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먼이란 무엇인가 |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먼이란 무엇인가

이한구
경희대학교 석좌교수


포스트휴먼(Posthuman)이란 정보혁명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인류다. 신인간이라 불리기도 한다. 신인간은 기계화된 인간이며, 동시에 인간화된 로봇이기도 하다. 신인간은 유령처럼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 서서히 우리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신인간이 등장하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다. 한 길에는 로봇 같은 인간이 걸어오고 있다. 현대의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몸에 기계를 접목해 반기계화된 초인간 사이보그다. 다른 길에서는 초지능으로 무장한 인간과 비슷한 로봇이 걸어오고 있다. 이 로봇은 조만간 감정과 의지까지도 갖추려 시도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을 닮은 인간: 초인간
첫 번째 길은 영국 작가 메리 셜리(Mary Shelly)가 약 200년 전에 발표한 괴기 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1818)』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네바의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죽은 자의 뼈로 244cm의 인형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는다. 여기서 괴물이 탄생한다. 이 괴물은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추악한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 대한 증오심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프랑켄슈타인』은 영화나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큰 히트를 쳤다.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평가는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입장도 있고, 신의 영역인 생명의 창조를 시도하는 인간의 오만함과 그 징벌로 보는 입장도 있다. 오늘날 우리의 관심을 끄는 관점은 프랑켄슈타인을 포스트휴먼의 원조로 보는 입장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은 이제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포스트휴먼이 된다.

<600만 불의 사나이>는 인간 기계화의 새로운 모델이다. 이후 이를 모방한 <슈퍼맨>, <배트맨> 등 비슷한 영화가 인기몰이를 했다. 지금도 이 비슷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직 우주비행사인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은 시험 비행 중 사고로 한쪽 눈과 한쪽 팔, 그리고 양다리를 잃고, 600만 불의 비용이 드는 수술을 받고 사이보그 요원이 된다. 이때 스티브의 능력은 보통 인간과 비교해 눈은 20배 줌, 열 감지 센서, 밤에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팔은 불도저급의 힘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다리는 시속 96km에다 강력한 점프 능력을 갖게 되었고, 원자력을 동력원으로 활용한다.

이제 스티브 오스틴은 보통 사람은 상대할 수 없는 슈퍼맨이 되어 활동한다. 슈퍼맨은 요즘 증강 현실이 주요 관심이듯이 증강 인간이다. 이것은 자연적 인간의 각종 능력을 몇 배로 보완하고 증대시킨 인간이다. 사실 증강 인간을 향한 추구는 오래된 셈이다. 지금은 일상화된 안경이나 임플란트, 보청기, 인공 심장만 해도 쇠퇴한 능력의 보완이기는 하지만 이들 기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태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을 우리는 곧 알 수 있다.

증강 인간의 탄생은 기계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 전부가 아니다. 인간의 생체 자체를 변형시키는 방법이 더욱 근본적일 수 있다. 유전자 조작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우리가 먹는 식탁의 많은 식자재들, 옥수수, 감자, 토마토, 수박 등은 대체로 유전자 조작 종자로 수확한 것들이다. 동물의 인공 수정은 말할 것도 없고, 유전자 가위로 선천성 질환을 임신 단계부터 예방하고 있으며, 줄기세포를 활용해 노후화된 신체 기관들을 교체하거나 재생시킨다. 영화 <써로게이트(Surrogates)>는 인간들이 인공 대리인을 내세워 사회생활을 하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 로봇 : 초지능
포스트휴먼에 이르는 다른 길은 기계의 인간화 길이다. 얼마 전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을 이기면서 인공지능의 위력이 세상에 알려졌다. 인공지능이란 컴퓨터의 연산 체계가 고도화된 것이다. 인공지능은 어떤 특수한 영역에만 작동하는 국소지능, 모든 영역에 통용되는 범용지능, 인간과 같은 수준의 초지능으로 상승해가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와 <바이센테니얼 맨>은 기계 인간을 형상화한 시도들이다. <터미네이터>는 1984년 상영된 공상과학 영화다. 무대는 서기 2029년 로스앤젤레스다. 핵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기계들은 인류를 말살하기 위해 소탕전을 벌이면서 터미네이터 T-800을 로스앤젤레스로 밀파한다. 이 기계 인간은 겉보기에는 인간이지만 몸속은 초합금으로 만들어진 로봇으로 인간과의 대화나 판단, 행동에서 인간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진화되어 있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세계적 공상과학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2005년 미국 뉴저지주가 배경이다. 한 남자가 가족을 위해 가사 도우미 로봇 ‘NRD-114’를 구입하고, 가족들이 이 로봇에 ‘앤드류’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앤드류는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감정과 의지까지도 겸비한 존재이다. 이 영화는 몇 가지 본질적인 문제들을 제기한다. 로봇과 인간과의 관계, 로봇의 권리, 인간의 조건에 관한 물음들이 그것이다.

앤드류는 기계 인간이지만 실제 인간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는 자유의지와 자기실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끝내는 영생의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이런 흐름의 연속선상에서 <그녀>(2014년), <엑스 마키나>(2015년) 등도 실제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의 로봇 인간을 그리고 있다.

특이점은 오는가?
이런 영화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새로운 세상을 의미하는 특이점은 오게 될까? 특이점이란 현재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원리나 기준이 전혀 적응되지 않는 지점을 의미한다. 그것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물리학에서 특이점은 특정 물리량이 정의되지 않거나 무한대가 되는 공간을 의미한다.

특이점을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보면 인공지능이 계속 발전하다가 끝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시점을 가리킨다. 구글의 엔지니어링 디렉터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2005년 『특이점이 온다』는 책을 출간한 후, 특이점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게 계속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029년에는 인공지능이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게 되어 인류와 인공지능이 협업하는 시대가 될 것이며, 2045년에는 인공지능과의 결합으로 인류의 육체적, 지적 능력이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특이점이 올 것이다.”

특이점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미래학자 제리 케플린(Jerry Kaplan)은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지만, 절대로 인간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이점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인간 뇌의 특성은 공감, 공유, 독창성, 혁신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 능력인 반면, 인공지능은 어떤 부분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겠지만, 이런 특성들을 모두 갖추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인간의 뇌와 비슷한 범용 인공지능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런 제약 없이 기술을 개발한다면 언젠가 특이점이 올 것이라 예감한다. 기술의 융합과 수확 가속의 법칙이 어느 정도 맞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특이점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
휴머니즘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인간다움(humanitas)의 추구를 통해 인류 보편의 행복과 복지를 실현하려는 사상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긍정하며, 인간을 모든 가치의 중심으로 보는 인간중심주의다. 휴머니즘은 서양의 문예부흥기에 발흥해 계몽주의를 통해 근대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근대적 휴머니즘, 즉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서 새롭게 등장하는 포스트휴먼의 관점에서 세계를 설명하려는 담론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첨단 기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를 변형해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개선하려는 문화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이것은 특히 트랜스휴머니즘이라 불리고, H+로 표기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고도화되어 현재 인간과 같은 조건을 모두 구비한다면, 인간과 같은 권리를 인공지능에게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의 논의에서는 생명과 기계, 정신과 물질, 인간과 동물의 전통적 이분법적 구분이 모두 해체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이성적 능력을 갖고 있다 해서 어떤 특권적 존재도 아니고 만물의 척도나 세상의 중심도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인간을 비롯해서 세계를 모두 새롭게 이해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이한구
현재 경희대 석좌교수이며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저서로 『역사학의 철학』, 『문명의 융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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