대 사회라 함은 나를 기준으로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세대가 모두 함께 살아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한데 한국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함께 살지 않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족이 아니라’는 응답이 최근 2년 사이 두 배가 늘었다고 한다.

노년의 의미는 충만함을 느끼는 삶, 젊은 시절의 노고를 보상받는 시기라는 긍정적 인식과 함께, 육체적 쇠락으로 고통받는 삶, 사회적 소외가 증가하는 시기라는 부정적 인식이 충돌하고 있다. 심지어 노인 자살률 및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노인 부양을 둘러싼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노인 고독사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함에 따라, 노인을 향한 존경심과 효도심이 살아 있던 전통 사회로 돌아갈 것을 희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에 이르는 초고령 사회는 역사상 처음 등장한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요, 개인적으로도 노년기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the road never travelled)”임이 분명하다. 그런 만큼 고령 사회 및 노년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신한 상상력에 기반한 미래지향적 패러다임이 요구된다는 생각이다.

노년을 바라보는 사회학적 관점
노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사회학적 관점 내부에서도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해왔다. 1세대 고령화 이론은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노년의 의미를 규정했다. 연로함이란 신체적 차원에서 기능적 감퇴를 수반하는 것이요, 심리적 정서적 인지적 측면에서도 다양한 유형의 쇠퇴 및 쇠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노인이 되면 그에 걸맞은 사회적 자리 및 역할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원래는 ‘건강한 성숙’에 초점을 맞추려 했지만, 노인이 되면 일자리든 사회적 자리든 물러나고 양보해야 한다는 “역할 퇴장론(disengagement theory)”으로 해석되면서, 노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뒤를 이어 등장한 2세대 고령화 이론은 생애 주기론(life course)의 관점에서 누구나 예외 없이 노년기를 지나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단, 어떠한 시대적 배경과 사회 구조적 환경하에서 생물학적 노년기를 지나가게 되는가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일례로 평균 기대 수명이 60세에 못 미쳤을 때는 환갑을 사회적 축복이자 개인적 행운으로 받아들였지만, 평균 기대 수명이 80대 중반으로 연장되면서 환갑의 의미는 획기적으로 달라졌듯이 말이다. 급격한 사회 변화를 배경으로 노년의 의미가 역동적으로 구성되고 있음에 주목한 관점이라 하겠다.

최근 등장한 3세대 고령화 이론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노인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에도 노인이 소수 집단으로 인식되고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실제로 노인 파워가 강한 사회일수록 연금 의료 조세 등의 영역에서 노인친화적 정책이 다수 만들어지고 있고, 노인 파워가 약한 사회일수록 노인의 주변화가 심화되고 노인 정책 또한 빈곤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요즘 한국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제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복지를 자랑하는 스위스에서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혜택이 굳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기 위한 노년의 태도
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성인 발달 과정에 대한 연구가 자연스럽게 축적됨에 따라,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노년의 자화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구로는 조지 베일런트 박사를 중심으로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가 지난 50여 년에 걸쳐 추진했던 성과를 들 수 있다. 하버드대 신입생 시절부터 50여 년 이상을 추적하며 성인 발달 과정을 기록한 연구 결과는 흥미진진함으로 가득하다.

하버드대 연구팀이 밝혀낸 결론인즉, 인간은 사춘기로부터 중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고 성장 성숙한다는 것이었다. 60세 이후의 신체적 건강은 50세 이전의 생활 습관에 좌우된다는 상식적 발견을 넘어, 60대 이후 재혼을 통해 최상의 파트너를 만나 행복한 노년을 보낸 사례들, 젊은 시절에는 내성적 성격에 친구 하나 없이 외톨이로 보냈으나 60대 이후 사교성을 개발해 활발한 사회 활동에 성공한 사례들, 젊은 시절 도박이나 약물 중독에 시달렸으나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고통을 멋지게 승화한 사례들이 연구팀 보고서에는 무수히 등장한다.

더더욱 흥미로운 점은 ‘멋지게 나이 들어감(aging well)’을 성공적으로 실현한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외부의 환경적 요인이 아니라 내면의 “태도”라는 사실이었다. 곧 평안하고 풍요로운 노년을 보내는 데는 성별 차이도 인종 차이도 드러나지 않았고,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는지도 어린 시절의 부모 자녀 관계가 친밀했는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멋지게 나이 들어감’의 주인공들은 환경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향한 믿음과 자신의 인생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를 기반으로 노년기에 이르러서도 정신적 성장과 정서적 성숙을 도모하는 동시에, 자신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함은 물론, 전진해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합리적으로 선별할 수 있는 현명함을 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윌리엄 새들러의 작품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속에는, 70세 넘어 네 번째 에이지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일련의 시사점이 담겨 있다. 첫 출발은 노년기에 걸맞은 자신의 정체성을 갖추도록 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헛된 꿈을 꾸기도 하지만, 생애 주기의 모든 시기가 고유한 나름의 의미를 갖는 만큼, 노년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가운데 삶의 의미와 방향감각을 잃지 않도록 한다.

다음으로는 노년기에 어울리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실천하도록 한다. 워라밸의 원래 의미는 생계를 위한 일, 건강한 가족과 훌륭한 부모가 되는 일, 개인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일 사이에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흔히 워라밸은 젊은 층에게 한정된 이슈라 생각하지만 노년기에도 필히 추구해야 하는 과업임이 분명하다. 노년의 일은 ‘돈 버는 활동’에 머물지 않는다. 종교 활동을 필두로 자원봉사 활동, 취미 활동, 친구 관계처럼 시간을 보람 있고 의미 있게 채울 수 있는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 자녀 교육에서 해방된 노년기야말로 부부간 친밀성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시기이자, 지혜로운 조부모 역할을 통해 가족 전체의 건강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시기이다. 그동안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시기임 또한 기억할 일이다.

자신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배려 사이에 조화를 꾀하는 것도 성숙한 노년으로 가는 길 중 하나다. 배려심은 신체적 성장의 뒤를 이어 진행되는 심리적 성장의 핵심이라 한다. 배려심이 깊을수록 지나친 이기주의나 맹목적 이타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은 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관대함과 측은지심의 깊은 맛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은 너나없이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노년기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나 노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 일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년기의 삶이야말로 정신적 원숙함을 향한 여정임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사회적 규범과 노년 친화적 가치관이 널리 퍼져나가길 희망해본다.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에모리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사랑을 읽는다』 등이 있고, 공저로 『현대 한국인의 세대 경험과 문화』, 『오늘의 사회 이론가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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