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 문화를 이끌어온 핵심, 사찰 | 불교의 시선으로 보는 음식

한국 음식 문화를
이끌어온 핵심, 사찰

공만식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음식문화학 담당 대우교수


한국 만두의 기원을 대부분의 학자들은 고려 충렬왕 시기(1299년) 고려가요인 <쌍화점(雙花店)>의 ‘쌍화(雙花)’로 주장하며 만두에 관한 논의는 조선 시대 음식서에 기반해 조선 시대 만두에 관한 논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불교 문헌을 이용해 고려 시대 만두 문화를 고찰해보면 1200년대 초에 고려 사회는 불교 사찰이 주도하는 채식 만두의 전통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 문인인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이규보와 평소 교류가 있었던 불교 승려인 수기선사(守其禪師)가 이규보에게 혼돈(餛飩) 만두를 선물했고 이규보는 그에 대한 감사의 시를 남기고 있다. 이 혼돈 만두에 대한 몇 개의 시를 통해 이규보 당시의 고려 불교 사찰 채식 만두인 혼돈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들 시가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고려 시대 불교 사찰의 혼돈 만두는 ‘작은 사각형의 만두로 국물을 조미하지 않고 푹 끓였으며 불교 사찰에서 아침 공양으로 이용한 물만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불교 채식 만두는 찐만두인 ‘산함(餕餡)’이 고려 시대를 대표한다. 산함 또는 산도(餕饀, 酸饀)로 불리는 불교 채식 만두에 대한 언급은, 보조지눌에 이어 수선사 2세인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의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이나 그의 저작인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1226)』, 그리고 진각혜심선사의 제자로 생몰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은 각운(覺雲)의 『선문염송·염송설화회본(禪門拈頌·拈頌說話會本)』에 등장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고려 시대 불교 채식 만두 관련 문헌은 진각국사 혜심의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이다.

혜심선사(慧諶, 1178~1234)의 『조계진각국사어록』은 고려 시대 불교 채식 만두인 ‘산함’과 관련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혜심은 자신의 어록에서 북송 오조법연선사(五祖法演禪師, 1024~1104)의 법어를 인용하면서 채식 만두를 의미하는 ‘산함(餕餡)’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오조법연선사의 『법연선사어록(法演禪師語錄)』의 해당 문장에서는 ‘산함(餕餡)’이 아니라 ‘산도(酸饀)’라는 채식 만두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사실은 혜심선사가 법연선사가 채식 만두를 의미하기 위해서 사용한 ‘산도(酸饀)’가 자신이 채식 만두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한 ‘산함(餕餡)’과 동일한 의미의 명칭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혜심과 오조법연이 사용한 ‘산’이라는 한자의 ‘변’은 혜심의 경우는 ‘먹을 식(食)’ 변을, 오조법연의 ‘산’이라는 한자의 ‘변’은 ‘닭 유(酉)’ 변을 사용하고 있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고려 혜심선사는 불교 채식 만두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산함(酸餡), 산도(酸饀), 산함(餕餡), 산도(餕饀)’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으며 고려 불교 사찰이 찐만두인 ‘산함’과 ‘산도’에 이미 익숙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 최자(1188~1260)의 『보한집(補閑集)』 권하(卷下)에는 선시(禪詩)의 시격을 평하는 세 가지 기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직강(直講) 윤우일(尹于一)이 말하기를,

“승가(僧家)의 시격(詩格)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시가 경론(經論)에 통달한 게송체를 두탕흔(豆湯痕)이라 하고, 생경한 말로 글짓기를 좋아하는 시격을 사수적(捨水滴)-승가에서 식사를 마치고 발우(鉢盂)를 씻는 물을 사수(捨水)라 한다-이라 하고, 초탈함이 묻어나는 시격을 소순기(蔬笋氣)라고 한다”고 하였다.

당시 고려 문인 사회의 선시(禪詩) 품평의 기준으로 사용되었던 세 가지 술어-두탕흔(豆湯痕), 사수적(捨水滴), 소순기(蔬笋氣)-는 불가(佛家)의 음식물 명칭과 관련되어 있는데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소순기(蔬笋氣)라는 선시 품평의 기준을 북송 소동파는 ‘산도기(酸饀氣)’라고도 칭하고 있다. ‘산도기’라는 표현은 ‘소순기’와 더불어 고려 시대 문인 사회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서거정이나 정약용의 시문집에서도 시문의 평가 기준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려 시대 불교 채식 만두의 전통은 고려 후기 이색의 『목은시고(牧隱詩藁)』에 등장하는 관악산 신방암 주지가 이색에게 대접한 ‘만두(饅頭)’를 통해 고려 후기에도 여전히 불교 사찰의 채식 만두 전통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현재 한국 만두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기존 학설보다 앞선 시대에 불교 사찰의 채식 만두 문화가 존재했으며 불교 사찰은 만두 음식 문화를 주도하는 그룹으로 일반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두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기저 음식인 김치나 장류(醬類)에 있어서도 한국 사찰은 삼국 시대부터 한국 음식 문화를 이끌어온 핵심적 집단이며 이후 두부, 국수, 다식, 나물 등 어육류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한국 음식 문화의 형성과 계승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온 그룹이다. 또한 한국 음식 연구에 있어서 한국 불교 문헌의 사용은 문헌이 빈약한 한국의 음식 연구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 기존 한국 음식 연구의 문헌 부재 상황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이번 호를 끝으로 <불교의 시선으로 보는 음식> 연재를 마칩니다.

공만식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 인도 델리대에서 인도 불교사와 초기 불교로 박사를 영국 런던대 SOAS와 킹스컬리지에서 음식학과 종교학을 수학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 음식문화학 담당 대우교수로 있다. 저서에 『불교음식학 - 음식과 욕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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