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바른 언어[正語] 사용법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언어폭력의 사회
칼날 같은 말이 활개를 치는 시대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2021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30%가 가정에서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한국교육개발원에서 2021년 조사한 결과, 초·중·고등학생 100명 중 1명꼴로 학교폭력을 당했고, 이 중 41.7%가 언어폭력이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은 사회에까지 이어지는데 2012년 한 조사에 따르면 군대의 자살 사건 중 68%가 언어폭력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처럼 언어는 잘못 사용하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죽이는 사어(死語)가 되지만, 잘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활어(活語)가 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사어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언어폭력이 사회에 만연하는 이유는 첫째, 잘못된 언어 사용 습관 때문이다. 둘째는 올바른 언어 사용법에 대해서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숙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언어 - 정어(正語)의 기준
부처님께서는 기록된 역사상의 그 어떤 성인(聖人)보다 장기간 설법하셨고 가장 많은 제자를 교육하셨으며, 이를 통해 가장 많은 경전이 후대에 전승되었다. 팔만사천 경 모두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살리는 부처님의 언어 사용 사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셨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부처님의 첫 설법인 초전법륜을 살펴보자. 초전법륜의 구성은 ‘중도(中道)’ → 중도의 내용인 ‘팔정도(八正道)’ → 정견의 내용인 ‘사성제(四聖諦)’ → 사성제 수행 방법인 ‘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에 대한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부처님의 올바른 언어 사용의 기준을 알기 위해서는 중도와 팔정도에 주목해야 한다. 『마하박가(大品律藏)』에 나오는 초전법륜은 중도에 대한 설법으로 시작한다.
“수행승들이여, 출가자는 두 가지 극단을 섬기지 않는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탐착을 일삼는 것은 저열하고 비속하고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의 소행으로,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다. 또한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도 괴로운 것이며 성현의 가르침이 아닌 것으로 무익한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떠나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며 궁극적인 고요, 곧바른 앎,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를 깨달았다.”
부처님은 초전법륜을 통해 여래의 깨달음이 곧 중도임을 선언하신다. 이는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제자들은 중도를 매 순간 갈고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쾌락과 고행, 긴장과 이완 등의 극단에 사로잡히지 않는 적절한 마음의 상태를 조율하는 이 실천적 중도의 노력은 수행의 시작부터 완성을 꿰뚫는 중요한 덕목이다.
초전법륜에서는 이 중도의 상태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팔정도를 제시하는데 팔정도의 항목 중 세 번째가 바로 ‘정어’이다. 그렇기에 정어는 첫째, ‘중도의 상태에서 사용하는 언어’이고 둘째, ‘중도의 상태로 나아가는 정견의 언어’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자는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의 상태이고, 후자는 언어가 담고 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올바른 언어 사용은 중도의 상태를 준비하는 것, 정견의 내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마음이 흐트러졌다면? 침묵!
일본의 자율신경(自律神經) 의사인 고바야시 히로유키가 쓴 책 『나는 당신이 스트레스 없이 말하면 좋겠습니다』에서는 말의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말을 하는 주체의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마음챙김이 없는 상태를 판별할 수 있는 지표로 자율신경의 균형도를 제시했는데, 이는 몸의 상태를 통해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힌트이다. 부처님께서 언급하신 중도의 상태로 나아가는 기본은 바로 자율신경의 균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율신경이 균형 잡혀 있다는 의미는 긴장과 이완이 잘 조율된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마음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 잘 조율된 상태가 더욱 안정되면 선가(禪家)에서 언급하는 수행의 적절한 마음인 성성적적(惺惺寂寂)한 상태에 이른다. 그리고 이 적절한 마음으로 수행할 때 우리는 중도를 깨치고, 중도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중도로 나아가는 입구는 분명히 자율신경의 균형에 있다.
