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와 언어폭력, 그리고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불교적 이해 | 언어폭력

SNS와 언어폭력, 
그리고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불교적 이해

박수호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학부 교수


현대 사회의 기술 발전은 놀라운 신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중 가장 획기적인 삶의 변화를 실감하게 하는 것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사람들은 어느새 눈과 귀를 손에 든 휴대폰에서 떼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못하는 것이 없게끔 만들어주는 놀라운 기술이다.

사람들이 그런 휴대폰에서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휴대폰을 통해서 소통하는 타인과의 관계이다. 원래 전화라는 것이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발명된 것이기는 하지만, 휴대폰 속에서 펼쳐지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의 세상은 평소 내가 알고 있던 몇 사람과의 대화와는 거리가 멀다. 나의 지인과 그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나를 둘러싼 작은 세상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들이 언제 어디를 방문하고, 누구와 어울리며, 무엇을 먹고, 어떤 일에 기뻐하거나 슬퍼했는지를 모두 알 수 있다. TV 속 세상처럼 단순히 보여지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얘깃거리를 서로 퍼 나르며 다른 이들의 삶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있으면, 그와 관련한 새로운 사람과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사실들을 끊임없이 알려준다.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나와 관심이나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나’ 중심의 세상에 흠뻑 젖어드는 것이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낯선 타인과 피상적으로 소통하던 인터넷에 비해 SNS에서의 소통은 친밀한 지인들과 교류하는 관심의 연대가 중심이 되며, 이용자들이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자유롭게 피드백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개된 쌍방향적 대화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볼 때, SNS는 사이버 공간과 달리 상대적으로 익명성이 낮은 소통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SNS에서도 악성 댓글을 비롯한 일탈적 언어문화의 폐해는 여전하다. 이것은 정보와 오락이 섞여 있고, 공적․사적 대화의 주제와 양식이 함께 존재하며, 내가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이 한데 어울려 있는 SNS의 특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SNS는 사이버 공간보다 익명성이 상대적으로 낮을 뿐이지, 비익명적인 소통 공간은 아니다. ‘친구의 친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사돈의 팔촌’은 모르는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즉 SNS를 통해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수와 범위가 확장되는 만큼 모르는 사람과의 소통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이버 공간을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 무대에 비유할 수 있다면, SNS는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는 무대 뒤편의 대기실에 비유할 수 있다. 소수의 관계자만 함께하는 대기실은 배우의 사적인 공간이라고 볼 수 있지만, 팬들이 몰려든 대기실은 더는 배우의 사적 공간이 아니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SNS의 부정적 측면으로 거론되는 주요한 쟁점들은 원치 않는 사생활 노출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비난과 공격, 비대면적 소통으로 인한 소통의 왜곡, 민감한 이슈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의 증가,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의 증가와 그에 따른 언어폭력의 심화 등이다. 가까운 지인과만 공유하고자 했던 프라이버시가 내가 알지 못하는 ‘지인의 지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난이 주는 충격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전후 사정이 배제된 채 감정을 알 수 없는 글로만, 혹은 생각을 알 수 없는 이모티콘만으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무관하게 듣는 (정확히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해석됨으로써 왜곡의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지인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민감한 이슈에 대한 대립은 상대방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더욱 첨예화되고, 자기 의사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극단적 표현의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들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SNS는 이를 빈번하게 보여줌으로써 보다 선명하게 부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SNS상에서 나타나는 언어폭력을 불교적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까?

사실 SNS에서 나타나는 폭력적 상황은 대부분 언어에 의해 촉발된다.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구업(口業)과 직결되어 있다. 이는 SNS상의 언어폭력이 외형상 구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지, 신업(身業) 및 의업(意業)과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학자들이 언어가 사람의 생각을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즉 언어를 통해 의식의 형성과 생각의 재조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편 생각과 말은 행동을 촉발하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말이 씨가 되기 때문에 행동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하고 말을 조심하도록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또한 생각과 말과 행동은 피드백을 통해 서로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더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자기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되며,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SNS상에서 나타나는 언어폭력은 말로 짓는 악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 모두에 걸쳐서 악업을 짓는 동시에, 악업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불교의 업설은 업에는 과보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고 가르치며, 그 바탕 위에서 악업을 소멸하고 선업을 증장해야 한다는 윤리적 규범을 제시한다. 무심코 올린 악플 하나가 상대방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옭아매는 악업의 사슬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폭력적 언어 사용을 지양하고, 좋은 말을 하는 것이 곧 업장을 소멸하고 복덕을 짓는 구도이자 수행임을 깨달아야 한다.

SNS상에서의 언어폭력이 의사소통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것은 앞에서 충분히 논의한 바 있다. 그런데 언어가 사회 실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면 의사소통을 왜곡하는 행위는 연기의 실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불교의 궁극적 목표와 상충한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즉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집단생활의 기초는 구성원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서 형성된다. 따라서 의사소통의 왜곡은 인간의 존재 기반을 허무는 위험한 행동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SNS상의 언어폭력은 스스로 존재 기반을 위협하는 동시에 불교 신도로서의 삶과 구도행을 방해하는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최근 더욱 심해지고 있는 SNS상의 언어폭력은 혐오 발언의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다. 혐오 발언은 편을 가르고 상대편에게 고통을 가중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악업이다. 그런데 혐오 발언에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존재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이 내재해 있다. 차별하고 무시하고 배제함으로써 혐오의 대상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겠다는 탐심(貪心)이 밑바탕에 깔린 것이다. 혐오 발언의 상당 부분은 대상에 대한 분노 표출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분심(憤心)이 강하게 배어 있고, 혐오 대상에 대한 편견을 고착한다는 점에서 치심(癡心)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불교적 관점에서 혐오 발언은 삼독(三毒)을 심화시키는 행위이다. 삼독은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번뇌이다. 결국 혐오 발언은 번뇌 망상을 떨치는 것이 아니라 번뇌의 불구덩이로 자기 자신을 밀어 넣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본 바와 같이 SNS상의 언어폭력은 폭력의 대상에게 고통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결국은 수행에 장애가 되는 마군(魔軍)인 셈이다. 또한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스스로 마군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구도의 길을 걷는 수행자로서 스스로 마군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불교 윤리의 일상화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십선계와 팔정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수호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승가대 불교사회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불교를 통해 사회학의 발전을 모색하고, 사회학을 통해 불교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의 종교와 사회운동』(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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