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얼마나 마셔야 할까? | 일상 속 건강 지키기

물은 얼마나 마셔야 좋을까?

정지천
동국대학교 일산한방병원 한방내과 교수


중풍과 급성심근경색의 발병은 겨울에 많을 것 같지만 실은 7,8월에 가장 높다. 그 이유는 땀을 많이 흘려 수분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혈액량도 줄면서 피가 끈끈해지고 흐름도 느려져 혈전 생성이 쉬워진 때문이다. 체내 수분이 2% 이상 부족한 상태가 3개월 동안 지속되는 ‘만성 탈수’에 해당되는 사람이 인구의 70% 정도나 된다는 자료도 있다. 체내 수분량은 신생아기에는 70%가 넘고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치면서 점차 줄어서 노년기에는 53% 정도로 낮다.

한의학에서는 침, 위액, 장액, 땀, 소변 등 몸속의 모든 물을 총칭해 ‘진액(津液)’이라고 한다. 진액이 부족하면 5장6부의 기능과 기혈의 운행 그리고 음양의 평형에 이상이 생기게 되는데, 만성 탈수와 유사하다. 진액이 조금 부족하면 ‘조증(燥證)’인데, 입이 마르고 입술이 타며 콧속이 건조하고 피부가 거칠어지며 가려움증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비듬이 생기며 변비가 된다. 진액 부족이 심해지면 ‘음허증(陰虛證)’인데, 음기(陰氣 : 물 기운)가 부족하면 상대적으로 양기(陽氣 : 불 기운)가 많아지므로 손발이 뜨겁고 가슴이 화끈거리며 오후에 열이 조수처럼 달아올랐다 내려가고 밤이면 피부에 열감이나 가려움을 느끼고 소변이 진해지면서 줄게 된다. 조증이나 음허증은 노인에게 잘 생기는데, 몸이 쇠약해지고 심해지면 당뇨병, 중풍 등의 각종 병증이 유발된다. 진액 부족은 노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물을 많이 마셔야 건강에 좋다. 하루에 8잔은 마셔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과연 그럴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연구팀이 물 섭취량과 건강과의 관계를 다룬 과거 논문들을 검토한 결과, 하루 8잔의 물이 건강에 좋다고 권장하거나 주장한 논문은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많은 양의 물이 건강에 좋다는 증거가 전혀 없고, 하루 8잔의 물은 음식 중 채소, 과일, 차 등에 포함된 수분을 빼고 계산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물을 너무 많이 섭취할 경우 물 중독증, 염분 부족에 의한 저나트륨 혈증 등을 유발하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한의학에서는 물을 많이 마실 경우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보는데,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비장은 습기를 싫어하는데 물을 많이 마시면 비장에 습기가 많아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장은 5장의 하나로서 십이지장과 소화 효소의 역할에 해당되며 소화 흡수 기능을 총괄하기에 후천의 근본으로 중시된다. 노인이 되면서 선천의 근본인 신장의 정기가 부족해지는데, 만약 비장마저 허약해지면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므로 건강, 장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비장의 짝이 되는 위장은 건조를 싫어하기에 물을 적게 마셔도 좋지 않다. 둘째, ‘수독(水毒)’이 생긴다. 한의학에서 우리 몸의 3독은 ‘수(水)’, ‘습(濕)’, ‘담(痰)’이다. 습은 습기
이고, 담은 물이 쌓이고 열을 받아 끈적끈적해져 가래와 비슷한 형태로 된 것이다. 습과 담은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며, 특히 담은 성인병의 주된 원인이다.

물을 많이 마셔야 좋은 경우도 있다. 열이 나는 병, 비뇨기계 염증 질환(방광염, 요도염, 전립선염, 신우신염 등)이나 요로결석이 있으면 평소보다 많이 마셔야 한다. 또 폐렴, 기관지염 등 호흡기 질환이나 협심증 환자도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물을 마시는 양은 기후 상태, 각 개인의 체질과 활동량 등에 따라 다르다. 목이 마르면 마셔야지, 마르지도 않는데 일부러 마실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식인 쌀이 밀에 비해 수분 함유량이 훨씬 많고, 끼니마다 거의 국이나 찌개를 먹기에 이미 많은 물을 섭취하고 있으므로 서양 사람들만큼 별도로 물을 많이 마
실 필요가 없다. 다만 노인의 경우에는 갈증을 느끼는 반응이 줄어들기 때문에 목이 마르기 전에 미리 조금씩 마셔줄 필요가 있다.

정지천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한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울 동국한방병원 병원장, 서울 강남한방병원 병원장, 대한한방내과학회 부회장, 동국대의료원 부의료원장 겸 일산한방병원 병원장을 역임했으며, 2017년부터 대한체육회 의무위원회 위원, 대통령 한방의료자문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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