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사프란의 『불교와 정신분석』 | 정여울 작가의 책 읽기 세상 읽기

불교의 가르침,
정신분석의 빛이 되다

『불교와 정신분석』

제레미 사프란 지음, 이성동 옮김, 씨아이알 刊, 2022

내가 불교로부터 배운 최고의 가르침은 고통 속에서도 끝없이 ‘의미’를 발견하는 마음이다. 고통에 집착하고, 고통으로 인해 불현듯 비명을 지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고통 속에서도 뭔가 소중한 것을 배우며 깨닫고 싶어 하는 신기한 열정을 나는 불교로부터 배웠다. 과거에 붙들려 살지 않고, 허황된 미래를 꿈꾸지 않고, 오직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하는 마음가짐도 불교의 눈부신 가르침이다.

이런 배움의 여정에서 『불교와 정신분석』은 커다란 영감을 준다. 이 책은 우리가 출신, 직업, 신분 등의 외적인 요소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생각’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분야에서 불교가 점점 더 주목받는 이유는 트라우마와 우울증의 치유, 무의식에 숨어 있는 인류의 수많은 잠재력, 무의식의 의식화, 감정 조절 등 많은 현대인의 과제 속에서 불교가 직접적인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이룬다는 것을 깨달으면, 생각을 아름답게 하는 길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가장 빠른 길임을 알게 된다. 아주 사소한 잡생각이나 잠깐 떠오르는 나쁜 생각마저 아름다워지는 삶을 살려면, 얼마나 크고 깊은 수행을 거쳐야 할까. 잡생각마저 아름다운 존재가 되려면, 우리는 얼마나 머나먼 깨달음의 길을 걸어야 할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음이 순수할 때, 기쁨은 결코 떠나지 않는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온다고. 이런 순수한 마음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매일 쉬지 않고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챙기고 돌보며 세계와 교감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불교와 정신분석』은 많은 학자들의 논문과 토론을 통해 불교가 인류에게 전해주는 심리학적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다. 현대의 정신분석적 사상가들은 ‘자아’를 근원적으로 해체해 궁극적으로 ‘자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공통의 목표로 삼고 있다. “치료의 목표는 과거의 내적 대상과의 결박에서 스스로를 풀어나감으로써 자아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자유는 타인과 독립된 자아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온다. “붓다의 길을 공부하는 것은 자아를 공부하는 것이다. 자아를 공부하는 것은 자아를 잊는 것이다. 자아를 잊는 것은 수많은 사물과 함께해 본래성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깨달음을 다양한 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적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공허한 자아를 무언가 의미 있는 것으로 채우기 위해 전능한 자기애를 지지하는 위험을 피해야 한다. 불교는 바로 그런 나르시시즘적 유혹을 벗어나게 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나는 불교가 종교를 넘어 철학으로 다가가는 것이 비신자들에게도 부담 없는 접근임을 강조하고 싶다. ‘신도’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 ‘신도여야만 뭔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압박감은 불교로 다가가는 대중의 문턱을 더욱 높이기만 할 뿐이기에. 마음챙김 명상이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불교의 깨달음은 그래서 더욱 유효하다. 불교에는 십일조도 없고, 신도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도 없다는 것, 신앙이라는 얽매임이 없다는 것은 불교가 지닌 커다란 장점이다. ‘자아’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자아’를 더욱 속박하는 쪽으로 간다면,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을 구속하는 모든 시스템과 압박감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불교는 자유의 길, 해방의 길을 제시할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분노에 대처하는 비결도 불교로부터 배웠다. 분노에 집착하는 것은 마치 뜨거운 석탄을 내 손으로 집어서 남에게 던지려는 상태와 같다. 제일 먼저 화상을 입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분노할 때마다 내 손으로 활활 타오르는 석탄을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깨닫고 나면, 분노의 석탄이 나 자신을 태우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게 된다. 나는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감정을 다스리고 내 안에 나보다 더 커다란 또 하나의 내가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힘들 때마다 <심우도>를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 삶의 여정이 <심우도>처럼 그렇게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자아로부터 해방되는 길일 수 있다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도 언젠가는 그 깨달음의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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