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욕지족의 삶, 불편한 삶에서 행복을 찾다 | 캠페인 “쓰레기를 줄이자”

소욕지족의 삶, 
불편한 삶에서 행복을 찾다

사기순
도서출판 민족사 주간


30대에 할머니라는 별명을 갖게 된 사연
사람마다 트레이드마크가 있고, 그게 굳어져 별명이 되기도 한다. 호호보살, 자뻑보살, 수면보살, 태평보살, 할머니 등등의 별명 중에서 ‘할머니’를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20여 년 동안 한 직장에서 같이 지내면서 매사 철저하게 아끼는 내 생활 습관을 알게 된 전 직장 동료가 ‘시골 할머니’ 같다면서 지어준 별명이다.

직장 동료들은 사무용품을 정리해서 버릴 때도, 식당에서 음식을 남길 때도 내 눈치를 본다. 사무실 청소를 하고 나서 쓰레기통에 수북이 쌓여 있는 버려진 사무용품들을 하나하나 뒤지면서 “이건 이래서 쓸 수 있고, 저건 저래서 쓸 수 있다”며 다시 차곡차곡 정리해놓고, 빈 통에 잔반을 담아서 가져가는 평소의 내 행동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버리면 쓰레기가 되고 적절하게 재활용하면 제 몫을 한다.

나는 이런 내 생활 습관으로 인해 얻게 된 할머니라는 별명이 참 좋다. 그런데 이왕이면 ‘할매보살’이라 불리고 싶다. 보살은 내 삶의 궁극적 목표이고, 할매처럼 보이는 생활 습관을 갖게 되기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면서 내 인생이 송두리째 변화되었다. 그때 나를 사로잡은 것은 삼세인과설과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인연법이었다. 삼세인과설을 받아들이면서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이 없어졌고, 이 세상 만물은 서로서로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불교의 인연법은 내 삶의 전부가 되었다.

이론적으로나마 인연법을 알고 실천하려 애쓰며 살다 보니 종이 한 장, 물 한 방울, 밥 한 톨도 함부로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청소년기부터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히 행하는 것들이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적도 많은 듯싶다. ‘지구적 차원에서 환경문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진 않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행동은 이미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 있는 ‘아나바다’로 향해 있다.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불자로 산다는 것
“네가 왜 이런 집에 살아야 하니? 아들 졸업하면 다시 아파트로 이사 갈 거지?”

몇 년 전 아들 고등학교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작은 빌라로 이사 왔는데, 친구가 속상해하면서 말했다. 친구가 어떤 심정으로 말했는지 잘 알지만, 아들이 대학교 3학년이 된 이후에도 난 여전히 이 작은 빌라에 정말 만족하면서 잘 살고 있다.

사실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불자로 산다는 것은 일정 부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고,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측면이 있다. 내가 친구의 뜻을 잘 알면서도 이 작은 빌라를 떠나지 않는 것은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수십 년 전부터 무심결에라도 종이컵을 쓰고 싶지 않아서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고, 빈 통을 들고 다니면서 음식점에서 남은 음식을 담아온다. 손수건과 장바구니를 상용해서 되도록 휴지와 비닐을 쓰지 않는다. 에너지 절감을 위해 전기 코드를 빼놓고, 수도꼭지도 꼭 냉수 쪽으로 향하게 해놓는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릴 때도 일일이 씻고 상표를 떼는 수고를 더 해야 하지만 즐겁게 하고 있다.

이 세상에 다 좋은 건 없다. 집도 작은데, 옥상은 물론이고 화장실과 부엌에도 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통을 놓아두면 걸리적거리고 지저분해 보이게 마련이다. 채소와 과일 씻은 물이나 설거지한 물을 옥상 텃밭으로 나를 때는 힘들기도 하지만, ‘수질 오염을 방지하는 데 동참하고, 운동도 되고, 수도세도 절약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이렇게 웬만한 것은 다 실천했지만 아파트에 살 때는 음식물 쓰레기만큼은 제로화하지 못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빌라에 머물고 있다. 옥상의 텃밭 가꾸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퇴비로 만들어 쓸 수 있는 데 대한 큰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쓰레기로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새롭게 살려낸 데 대해 나름 자긍심도 느끼면서 자뻑보살로 화한다. ‘비록 작은 행위이지만 지구를 살리는 길에 이 정도라도 실천하며 살아야 불자지’ 하는 마음, 이런 뿌듯함과 기쁨이 있어야 불편을 감수하고 오래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2,600년 전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이 시대에 화현하신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부처님은 환경운동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각자 자기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야말로 지구의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 해결점이 아닐까 싶다.

사기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불광』·불광출판사 편집부장을 지냈고, 현재는 도서출판 민족사 주간으로 있다. 공저로 『행복해지는 습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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