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를 향한 접근법 | 불교와 평화

세계 평화를 향한 접근법

- 『달라이라마의 정치 철학』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라디오를 듣거나 신문을 읽을 때, 우리는 폭력, 범죄, 전쟁 그리고 재난에 대한 똑같은 슬픈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더 산업화된 사회에서 더 심각한 문제들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과학과 기술은 여러 분야에서 대단한 일을 해냈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과학과 기술에 너무 중점을 둔다면 정직과 이타주의를 열망하는 인간의 지식과 이해의 측면을 놓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물질적 발전과 영적, 인간적 가치의 발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위대한 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인도주의적 가치를 되살려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 개인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인도주의가 필수적이다.

2. 자비심은 세계 평화의 기둥이다.

3. 인도주의자가 이념에 상관없이 그렇게 하듯이, 모든 세계 종교는 이미 이렇게 세계 평화를 지지하고 있다.

4. 각자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기관을 형성할 보편적인 책임이 있다.

인간의 태도를 바꾸어 인간의 문제 해결하기
저는 행복에 대해 보다 일반적이고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적 평화, 경제적 발전,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 평화가 결합된 것입니다.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념, 피부색, 성별,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것에 대한 보편적인 책임감과 깊은 관심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책임이라는 이 생각의 전제는 바로 다른 모든 이들의 욕구가 내 것과 같다는 단순한 사실입니다. 모든 존재는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삶에 대해 자기중심적으로 접근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끊임없이 타인을 이용하려 한다면, 우리는 일시적인 이득은 얻을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행복조차 달성하지 못하고 세계 평화는 완전히 물 건너갈 겁니다. 우리는 한 사람 또는 한 집단의 행복이나 영광이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보편적인 삶의 과정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지녀야 합니다.

반면 인류가 일시적인 편의성만을 생각하며 여러 문제에 계속 접근한다면 미래 세대는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 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우리의 자원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를 보세요. 아무도 이 거대한 규모의 삼림 벌채가 기후, 토양, 그리고 지구 생태계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모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인류라는 가족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단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익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만약 현세대가 바로 지금 이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는 이에 대처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세계 평화의 기둥으로서의 자비심
저는 대승불교 전통 속에서 성장해서, 사랑과 자비가 세계 평화의 도덕적 뼈대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제가 말하는 자비심의 의미를 정의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가난한 이에게 연민이나 자비심을 가질 때, 여러분은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동정심을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비심은 이타적인 배려를 바탕으로 합니다. 반면에 아내, 남편, 자녀, 또는 가까운 친구에 대한 사랑은 보통 애착을 바탕으로 합니다. 애착이 변하면 당신의 친절함도 변하게 됩니다. 사라질지도 모르지요. 이는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애착이 아닌 이타심에 기반을 둡니다. 이 경우 여러분의 자비심은 그 존재가 계속 고통을 받고 있는 한 그 고통에 대한 인간적인 반응으로 남을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고 싶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보다 더 넓은 관점으로,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이 상대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연습할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해 진정한 자비심, 사랑과 존경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개인의 행복은 더 이상 의도적으로 이기적인 노력이 아니게 되고, 그 대신에 타인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든 과정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훨씬 양질의 부산물이 됩니다.

세계 평화를 위한 세계의 종교들
지금까지 논의한 원칙들은 모든 세계 종교들의 윤리적 가르침에 따른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이기심과 여러 문제의 근원을 안고 있는 훈련되지 않은 마음을 통제할 필요성에 동의하며, 각 종교는 평화롭고 훈련되고 윤리적이고 지혜로운 영적 상태로 가는 길을 가르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모든 종교의 메시지가 본질적으로 같다고 믿습니다. 교리의 차이는 문화적 영향뿐만 아니라 시대와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종교의 순수 형이상학적 측면을 고려할 때, 학문적 논쟁에는 끝이 없습니다. 다만 접근 방식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차이점을 따지기보다는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선을 위한 공통의 계율을 일상에서 실천하려 노력하는 쪽이 훨씬 유익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세계 각지에서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환영합니다. 특히 지금 이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만약 모든 종교가 인류의 진보를 주요 관심사로 삼는다면, 그들은 세계 평화를 위해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습니다. 종교 간 이해는 모든 종교가 협력하는 데 필요한 단결을 가져올 것입니다.

세계 평화를 걱정하는 종교 수행자들이 직면한 두 가지 주요 과제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종교 간 이해를 증진해 모든 종교가 실천 가능한 통일성을 지니도록 해야 합니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서로의 신념을 존중하고 인류의 안녕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강조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모든 인류의 마음에 와닿는 기본적인 영적 가치에 대한 실천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며, 인간의 전반적인 행복을 증진시켜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세계 모든 종교의 공통분모인 인도주의적 이상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두 단계를 통해 우리는 세계 평화에 필요한 영적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 각자 그리고 함께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관을 형성하는 개인의 힘
모든 나라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해는 국경을 넘어 국제 사회 전체를 포용해야 합니다. 실로 위협이나 실제 무력행사 없이 진심 어린 이해로 인한 진정한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한다면 세계의 문제는 더 커질 뿐입니다.

각 국가 내에서는 개인에게 행복할 권리를 주어야 하고, 국가 간에는 아무리 작은 국가의 복지라도 그에 대해 동등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한 제도가 다른 제도보다 낫고 모두가 그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다양한 정치 제도와 이념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며 인간 공동체 내의 다양한 성향과도 잘 맞습니다. 이 다양성은 인간이 행복을 향해 끊임없이 탐색하도록 합니다. 따라서 각 공동체는 자기 결정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체제를 자유롭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종교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종교란 그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어떤 집단이든 개인이든 이용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이용되어야 합니다. 각 구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종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정 종교를 수용하는 것이 다른 종교나 자신의 공동체를 거부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종교를 받아들인 이들은 그들 자신의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단절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공동체 안에서 그 구성원과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공동체에서 도피함으로써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없게 되는데, 사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종교의 근본적인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부활시키고 영속적인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에 있는 공통된 인도주의적 유산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디 이 글이 지구상에서 우리 모두를 한 가족으로 단결시키는 인간의 가치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한시라도 빨리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 이 글은 『달라이라마의 정치 철학』(허우성·허주형 번역, 도서출판 운주사 근간)에서 일부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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