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신과 함께』의 주호민 만화가 | 인터뷰

'진기한' 가치와 상식을 복원하는 젊은 예술가

웹툰 『신과 함께』 주호민 만화가 


부처가 될 수 있는 법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위해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 한 명도 빠짐없이 구제한 뒤 성불하겠다고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 보살의 깊고 참된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불교 신자가 아니라면 ‘지장보살’이란 낱말부터 낯설지도 모르겠다.

햇볕 좋은 늦가을, 청계천에서 열린 ‘만화의 날’ 행사장에서 지장보살, 명부, 49재, 지옥도, 오방색 등의 불교와 무속을 소재로 한 웹툰(webtoon, 인터넷 연재만화) 『신과 함께』의 주호민 만화가를 만났다.

“지장보살의 마음이 절절하게 와 닿았어요. 작품에 나오는 진기한 변호사는 21세기 지장보살이죠. 그 캐릭터가 『신과 함께』를 탄생시켰습니다.”
◎ 주요 인물
김자홍 평범하게 살다 저승에 가게 되는, 천성이 착한 소시민으로 진기한 변호사의 첫 의뢰인이다.
진기한 변호사 저승 로스쿨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판관직을 제의받지만 거절한다. 비상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으로 약자 편에서 활동하는 국선 변호사다.
유성연 병장 전역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생매장당하지만 자살로 처리된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원귀가 되어 이승에 나타난 죄로 지옥으로 가게 되는데 진기한 변호사가 사건을 맡는다.
저승사자 삼인방 유성연 병장의 원귀를 잡기 위해 이승에서 그를 뒤쫓으며 억울한 사연을 듣게 된다. 자살로 위장한 가해자를 참회하게 만들고 유성연 병장과 어머니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진기한 변호사. 드물고 귀하다는 뜻의 진기(珍奇)라는 단어를 저승 인권(?) 변호사의 이름으로 활용해 캐릭터를 분명하고 주제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의 스토리텔링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49일 동안 이뤄지는 이야기는 불교의 저승관을 모티브로 하고 있고, 불교의 핵심 고갱이가 잘 녹아 있다. 그리고 용주사 감로도, 전주 서상원의 신중탱화 등을 배경 그림으로 사용해 불교미술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계가 이 작품을 주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스마트 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에게 불교의 의미를 쉽게 전달할 수 있어 불교문화 콘텐츠로도 손색이 없어 문화 포교의 좋은 본보기다.

“불교 신자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종교는 없어요. 군종병을 하며 법회를 열곤 했는데 그게 인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줍은 듯 나직하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신과 함께』의 진정성이 엿보였다면 거짓말일까. 스님처럼 머리를 밀어 첫인상에서부터 불교적 냄새를 풍기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모습에서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무속에 호기심이 생겨 취재를 했는데, 그것을 만화로 그리기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한국 신화 책을 비롯해 『불교미술의 해학』을 보게 되었고 명부전에 걸린 지옥도에 관심이 갔어요. 그렇게 지장보살을 알게 되고 이 작품을 그리게 됐습니다.”

무속과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 고리타분하거나 낡았다고 생각한다면 섣부른 판단이다. 『신과 함께』는 요즘 트렌드에 맞게 공을 들인 작품이다. 서사무가에 나오는 서천 꽃밭이 재치 있게 서천 식물원으로 바뀌었고, 제주 신화에 나오는 강림도령, 덕춘이, 혜원맥을 21세기 저승사자 삼인방 캐릭터로 등장시켜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

이 작품을 보기 시작하면 이야기에 푹 빠져 킥킥거리다가 의문사를 당한 유 병장의 어머니를 만나는 순간 울컥하며 세상과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은 철저하게 공부하고 현대적 시선으로 바꾼 작가의 노력과 역량일 것이다. 『신과 함께』는 그리스 로마 신화만을 최고로 여기며 신의 계보를 외우고, 인문학적으로 분석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국 신화와 전통을 알리는 좋은 작품이다.

웹툰의 주요 독자들이 젊은 층인데 반해 『신과 함께』의 애독자에는 중년층도 많다. 세대를 뛰어넘어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회사 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는 모습, 교통 체증, 군대 의문사 같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진기한 변호사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마지막에 유성연 병장을 위해 서둘러 달려가는 모습에 환호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그런 변호사가 적다는 반증 아닐까요?”

어떤 고승의 법문보다 더 쉽고 간결하게 대중에게 삶의 진실을 설법하는 『신과 함께』는
철저하게 공부하고 현대적 시선으로 바꾼 주호민 작가의 노력과 역량이 빛나는 작품이다.

주호민 작가는 지금 우리 사회를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에 감동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권선징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잘못한 사람들이 더욱 승승장구하는 사회,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린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연재 중에 간혹 종교적인 이유로 악의적인 댓글을 다는 경우가 있었어요. 종교가 위안을 주고 사회 통합에 앞장서야 하는데 도리어 대중에게 스트레스를 주곤 합니다. 불교는 불교의 역할이 있고, 그 몫을 어떻게 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이립(而立)의 작가는 확고하게 자신의 뜻을 펼쳤다. 잃어버린 가치를 충실하게 복원하려는 리얼리스트의 면모가 『신과 함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작품 안에 녹아 있는 메시지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독자의 편지가 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분인데 ‘아버지도 저승에서 진기한 변호사를 만나 좋은 곳으로 가셨겠죠’라며 위안을 받았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더욱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예술가의 역할은 위로와 공감일 것이다. 사는 것이 지옥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최근 많아졌다. 청소년들은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젊은이들은 등록금과 취업 중압감 그리고 중년들은 불안한 미래가 걱정이라고 고통을 호소한다. 그들에게 『신과 함께』가 희망을 주고 있어 다행이었고 좋은 작품의 강력한 힘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삶을 반성하게 하고, 위안을 주는 작품이야말로 당대의 고전이다. 주호민 작가는 오래전 무당이 했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과거 만화는 시간을 때우는 심심풀이 독서에 불과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를 맞아 웹툰으로 발전해 다양한 이야기와 소재를 담고, 과감하게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 시대가 주호민이라는 패기 넘치는 젊은 예술가를 탄생시켰다.

“젊은이들이 꿈이 없다고 야단치기 전에 먼저 그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죠.”

세칭 명문대 진학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자신의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작가의 모습은 분명 매력적이고 큰 의미가 있다. 『신과 함께』를 읽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문득, 좋은 예술 작품과 부처의 가르침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작품은 어떤 고승의 법문보다 더 쉽고 간결하게 대중에게 삶의 진실을 설법하고 있었다.

작품 이야기를 할 때 작가 곁에서 뜨거운 에너지가 뿜어졌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때까지 좋은 작품을 열심히 생산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그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도 진기한 변호사처럼 지장보살의 서원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예술 작품은 지옥 같은 삶에서 극락을 만나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그의 노력으로 좀 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글|문부일, 사진|김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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