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레스토랑 안백린 셰프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리

건강한 욕망을 위한
아름다운 비건을 위하여!

안백린
Philosopher chef, 천년식향 오너 셰프

제철 수박 생선회(출처 메종코리아)

무더운 여름, 나는 에어컨을 신나게 켠다. 차가운 바람에서 오는 행복감은, 녹는 빙산으로 서식지를 잃어가는 북극곰의 고통을 잊게 한다. 유기견을 입양한 다음 날 감당해야 하는 100만원 이상의 치료비는, 순간 ‘건강한’ 강아지라고 홍보하는 강아지 분양 가게에서 강아지를 사야 하나 생각하게 만든다. 비건을 지향하는 나 역시 손님에게 친절하게 비건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만, 설득하기 어려운 손님을 만날 때마다 이러한 모순들로 힘들다.

그래서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스테이크의 기름진 맛이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잊게 하고, 퇴근 후 치맥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느라 두 달도 살지 못한 닭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매일매일 우리는 윤리적 모순과 함께 산다. 때로는 어떻게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기도 하고 알면서 선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혹시나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이런 나의 모순들을 숨긴다. 그리고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편하니까. 마음 편안히 살고 싶으니까. 때로는 알아도 실천하기가 어려워서 포기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누군가를 비난할 때, 마음이 뜨끔하다. 나의 모순이 생각 나기 때문이다. 나의 모순을 직면하면서 나는 동물권 활동의 방향을 바꿨다. 매일 말로 비판하고 주장하기보다 그냥 일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맛있게 먹었으면 했다. 그들의 편안함(?)을 위해, 채식 요리를 했다.

5년 동안 나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돌며 요리를 배웠다. 미슐랭 레스토랑과 베지테리안 레스토랑에서! 거기서 나의 시야는 확장되었다. 고기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누구나 비건 요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눈앞에서 매일 보았기 때문이다.

비건 레스토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아이들이 함께 단란하게 식사하고, 보디빌더들도 비건 레스토랑에서 자주 보았다. 그 사람들에게 비건은 하나의 장르일 뿐이었다. 태국 음식 같은 것이었다. 비건은, 언제나 생각나면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었던 것이다.

일반 마트에 가도 비건 치즈, 비건 버터, 비건 요구르트, 비건 냉동 피자가 수십 가지 있고, 비건이 아닌 것들과 섞여 있어서 비건인지 모르고 사게 된다. 그만큼 대중화되어 있고, 언제나 너무 쉽게, 때론 자기도 모르게 비건을 먹고 있다.

그곳에서는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비건 메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2021년 뉴욕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일레븐 매디슨 파크는 전 메뉴를 비건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 정도로 한국과 문화가 다르다.

또한 그곳에서는 사찰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해방촌에서 사찰 음식을 재해석한 ‘소식’이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했을 당시, 정말 많은 외국인들이 단골이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기상천외했다. 미슐랭 레스토랑보다 맛있다는 과찬을 받으며 어리둥절했다. 이러한 연속된 반응은 오리엔탈 순식물성 음식에 대한 가치 평가가 높다는 것을 뜻했다.

나는 맛있고 아름다운 요리로 일상을 바꾸는 것, 한국의 발효 철학을 담아 음식을 예술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비건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맛, 아름다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맞춤 요리로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것이 요리라는 언어가 갖는 힘이다. ‘동물을 죽이지 마세요!’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는 셰프로서 일상에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입으로, 향으로, 몇 시간의 경험으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었다. 그것이 BSc 의료생물학, MSc 영성 신학 건강을 전공하고, 의사로서 봉사 활동을 꿈꾸던 내가 현재 요리를 하는 이유다.

물론 모두가 즐거운 일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이가 갑자기 완벽한 윤리적인 선택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 세상을 쉽게 바꿀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OECD 국가에서 굶어 죽는 사람보다 과식으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인간은 욕망의 생명체다. 더 이상 음식의 양이 문제가 아니다. 한 끼의 식사가 어떤 욕망을 내포하는가? 그리고 그 욕망이 건강한 욕망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이 현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 건강한 욕망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 비록 나 자신은 생채소와 두유를 먹으며 살고 있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대체육을 맛보게 하고 싶다.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채소 본연의 맛의 극치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채소라고 믿기 어려운 고기와 치즈 맛으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싶다.
 
채소 떡갈비(출처 월간중앙)

훈연 제철 자색 감자 & 유황 홍 감자(출처 리빙센스)

왜 맛있어야 하는가? 맛있는 요리는, 마음속에 숨어 있는 모순을 더 쉽게 직면할 수 있게 한다. 왜 아름다워야 하는가? 아름다운 요리는, 그 모순을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사유 과정이 나에게 힘을(empowering) 준다. 이는 나는 변화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던 나의 모순과 직면하면서 얻은, 설득의 깨달음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3요소,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셰프로서 사회적 믿음과 인지도(에토스), 맛있고 아름다운 요리를 먹을 때의 나, 너, 우리의 행복감(파토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철학(로고스)이 있을 때, 즉 지속 가능한 사회가 나 자신도 위한 것임을 느낄 때, ‘강요’가 ‘설득’이 된다고 생각한다.

비건이 건강과 사회에 좋다는 당위성 또는 강요로 느껴지기보다, 스스로 만들고 선택한 식사가 나와 내 주변 환경을 조금 더 아름답게 했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이 그냥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면 좋겠다. 매일의 소비가 가치 소비가 되는, 그냥 일상적인 변화가 되며, 자신의 모순에 즐겁게 좌충우돌 직면하며, 어느새 채식을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 고기가 익숙한 사람들이, ‘비건인데 비건 아닌’ 요리를 먹고, 조금 더 몸이 편안해진다면, 언젠가는 생채소와 전통적인 사찰 음식을 좋아하게 될 것이리라.

한때는 불편했던, 나의 윤리적 모순이 비채식인과 채식인을 융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순의 불편함은 부정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떠한 에너지다. 그 에너지로 나는 매일 살아간다. 당신도 그 모순을 느끼고 싶지 않은가? 만약 느낀다면 감히 말한다. 모순의 에너지로 새로운 삶을 살아보시라!

안백린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의료 생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교환학생 과정을 밟던 중 시카고 장내세균연구소에서 일했다. 고기로 인한 의료 생물학적 고민을 하다가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 더럼대에서 MSc Spirituality, Theology and Health 석사 과정 후 음식과 인간의 회복된 관계를 위해 비건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해방촌에서 ‘소식’을 운영했고, 현재 천년식향 오너 셰프로 있으면서 음식, 문화, 욕망에 대한 글쓰기, 강연, 순식물성 쿠킹 클래스 등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나는 삶을 살고 있다. 저서로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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