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방예경』을 통해 본
존중의 가치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MZ세대의 최대 관심사 ‘공평함’
대한민국의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MZ세대의 주된 관심사는 ‘공평함’이다. 이는 아마도 공평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평하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평등하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은 연인들이 데이트할 때 더치페이(Dutch pay)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로 변하고 있다. 한 가지 상황을 살펴보자. 월 1회 저녁 식사 모임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식사 모임 시 서로의 취향에 따라 각각 다른 메뉴를 시켰다. 누군가는 분명히 상대적으로 비싼 음식을 시켰을 텐데, 이 상황에서 더치페이를 한다면 자신이 주문한 메뉴를 각자 계산해야 할까, 아니면 전체 가격을 1/n로 나눠야 할까? MZ세대의 방식은 당연히 전자이다.
최근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이슈 중 하나가 가족에 의해 불공평한 대우를 받은 연예인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이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불공평하다’라는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공평 vs. 평등’에 대한 가치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육방예경』 속 공평과 평등의 가치
『육방예경(六方禮經)』은 재가 불자의 윤리를 매우 간결하게 설하면서 일상생활의 지침을 제시하는 경전으로 『선생경(善生經)』이라고도 한다. 경전 속에서 선생(善生)이라는 이름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첫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이름이라는 의미이고, 둘째는 이 경전 속 부처님이 교육하시는 목적이 바로 선생, 즉 좋은 곳에 태어나는 것에 있다는 의미이다. 『육방예경』은 선생의 특이한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처님은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성안에 들어가 밥을 빌었다. 그때 성안에 선생이라는 장자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이른 아침에 성을 나와 동산으로 가서 소풍하고 갓 목욕하여 몸이 젖은 채로 동, 서, 남, 북, 상, 하의 모든 방위를 향해 두루 예배했다.”
부처님께서는 이 모습을 목격하시고 선생을 불러 그 사연을 물어보니 선생은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맹목적으로 이런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육방 예배를 부정치 않고 인정해주시되, 그 행위의 의미를 재정의해 비유 설법을 하신다. 그 설법의 핵심 내용은 육방에 공경을 표하는 행위를 통해 ‘모든 이들을 존중하겠다’라고 서원하는 것이다.
『육방예경』은 부처님의 인간관계론이다. 현대 자기 계발서의 고전으로 손에 꼽히는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1955)의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비롯한 인간관계를 논하는 수많은 텍스트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존중이다. 『육방예경』에 나타난 부처님의 인간관계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육방예경』에 나타난 존중하는 방법 중 공평과 평등에 대한 관점을 배우기 위해 육방 예배의 첫 번째 동방 예배인 부모와의 관계에서 존중을 표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선생아, 대개 사람의 자식이 된 자는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 부모에게 경순하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주면서 받들어 모자람이 없게 하는 것이다. 둘째, 무릇 할 일이 있으면 먼저 부모에게 사뢰는 것이다. 셋째, 부모의 하는 일에 순종하여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넷째, 부모의 바른 명령을 감히 어기지 않는 것이다. 다섯째, 부모가 하는 바른 직업을 끊이게 하지 않는 것이다.”
대략 2,600년의 시기적인 차이로 인해 다섯 가지 항목이 현대 한국 문화와 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핵심이 되는 마음가짐은 자녀로서 부모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존중은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다. 이어서 나오는 내용의 가르침은 부모로서 자녀를 존중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다.
“부모도 또 다섯 가지 일로써 그 아들을 사랑해야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자식을 제어하여 악을 행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가리키고 일러주어 그 착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그 사랑이 뼈 속까지 스며드는 것이다. 넷째, 자식을 위해 좋은 짝을 구하는 것이다. 다섯째, 때를 따라 그 쓰임을 대어주는 것이다.”
부모의 의무와 자녀의 의무를 비교하면 결코 그 내용이 평등하지 않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 공평하다. 관계 속에는 역할이 있다. 그리고 역할에 따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결코 쌍방 간의 평등함은 보장될 수 없다. 하지만 상호 할 수 있는 의무에 최선을 다한다면 공평하다. 이 의무의 핵심이 바로 존중이다. 부처님은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남편과 아내, 친척들끼리, 고용주와 고용인, 재가자와 출가자가 서로 의무를 다함으로써 존중을 표할 때 인간관계가 고통의 원인이 아닌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이렇게 강조하신다.
“선생아, 자식이 부모에게 경순하고 신실하게 받들면, 그는 안온하여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인간관계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 ‘수행(修行)’
『육방예경』의 구성상 인간관계론은 후반부에 나온다. 그렇다면 전반부에는 어떤 가르침이 담겨 있을까? 그것은 자신을 갈고닦는 수행에 관한 내용이다. 재가 불자를 위한 부처님의 자기 계발론, 천상을 비롯한 좋은 곳에 태어나는 수행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만일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네 가지 결업(結業)을 알고 네 곳에서 악행을 짓지 않으며 또 능히 여섯 가지 손재업(損財業)을 안다면 그야말로 선생이라 할 것이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4 악행을 떠나 육방을 예경한다면 이승에서 착하고 저승에서도 착한 갚음을 얻을 것이요, 이승에서 뿌리가 되면 저승에서도 뿌리가 될 것이다. 현재에서 지자(智者)의 칭찬하는 바대로 세상의 한 과를 얻으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드디어 하늘의 좋은 곳에 날 것이다.”
4 결업, 4 악행, 여섯 가지 손재업은 불자가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손재업은 재산을 잃도록 만드는 나쁜 습관에 관한 내용으로 매우 현실적이기에 이 부분을 소개한다.
“6 손재업은 무엇인가? 첫째는 술에 빠지는 것이다. 둘째는 노름질하는 것이다. 셋째는 방탕한 것이다. 넷째는 기악에 정신을 잃는 것이다. 다섯째는 악한 벗을 만나는 것이다. 여섯째는 게으른 것이니 이것을 6 손재업이라 한다.”
인간관계의 핵심이 ‘존중’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단순한 진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가족을 비롯한 다양한 인간관계로 인해 고통받는다. 왜 이 단순한 진실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 존중하는 태도는 입이나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동은 자기통제가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손재업 중 대표가 되는 것은 바로 술이다. 술 그 자체가 악업은 아니지만, 만악(萬惡)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술을 과하게 마시는 것은 손해라는 것이다. 알코올 의존증과 중독이 있다면 이미 재산에 큰 피해가 있었을 것이고, 이것은 그 자체로 가족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다. 각종 중독성 있는 행동들과 게으름 등 역시 마찬가지이니 여섯 가지 손재업만 피해도 인생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위해서는 선생의 수행법을 통한 자기 계발이 필요하다. 시계생천(施戒生天)으로 요약되는 재가 불자의 자기 계발 수행법을 삶 속에서 온전히 익힌 사람은 선행하게 되고, 선생의 인격을 갖춘 사람은 자연히 관계의 핵심인 존중을 실천할 수 있다. 이러한 수행 없이는 ‘존중, 존중, 존중’ 아무리 되뇌어도 결국 그림의 떡처럼 자신이 조절되지 못하니 상대를 존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표현한다. 사회적 관계에 웃고, 관계에 우는 것이 사람이다. 『육방예경』은 이 관계를 행복의 원천으로 만들기 위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항상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수행을 선행하고, 이 힘으로 관계 속에서 존중을 실천한다면 분명히 관계로 인해 환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수행 그리고 존중의 태도를 점검해봐야 한다. 새해를 기쁨의 관계로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발원해야 한다. 스스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불공평하다’라는 느낌을 받지 않는 건강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수행하면 좋겠다.
원빈 스님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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