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산 통도사 적멸보궁 | 한국의 수행처 순례, 5대 적멸보궁

사람이 사람 되는 길


- 통도(通度)의 길
영축산 통도사 적멸보궁


무풍한송(舞風寒松), 이 길보다 더 길고 긴 역사의 흐름을 의연하게 지켜본 길이 또 있을까요?

천년 고찰 통도사. 이곳으로 들어가는 길에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1,400여 년의 역사를 이고 살아온 소나무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영축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봄 여름 가을 없이 장단을 맞추는 곳 바로 무풍한송입니다. 이곳을 흐르는 바람을 가슴속 깊이 들이마셨다면 이미 자연과 상생하고 조화를 이룬 셈입니다. 흥선대원군의 글씨로 유명한 영축산 통도사 편액이 달린 일주문을 지나치기 바로 직전 오른쪽에는 이곳에서 마음을 닦고 정화하고 적요(寂寥)의 세계로 떠난 셀 수 없는 선사들의 부도들이 우리들을 먼저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고 해서 영축산 아래의 통도사(通度寺)라고 일컫는다고 전해져오고 있지만 불이문을 통해 대웅전까지 한눈으로 바라다보이는 심상치 않은 경관 그리고 그 너머에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셨다는 영축산과 그분의 진신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은 자신도 모르게 통도가 보여주는 시간과 공간 속으로 흠뻑 빠져들어가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이 길은 통도사라는 절에 들어간다기보다 살아 있는 부처님의 체취를 통해서 그리고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수행자들의 향기를 맡기 위해 들어서는 깨달음의 길과 통하는 진정한 ‘사람이 되는 길(通度)’입니다. 대승의 수행자들이 반야의 바라밀 닦음을 통해 일체의 괴로움을 건넌(도일체고액, 度一切苦厄) 바로 그 자유의 길, 행복의 길입니다.

서기 636년 당에 들어간 자장은 오대산 태화지 연못가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정골 사리와 치아 사리 등을 받아서 643년에 귀국한 이후, 자장의 노력의 결과 나라 안에 계를 받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불자와 출가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자장은 자신의 사촌 누이이자 왕인 선덕여왕과 함께 계단(戒壇, 계를 받는 곳)을 세워 중생을 올바르게 제도하기에 적당한 곳을 심혈을 기울여서 찾았다고 합니다. 그곳이 바로 통도사입니다.

불교에서의 계단(戒壇)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 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계를 받는 자는 이제부터 진정한 수행자의 시작임을 자각하고 계를 평생 지키겠다고 서약하고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시고 있는 통도사 계단에서 거행되는 수계 의식은 불교 정신의 원천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통도사 계단은 수계를 받는 수행자가 굳건히 계율을 지켜 지혜가 무너지지 않음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특별히 금강계단(金剛戒壇)으로 부릅니다. 금강계단 현판 아래 다음과 같이 계를 받는 수행자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것을 다짐 받는 주련이 붙어 있습니다.


初說有空人盡執 처음에 공(空)을 설하니 모두 공에 집착하더니

後非空有衆階捐 뒤엔 공이 아니라 하니 모두 공을 버리네

龍宮滿藏醫方義 불교에 가득한 경율론은 다만 의사의 처방일 뿐

鶴樹終談理未玄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도 현묘한 이치는 아니로다.


지금 현존하고 있는 금강계단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여러 차례 수리를 한 것은 물론 왜적들의 침입으로 훼손당할 뻔한 것을 많은 선각자들의 노력으로 유지 보존되었습니다.

적멸보궁의 주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示跡雙林問幾秋 사라쌍수 아래 열반에 드신 지 몇 해이던가

文殊留寶待時求 문수보살의 보물을 모시고 때와 사람을 기다리니

全身舍利今猶在 이곳에 계신 부처님의 진신 사리에

普使群生禮不休 많은 중생들이 끊임없이 예를 올리네


통도사 새벽 예불

하늘에서 본 금강계단 사리탑
사진 | 신병문

이처럼 적멸보궁에 계신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중생들은 비단 사람만이 아닙니다. 통도사가 시작되는 유입부에서부터 흐르는 물과 다리, 바위, 폭포, 개울, 노을 등과 함께 도입부의 무풍한송과 선사들의 부도, 그리고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영축산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17개의 암자들이 펼쳐내는 장엄은 입체적 만다라요, 극락세계의 상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그러하니 부지런히 마음을 닦아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이 절절하게 들려옵니다. 우리 모두 사람이면 진인(眞人)이 되라는 통도(通度)의 가르침입니다.




글과 사진|오서암

농부 작가로 활동하며 ‘자비를 나르는 수레꾼’ 봉사팀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마흔여덟에 식칼을 든 남자』가 있고, 엮은 책으로 무여선사의 『쉬고, 쉬고 또 쉬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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