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2023년 상반기 6개월간 “단순하게 살자(미니멀 라이프)”를 주제로 캠페인을
진행하며 릴레이 칼럼을 싣는다.
가방의 무게는 삶의 무게
탁진현
단순함연구소 대표
지난 연말, 설악산의 봉정암을 홀로 올랐다. 배낭만은 가벼워야 할 것 같아서 1박 2일 일정임에도 최소한의 짐만 꾸렸다. 이렇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가벼운 배낭을 메고 천천히 걸어서일까. 봉정암에 도착하기까지 6시간이 걸렸지만, 그 여정이 그리 고되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가방을 메고 길을 걷는 건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이 무거우면 주위 풍경을 둘러볼 여유 없이 여정이 괴롭듯이, 우리 인생도 짐을 가득 떠안고 살아가면 버겁고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게 된다.
봉정암에서 돌아온 뒤, 나는 물건에 얽매이는 삶에서 더 벗어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집에 있는 물건 전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미 소유한 모든 물건이 가방 네 개에 다 들어갈 정도이지만, 최근 2년간 불필요한 것들이 늘어난 상태였다.
비울 것이 아닌 남길 것부터 골랐다. 장기간의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품만을 남기니, 차박용품과 화장품·옷·건강·디지털 용품들이 남아 있었다.
이 물건들을 보며 나는 내 안의 욕망과 마주했다. 즐거움을 늘리고 싶어서 산 차박용품, 노화에 대한 두려움에 산 화장품과 건강용품, 더 편하게 일하고 싶어서 산 디지털 용품 등 몸의 즐거움에 집착하는 나의 탐욕이 물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난 2년간 물건이 늘어난 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욕망으로 샀던 물건들을 비워내면서 소중한 가족과 어려운 이웃들 대신 내 몸의 안락과 행복을 우선하며 살아온 이기적인 집착이야말로 놓아버리고 싶었다.
요즘엔 종종 죽음과 환경을 생각하면서 더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태어난 날은 정해졌어도 죽는 날은 정해져 있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저세상으로 단 하나의 물건도 가져갈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최선의 것, 최선의 죽음은 무엇일까 한동안 고민했다.
나의 결론은 사랑하고 선행한 기억을 가지고 무엇에도 걸림 없이 미련도 없이 홀가분하게 떠나는 것이었다. 살면서 편리와 즐거움, 아름다움에 집착하며 물건을 늘리다 보면 몸과 집과 돈에 집착하게 되고,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할 시간과 선한 마음의 여유를 잃고 주변 사람들을 돌보지 못하게 된다. 이젠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후회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단순하고 봉사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내 마지막 소망이다.
그러기 위해 지구에도 폐를 끼치기 싫어서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사지 않고 싶다. 지난 10년간 비움을 실천하면서 마치 나비효과처럼 물건 하나가 지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침을 알게 되었다. 물질에 대한 지나친 탐욕은 현재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위기로 돌아오고 있다.
끝으로 법정 스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사들이고 차지하고 한동안 시들해지면 내버리는, 그래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소비의 순환에서 될 수 있는 한 벗어나고 싶다. 끝없이 형성되고 심화되어야 할 창조적인 인간이 어찌 한낱 물건의 소비자로 전락될 수 있단 말인가.”
탁진현
숭실대학교 미디어학부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신문사에서 대중문화 담당 기자로 일했다. 현재 단순함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단순한 삶, 미니멀 라이프를 글과 강의로 알리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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