자율신경이 무너진 마음은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흔들린 마음으로 말을 하면 배웠던 활어의 기술을 하나도 써먹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사어를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예를 들어 화가 난 상태에서 말을 하면, 해결되지 않은 그 감정이 말에 묻어나고 이 소리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전달된다. 이 경우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 감정을 전염시켜 그들의 자율신경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힘으로 작용한다.
언어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이처럼 직접적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망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어폭력의 대상이 되는 상대뿐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의 건강을 망치니, 이러한 말은 오물, 바이러스 등 독을 입으로 내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마음이 적절한 상태가 아니라면 침묵하는 것이 상책이다.
마음을 중도의 상태로 유지하는 데 유리한 세 가지 언어 습관을 소개해본다. 첫째는 천천히 말하는 것, 둘째는 올바른 자세로 말하는 것, 셋째는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 지으며 말하는 것이다. 이를 습관화한다면 의도적으로 신경 쓰며 말하지 않아도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니, 이것이 악취가 아닌 꽃향기를 풍기게 하는 언어 사용의 첫걸음이다.
입으로 잘 표현해야 할 언어의 내용
자율신경이 조율된 중도의 마음이 준비되었다면, 어떤 내용을 말로 잘 표현해야 할까? 부처님은 정견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올바른 언어 사용임을 밝히셨다. 정견의 구체적인 내용은 곧 사성제이니, 결국 활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실의 고통을 인정하는 내용
둘째, 고통의 원인을 진단하는 내용
셋째,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내용
넷째, 행복을 위한 구체적 수행법에 대한 내용
사성제의 내용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언어폭력에 대입해본다면 가장 먼저 언어폭력이 불러오는 끔찍한 고통과 그 과보를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다음으로 그 원인에 사어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활어를 통해 나와 남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좋은 관계를 위해 연습해야 하는 세 가지 과제를 제시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스스로 남을 조종하려고 드는 말을 하고 있다면 자각하는 순간 무조건 멈춰야 한다. 원한을 맺기 가장 쉬운 방법이 상대방을 내 뜻대로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법우님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아들이 스마트폰을 많이 하는데, 이에 대해서 조언해도 괜찮을까요?”
“아들에게 조언해도 괜찮은지를 먼저 물어보시고, 동의하면 조언하세요.”
둘째, 대화하는 상대의 마음이 항상 옳다고 인정하는 생각을 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상대가 어떤 말을 하든 일단 그 말에 ‘동의’해줘야 한다.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마음을 인정받고 싶을 뿐이니까. 군법사로 있을 때 전날 자살 시도를 한 병사와 상담을 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국은 곧 다시 자살 시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우 뭐라고 답변해야 할까?
“법우님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살하고 싶을 만큼 힘든 것 같네요. 들어보니 충분히 마음이 그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자살 시도하기 전에 스님한테 전화 한번 할래요?”
그 병사는 결국 안전하게 제대했고, 지금도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다. 나중에 들어보니 자기 생각을 인정해주는 말이 위로가 되었고, 자살을 시도하기 전 전화할 곳이 있다는 점이 의지가 되었다고 한다.
셋째, 우아하게 싸울 줄 알아야 한다.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서로 부딪히는 일들이 많아지기에 다툼을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잘 싸워야 하는데, 애칭과 존댓말을 사용해보기를 권한다. 예를 들어 “나를 아껴주는 OO 씨, 일을 이렇게 하시니 제 마음이 불편하네요”라고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말의 서두가 애칭이니 초두 효과로 인해 상대방의 반감이 줄어들 것이고, 마무리 역시 존댓말이니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세 가지 연습 과제는 모두 나와 상대의 자율신경의 균형을 지켜주는 효과가 있다. 또한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닌 마음을 살려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리해보자. 부처님의 활어는 중도의 준비와 내용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준비’를 통해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하고, ‘내용’을 통해서 해도 좋은 말과 하면 좋지 않은 말을 잘 구분하는 것이 사어에서 벗어나 활어를 사용하기 위한 기본기이다.
원빈 스님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같은 하루 다른 행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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