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심장 붙여주는 슈퍼 접착제 | 나의 불교 이야기

깨진 심장 붙여주는 
슈퍼 접착제

김경회 
대구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오늘은 대학 입시 발표가 있는 날이다. 발표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며칠 잠을 못 잔 탓에 토끼 눈으로 지원한 대학의 교문 앞에 이르렀다. 합격자 벽보가 붙어 있는 장소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작년에 겪었던 낙방의 쓰라림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심장은 벌써 두 근 반 세근 반 뛰고 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합격자 벽보에 이르러 차례로 읽어 내려가는 순간 모든 것이 또 무너져 내리는 아찔함을 맛보고 있다. 작년, 재작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 낙방이다. 이미 처절하게 금이 가 아슬아슬 챙겨오던 그 연약한 심장이 다시 깨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너덜거리는 심장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또 그 대학의 교정을 내려오고 있다. 어찌해야 하나, 고3, 재수, 3수 세 번의 쓰라린 낙방을 통해 깨진 심장을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태다.”

그 순간에 막연하지만 육조(六祖) 혜능 스님의 오도송 두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하처약진애(何處惹塵埃).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이 일어나리.” 10대 후반의 나이에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부적처럼 받아 가슴에 지녀왔던 그 구절이 힘이 되어왔다. 이 오도송은 재수 시절 국어 선생님이 어느 날 칠판에 적어주시며 그 의미를 설명해주셨고 그 이후 염불처럼 입으로만 가끔 되뇌던 구절이었다. 그런 구절이 이렇게 심장 깨지는 순간 평안하게 다가올 줄이야. 심장이 깨지는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다른 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체험이었다.

그렇게 갖게 된 육조 스님과의 인연은 대학 진학 후 불교학생회 활동으로 이어졌다. 대학 1학년 초심과 간절심으로 임했던 해인사 홍제암의 첫 수련 대회, 3,000배를 통한 성철 스님과의 친견, 그리고 대학 지도 법사셨던 정현(淨玄) 스님-상무주암 현기 스님 사제(師弟)-과의 만남으로 제대로 마음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이후 인천 주안 용화선원에서 송담 스님께서 결혼 주례를 봐주셨고 그 인연으로 전강, 송담 스님으로 이어지는 간화선 수행을 실천해오고 있다. 특히 대학 동문 중 출가해 구도의 길을 걷고 계신 부산 기장 묘관음사(향곡, 진제 스님 수행 도량) 선원장(禪院長)이신 서강(西江) 스님이 항상 곁에서 마음공부의 귀감이 되어주신다. 합격자 벽보 앞에서 그렇게 깨지는 심장을 토닥이며 일어섰던 그날 이후 어떤 부정적 상황에도 한 생각 돌이켜 부처님 가르침대로 흔들림 없이 살아오고 있다.

『고려보조국사어록(高麗國普照國師語錄)』 중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人이 因地而倒者 因地而起라 하니 離地求起는 (…) : 사람이 땅 때문에 넘어지며, 땅으로 인해 일어난다 하니, 땅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것같이 (…).” 인생 여정에서 우리가 겪는 상황에는 늘 양면성이 있다. 그 상황이 겉보기에는 부정적인 측면만 (넘어질 때의 땅) 있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긍정적인 측면이 (일어설 때의 땅) 있다는 말이다. 인간 욕구 단계설로 유명한 매슬로 박사도 사람이 긍정적 발상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통계적으로 70~80%는 부정적 발상을 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안정을 바라는 본능적인 사고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우리 뇌가 생각하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그치지 않고 반드시 구체적인 물질로 변화되어 육체에 작용한다. 우리 뇌의 사고(思考) 결과물은 몽땅 우리 몸 안에서 특정한 화학물질(호르몬)로 변해 분비된다.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을 겪은 후 우리 몸이 활기가 없어지고 소극적으로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우리 몸을 위축시키는 코르티솔이라는 신경호르몬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이것은 하나의 시련이다. 좋은 경험이다’라고 받아들이면 뇌의 생성 물질이 달라진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습관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부정적 발상을 하는 사람은 계속 부정적 사고를 하고, 긍정적 발상을 하는 사람은 늘 긍정적 사고를 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사고를 하는 법을 배우고 가르친다면 전 인류의 의식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이런 근원적 배움과 가르침은, 내 깨어진 심장을 토닥여 붙여주던 슈퍼 접착제, 바로 붓다의 “통찰”을 통해 가능하다. 이 “통찰”을 다르게 표현해보자. 자연계의 모든 존재는 파동이다. 제각기 고유한 주파수를 갖고 그에 따른 파장이 있다. 한 파동이 다른 파동과 일치되거나 조화를 이루는 것을 공명(共鳴)이라 한다. 마음에도 파동이 있으며 이 파동이 육체적인 것과 비육체적인 것을 공명시킨다. 즉 우주의 존재와 주관적인 나의 관계는 상호 파동이란 형태로 공명되면서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나”임을 아는 ‘깨어 있음(budh = awakening, 佛, 覺)’ 속에서 주관적인 나(ego, 自)와 객관적인 나(無我, 他, 宇宙)는 동시에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다. 이렇게 주관적인 나와 객관적인 내가 공명되도록 순간순간 깨어 행동하며, 치열한 깨어 있음으로 정진하는 것이 선(禪)의 참모습이다. 그런 선의 참모습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 여기서 내가 실천해오고 있는 전강(田岡) 스님의 녹음 법문 내용을 소개하겠다.

이 뭣고(是甚麼)? “이!” 했지 “이” 하는 “이놈이” 뭐냐 말이여? 단지 “아∼알 쑤 없는 의심”만 할 뿐이여~

그렇다. 우주와 나, 튜닝만 할 뿐! 참선은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며(不立文字) 닦아 증득함에 의지하지 않는다(不假修證).


김경회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대학원 석사,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석사 및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대 한국세라믹기술원 원장, 한국화학관련총연합회 미래연구위원회 회장, 요업기술원 원장, 대구대 식품생명화학공학부 학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구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교수불자연합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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