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셉션>에 나타난
불교적 세계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은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거나 조작하는 특수 보안 요원들의 이야기로 자각몽보다 훨씬 리얼하고 디테일하다. 관객들은 현재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이 꿈속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플롯이 잘 짜여 있다. 이 작품은 많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 각본, 음향 편집,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생각은 바이러스와 같아서 강인한 생명력, 번식력, 전염성을 갖고 있다.”
주인공 코브는 아내 멜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국외로 떠돌고 있다. 코브와 멜은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인셉션 시험 도중 림보에 빠져 수십 년을 살다가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데 멜은 림보 상태를 현실로 인식하고 정작 현실로 돌아오자 정신적 혼란에 빠져 결국 자살한다. 코브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일본 기업가 사이토는 코브에게 사망한 경쟁 기업의 총수 아들 피셔에게 인셉션을 성공시켜, 아버지의 기업을 쪼개게 해달라고 주문한다. 성공하면 코브의 살인 혐의도 없애주고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코브는 기업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팀을 꾸린다.
코브 팀은 꿈의 안정성을 위해 강력한 진정제를 사용해 3단 구조의 꿈을 설계한다. 꿈에서 깨려면 음악을 사용하는데, 꿈속에서 사망하면 림보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있어 ‘킥’을 동기로 현실로 돌아온다는 계획도 세운다. 모든 팀원은 꿈과 현실을 구분해주는 토템을 준비한다. 코브의 토템은 팽이로 계속 돌면 꿈속이고 멈추면 현실이다.
팀원들은 어렵사리 피셔에게 접근하는데, 뜻밖에 피셔의 무의식은 추출에 대한 방어 훈련이 되어 있어 모두를 곤란한 상황에 빠뜨린다. 성공 확인을 위해 함께 들어간 사이토는 첫 단계에서 입은 상처로 사망해 림보에 빠진다. 유서프는 밴을 다리 난간에 충돌시켜 킥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밴은 강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무중력 상태에 빠지자 두 번째 단계의 아서는 엘리베이터의 추락을 통한 킥을 고안한다. 코브는 매 단계에서 자의식 속의 멜의 환영으로 방해를 받는다.
세 번째 단계에서 코브는 피셔의 자의식 방으로 들어가 ‘나는 아버지가 물려준 비즈니스 제국을 조각내야 해’ 대신에 ‘아버지는 나 스스로 뭔가를 성취하길 바랐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 아버지와 화해하게 만들고 목적도 달성한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하는 긍정적 감정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입증한다.
아리아드네와 코브는 림보로 들어가 멜과 맞선다. 멜은 자신이 현실이며 코브가 돌아가려는 세계가 바로 꿈이라며 정신 차릴 것을 요구한다. 약 제조자 임스도즐비하게 누워 꿈꾸는 노인들을 보여주며 그들은 매일 꿈을 꾸러 온다고 말한다.
“저들에게 꿈은 현실이야, 현실이 꿈이고.”
이 부분에서 장자의 심오한 질문이 떠오른다. 꿈속의 나비가 진짜인가, 아니면 현실의 내가 진짜인가?
코브는 드디어 아내 멜을 내려놓게 된다. 미로 설계자 아리아드네는 그리스신화에서 ‘테세우스’가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여신인데, 영화에서도 아리아드네는 코브를 끝까지 인도한다.
놀란 감독은 스토리텔링에 방해가 된다며 컴퓨터그래픽을 싫어했다. 촬영할 때 거대한 산악 눈사태를 찍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렸고, 끝없이 오르는 펜로즈 계단과 무중력 회전 복도에서의 격투 장면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했다. 커다란 화물 기차가 도로 한가운데를 질주하는 장면도 컴퓨터그래픽이 아니다. 보통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2,000샷 이상의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하는 데 반해 <인셉션>은 컴퓨터그래픽이 500샷 정도에 불과하다. 2020년에 개봉한 <테넷>에서 비행기가 차를 밀고 지나가며 조명 탑을 쓰러뜨리고 격납고와 부딪치며 불이 나는 스펙터클한 장면도 실제 보잉747 폭발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짜릿한 현장감을 주었다고 한다.
<인셉션>의 매력은 환상적 공간에 있다. 공간은 영화에서 필연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손꼽을 만한 장면은 코브가 미로를 설계할 건축학도 아리아드네를 데려간 꿈속 세계다. 공간 미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코브는 파리 거리에서 아리아드네에게 꿈속 가상 세계와 타인에게 인위적으로 생각을 심는 인셉션 개념을 설명한다. 이때 아리아드네가 물리 법칙을 비틀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고, 그 순간 갑자기 도로와 건물이 솟구치며 바닥이 천장이 되고 앞뒤가 바뀐다. 만유인력이나 중력의 법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진입한다. 이후 등장하는 거울 장면도 흥미롭다. 코브와 아리아드네가 거대한 거울을 바라보면, 안으로 수많은 코브의 모습이 펼쳐진다. 거울의 방향을 바꾸면 무수한 사람이 다니는 거리가 나타난다. 무엇이 실존이고 무엇이 허상인가? 과연 이 세계는 진실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꿈을 영혼의 활동으로 믿어왔다. 불교에서도 현세는 업(業)과 연기(緣起)에 의한 꿈과 같아서 이를 깨달을 때 윤회의 수레바퀴도 멈춘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줄곧 『금강경』의 마지막 사구게(四句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현상계의 모든 법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또한 이슬과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
이 영화가 불교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고 인간의 존재와 본질에 대한 깊은 의문에서 명작이 탄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 코브는 꿈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토템인 팽이를 돌린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고 반가워서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달려간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계속 돌고 있는 팽이가 클로즈업된다. 그렇다면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인데…. 놀란 감독은 열린 결말로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다. 그리고 엔딩 자막이 올라가면서 영화 속 인물들이 꿈에서 깨기 위해 듣던 노래,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가 흘러나온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 등을 통해 과학적 기반에 근거한 형이상학적 세계관으로 21세기의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인자
『월간문학』 소설로 등단했다. 서초문인협회 총무, 한국문인협회 역사문학탐사연구위원,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며, 서초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사람 뒈지게 패주고 싶던 날』, 『기가 막히게 좋은 세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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