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의 A에서 Z까지
간화선의 원리
수불 스님
안국선원 선원장
12세기 송대(宋代)에 천동 정각(1091~1157) 선사에 의한 묵조선과 대혜종고(1089~11630) 선사에 의한 간화선이 등장했다. 자성을 돈오케 하는 방편으로 ‘오직 좌선함(只管打坐)’을 선택한 묵조선과는 달리, 간화선은 ‘일념타파(一念打破)’를 강조했다.
인간의 온갖 고통은 번뇌망상으로부터 나오는 바, 번뇌망상의 내용은 분별심이다. 나와 남을 분별하고, 선과 악을 나누며, 매사에 시비를 일삼는 분별심은 탐·진·치 삼독을 일으켜 갈등의 고통을 야기하는 중생병의 원인이다. 대혜종고 선사는 이 분별심을 일거에 타파하는 방법으로 간화선을 제시했다. 병의 원인을 드러내고 한데 뭉치게 해 한꺼번에 뿌리 뽑는 것이다.
번뇌망상의 근원인 분별심을 타파하기 위해, 온갖 생각을 하나의 단단한 의심덩어리로 뭉쳐지게 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 바로 ‘근본에 대한 의심’이다. 따라서 간화선은 근본의심을 통해 분별심을 뭉치게 해 결국 타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온갖 분별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을 끊으려면, 화두의심이 지속되어 하나의 단단한 덩어리[疑團]가 되어야 한다. 즉 당사자의 화두의심을 키워 의단독로되게 해서, 시절 인연 따라 타파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의심이 똘똘 뭉쳐 의단이 되어 타파되는 것이 간화선 수행 과정이다.
한 개의 근본 의심이 타파될 때, 천 가지 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뽑힌다. 화두의심이 깨질 때, 분별망상의 뿌리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중생병의 근본 원인인 생사심의 뿌리를 끊도록 집중시키는 수행법이 간화선이다. 이때 처음부터 의심을 일으켜 타파될 때까지 지속케 하는 장치가 ‘화두’다. 번뇌망상은 한 생각 분별심에 의해 일어나므로, 화두를 통해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끝내 뿌리 채 뽑아내는 것이 간화선 수행이다.
화두를 들면 주관과 객관이 나누어지지 않는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의심은 뭉쳐서 ‘의심덩어리로 홀로 드러나고(疑團獨露)’, 이것이 시절 인연 따라 타파되면서 중도불이(中道不二)의 실상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 깨달음이 일어나려면 의심덩어리인 의단이 깨져야 하고, 그것은 이분법적 생각의 헤아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깨달음의 관건은 생각이 오도 가도 못하고 꽉 막혀서 분별망상의 명근(命根)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 곳에 자기도 모르게 갇히는 것이다. 이와 같을 때 ‘한 덩어리를 이룰 것[打成一片]’이 될 것이며, ‘의단독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화두가 이렇게 ‘집중적으로 들려질 때’를 일러 앞뒤가 꽉 막힌 은산철벽(銀山鐵壁)에 갇혔다고 한다. 또한 목에 밤송이가 걸려 숨쉬기가 어려운 율극봉(栗棘蓬)과 사방에서 금강의 감옥이 조여오는 금강권(金剛圈)에 걸려들었다고 한다. 또한 이때를 진일보(進一步)할 ‘백척간두’라 하며, 몸을 뒤쳐 빠져나올 ‘천척의 우물 밑’이자, 쥐가 오도 가도 못하게 끼인 ‘쇠뿔 속’이고, 매달린 손을 놓을 ‘벼랑 끝’이라 한다. 이 지경에 처하면, 앞뒤가 꽉 막혀서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言語道斷), 마음 갈 곳이 없어지게(心行處滅) 된다.
만일 이렇게 어찌해볼 수 없는 벽에 갇혀 갑갑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작된 의심인 ‘죽은 화두[死句]’를 들고 있는 것으로 깨달음과는 요원하다. ‘사구’란 아무리 의심해도 참 의심이 일어나지 않고 분별망상이 여전히 살아서 작동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화두를 들었을 때 단박에 생각이 끊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화두다. 이치가 이러하므로 화두가 독로해야 하고, 화두가 독로하려면 의정(疑情)이 익어야 한다. ‘의정’이란 의심이 지속되어 놓으려 해도 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즉 의심이 지속되어 저절로 회광반조(廻光返照)되어 순일하게 진행되는 상태를 말한다.
의정이 익어가면 갈수록, 천 가지 의심 만 가지 의심이 한데 엉겨 붙어 한 덩어리로 뭉치게 된다. 이 뭉쳐진 의심덩어리가 마침내 깨어질 때, 분별망상의 정식(情識)은 타파될 수밖에 없다. 전도몽상은 사라지고, 본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소위 ‘불속에서 연꽃이 피는[火中生蓮]’ 도리를 온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깨달음의 연꽃은 ‘눈이 내리자마다 즉시 녹아버리는 용광로’인 의단독로의 불덩이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 걸어주는 화두의심은 반드시 ‘살아 있는 화두(活句)’가 되어야 한다. 일단 활구가 들려지면 의심하지 않으려 해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화두를 내려놓으려고 해도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야 한다. 이와 같은 모든 화두 참구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려면, 간화장치를 올바르게 시설할 수 있는 선지식의 안목과 법력이 요구된다. 선지식의 안내 없이 혼자서 화두를 들고 참구해서는 이 섬세한 과정을 제대로 소화해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화두를 제시하는 선지식의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참 의심’이 제대로 일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혼자서 참 의심을 일으키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면 과연 믿겠는가? 눈 밝은 선지식이라면 수행자가 처음 화두를 들 때부터 집중하게 해서 단박에 정중동(靜中動)이 되도록 수단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비유하면 처음부터 팽이를 매우 세게 쳐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맹렬히 돌고 있는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과 같다. 독한 개가 한번 꽉 물면 이빨이 빠지든 목이 끊어지든 절대 놓지 않는 것처럼, 처음부터 활구화두를 이렇게 잡들이게 만들어야 한다. 이때는 거문고 줄 고르듯이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거문고 줄을 힘껏 당겨 터지게 하는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화두에 집중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이렇게 선지식의 확실한 지도와 안내를 받으면, 몇 겹이 걸릴지도 모르는 길도 짧은 시간 내에 갈 수가 있다. 화두 참구는 반드시 선지식의 지남(指南)과 호법(護法) 아래에서 정성을 들여야 돈오(頓悟)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간화선의 원리대로 수행하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수불 스님
범어사 주지와 동국대학교 국제선센터 선원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안국선원 선원장, 부산불교방송 사장 등의 소임을 맡고 있다. 『간화심결 간화선 수행,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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