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민의 『대중지성, 금강경과 만나다』 | 정여울 작가의 책 읽기 세상 읽기

모든 사람이 최상의 진리를
성취하기를 바라는 마음

『대중지성, 금강경과 만나다』

이여민 지음, 북드라망 刊, 2022

그것이 승리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승리가 아니었다. 욕심을 채운 것이었다. 그것이 실패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실패가 아니었다. 깨달음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성공’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은 어리석은 욕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때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은 소중한 깨달음을 줄 때가 있다. 『대중지성, 금강경을 만나다』를 읽다 보니 자꾸만 그런 순간들이 생각났다. 그 어떤 사건도 그 순간에는 완전히 의미를 깨닫기 어렵다. 내 삶의 태도가 바뀔 때마다 과거의 사건들은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은 저자가 힘겨운 시절을 견뎌내고 더 깊은 깨달음을 얻도록 인도해준 『금강경』의 참된 의미를 찾아 떠나는 아름다운 지적 모험을 보여준다.

저자는 30여 년간 내과 의사로 일해왔고 이혼을 비롯한 여섯 번의 재판을 겪었다. 그 후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느낀 온갖 고통 속에서 그전에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금강경』의 메시지가 완전히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오는 체험을 한다. 많은 아픔을 겪으면서도 항상 『금강경』을 비롯한 경전과 인문학 서적을 읽는 지적 체험을 게을리하지 않은 저자는 마침내 『금강경』으로부터 고난을 헤쳐가는 마음의 길라잡이를 얻게 된다. 이 책은 『금강경』이 마치 다정한 친구나 살아 있는 스승처럼 인생에서 길을 잃었을 때 결정적인 깨달음을 주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인간관계의 온갖 번뇌와 슬픔으로 마음이 지칠 때, 분명 노력하면 해결될 줄 알았던 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을 때, 『금강경』은 읽고 또 읽을수록 더욱 싱그러운 깨달음을 주는 평생의 도반이 되어준 것이다.

여기서 ‘대중지성’이라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의 면벽수행 같은 처절한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반인도 『금강경』의 깨달음에 다다를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내포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대중지성이란 반드시 엘리트에 비해 지적 훈련이 덜 하다든가 스님에 비해 수련의 깊이가 덜 하다는 말이 아니다. 지은이가 인생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금강경』의 가르침을 길잡이 삼아 더 나은 삶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은 스님들의 동안거나 불교 학자들의 논문 못지않게 처절하고 절박한 깨달음의 과정이다. 대중지성의 장점은 논문이나 과학 실험 같은 전문성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럽고 구어체적인 문장 속에서 능히 『금강경』의 상징과 은유를 해독해낼 수 있는 삶의 내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맹렬하게 탐구하고 정확하게 논증해 한 문장 한 문장을 정성스럽게 수놓는 듯한 글쓰기의 정석을 보여준다.

이를 잘 들여다보니 ‘보시를 많이 하면 빨리 깨닫겠지!’ 하는 나의 욕심이 보인다. 이렇게 아상이 작동하는 마음 근저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불교의 진리-‘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무상하다’를 듣고 나는 사실 두려웠다.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변해서 지금 누리는 행복이 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문제는 내가 법을 보는 안목이 부족했고 두려움으로 인해 중생과 부처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중생을 벗어나 빨리 깨닫고 싶다는 욕심으로 행동했던 것이었다. 마음속 깊숙이 도사렸던 두려움은 곧 집착과 조급함으로 바뀌었다. 하루라도 먼저 깨달아 허무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무작정 많이 퍼주는’ 것이 내게는 보시였다. (…) 보시하는 행위의 밑바닥에는 ‘나는 이 정도는 한다’라는 아상은 물론이고 깨달음이라는 결과에 빨리 도달하기를 바라는 욕망이 있었다. 즉 아상과 중생상이 강하게 작동하여, ‘대단한 나’라는 아상과 ‘부처가 되기 위한 중생일 뿐인 나’라는 중생상에 얽매여도 너무 얽매인 보시였다. - 『대중지성, 금강경을 만나다』 중에서

대중지성의 한 사람으로서 지은이가 기울인 노력은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탐험가나 고도의 지적 실험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학자의 노력에 비해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지은이는 그야말로 ‘일상’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전투 속에서 『금강경』의 눈부신 깨달음을 실천해온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어려운 학술 용어도 없이 『금강경』의 가르침을 일상의 화법으로 해석하고 실천하는 지은이의 삶 자체가 또 하나의 참신한 21세기 버전의 새로운 『금강경』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그때 그 시절 정말 어리석었구나, 욕심을 열정으로 착각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제는 그때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싶어진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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