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걷고 싶은 길 함양 선비문화탐방로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력,
깨어 있는 청정함을 배우다

함양 선비문화탐방로


조선왕조 500년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장수 국가였다. 500년을 지탱한 조선의 시대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선비정신’일지도 모른다.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하고, 학문 습득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옳은 일을 위해서는 사약(賜藥)도 두려워하지 않던 정신력. 이처럼 늘 깨어 있는 청정한 마음가짐이 선비들의 기조였다. 함양의 ‘선비문화탐방로’를 걸으며 그들의 혜안을 만나본다.

예로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했다. 낙동강을 품은 경북의 안동과 남강이 휘어 도는 경남의 함양은 빼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고장이다. 조선 전시 사림파의 대표적 학자인 정여창, 조선의 문신이자 시인이었던 유호인, 조선 중기 영호남의 인물 절반이 그의 제자라고 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교육자였던 정희보 등이 모두 함양 출신이다.

선비문화탐방로는 화림동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다. 출발 지점은 거연정으로 정했다. 거연(居然)은 ‘자연과 어울려 편안하게 산다’는 뜻이다. 그 이름에 어울리게 암반 위에 고즈넉하게 앉은 정자의 모습은 자연과 하나가 된 느낌이다. 17세기 처음 지어졌지만 화재와 서원철폐령 등으로 훼손이 반복되다가 19세기 말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다.


거연정에서 계곡을 따라 약 100m만 내려가면 군자정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5현으로 일컬어지는 정여창 선생을 기리며 1802년에 세운 정자다. 군자들이 쉬던 곳이라 해서 군자정이다. 채색도 없이 늙어가는 모습은 세속적인 것을 거부한 선비들의 청렴함을 닮았다.

옛사람들은 화림동 계곡을 팔담팔정(八潭八亭)이라고 불렀다. 여덟 개의 소(沼)와 여덟 개의 정자(亭子)가 있다는 뜻이다. 학식과 덕망은 물론이고 풍류까지 즐길 줄 알았던 선비들. 그들의 기품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정자가 동호정이다. 동호정은 거연정에서 탐방로를 따라 2km 정도 하류로 내려가야 한다. 탐방로는 계곡을 가까이 끌어안다가도 이내 저만치 발아래로 밀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계곡이 멀어져도 맑은 물소리는 내내 귓전을 맴돈다.

동호정은 1895년 건립되었고 1936년에 중수되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등에 업고 의주로 피난했다는 장만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웠다. 화림동 계곡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정자다. 정자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다듬지 않은 자연목 그대로이고 정자로 오르는 계단 역시 통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다. 화려한 단청으로 수놓은 정자는 그야말로 고색창연하다. 내부 지붕 아래에는 두 마리의 용이 마주 보고 있다. 한 마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물고기를 물고 있다. 물고기는 여의주의 또 다른 표현으로 모두 여유와 풍요를 상징한다.

동호정에 올라 계곡을 내려다보면 커다란 너럭바위가 시야의 절반을 차지한다. ‘차일암(遮日岩)’이라고 불리는 바위다. ‘해를 덮을 만큼 큰 바위’라는 의미의 차일암은 금적암(琴笛岩), 영가대(詠歌臺)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곳’과 ‘노래 부르던 장소’라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 옛 선비들은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학문을 논하곤 했다.

탐방로는 밭과 과수원을 지나 소박한 농촌마을로 이어진다. 수확이 끝난 들녘은 고단한 몸을 뉘고 포근한 겨울 한낮 햇빛을 즐긴다. 농가 처마 밑에 매달린 메주마저 노곤하게 낮잠을 잔다. 그렇게 약 3km를 걸으면 황암사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 순국한 곽준, 조종도를 비롯해 3,500명의 선열들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사당이다.

탐방로의 마지막 종착지는 농월정이다. 농월정은 화림동 계곡에서 풍광이 가장 수려한 곳이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계곡은 이곳 농월정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자랑한다. 기암 사이를 이리저리 휘어 도는 물줄기는 때로 온유하고 때로 강건하다. 이름도 기막히다. ‘달을 갖고 논다’는 의미의 농월정(弄月亭). 시적으로 풀어서 말하자면 ‘한 잔 술로 달을 희롱한다’는 의미다. 농월정 앞 커다란 암반에는 ‘花林洞 月淵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달이 떠오르면 이곳 암반에 고인 물 위에도 또 하나의 달이 차오르고 선비들은 그 달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시를 읊고는 했다.

옛길은 지금의 길과 사뭇 달랐다. 길을 내는 것이 어려워 물길을 가장 중요한 길로 여겼으며 그래서 내륙 깊숙한 강에 포구들이 형성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가장 정확한 길인 물길을 따라 걸었다. 그래서 강 옆에는 늘 길이 있었다. 함양의 선비문화탐방로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시를 읊었던 곳이다. 또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이었기에 과거를 보러 가던 영남의 유생들이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선비문화탐방로를 걷고 나면,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을 바위 하나에도 의미를 담던 선비들의 상념과 고독들이 산을 넘는 바람처럼 다가온다.

글과 사진 | 박나루(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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