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맛 | 사유와 성찰

사유와 성찰


고기 맛 


임웅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스님은 고기가 먹고 싶었다.  

그래도 명색이 스님인데, 그 식욕에 간단히 무너질 수는 없었다. 출가한 지 30년이고, 해마다 하안거·동안거로 마음 닦는 공력이 축적된 선승이 식욕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육식 금하는 계율을 파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참 묘했다. 욕심을 떨치려 애쓰면 애쓸수록 오히려 더 큰 반발 심리가 식탐으로 몰려왔다. 스님은 허허 웃었다. ‘마귀가 씌었군. 시간이 좀 흐르면 물러갈 거야.’ 스님은 놀랐다. 식욕·색욕·수면욕 중에 가장 쉽게 초탈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식욕이 자신을 갉아먹고 들어올 줄이야.

‘좋다!’ 스님은 이 강적과 진짜로 붙어보기로 했다. 본격적인 싸움을 위해 화두를 정했다. ‘고기 맛’이란 화두였다. 간화선에 들어갔다. 온갖 맛난 음식과 맛없는 음식을 머릿속에 진열하고 맛보며 정리했다. 맛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맛있고 없고도 덧없는 육체적 감각에 지나지 않는가! 『금강경』의 진수를 떠올려 화두를 깨치고자 했다. ‘맛은 맛이 아닌 고로 맛이다. 맛이 아닌 것은 맛인 고로 맛이 아니다.’ 

스님은 화두를 붙들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화두를 분석하기도 하고, 화두와 싸우기도 하고, 화두와 대화하며 달래기도 하고, 화두와 한 몸이 되기도 하고, 화두를 잊기도 하며, 백일 동안 참선 수행을 했다. 오로지 참구하며 용맹정진했다.   

머리가 흐려지기도 하고 명료해지기도 하는 화두 공부에 지칠 무렵, 무시무시한 욕망이 온몸을 타고 돌았다. 그 어떠한 공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 스님을 눌러버렸다. 딱 한번 고기 맛을 보고 싶어 하는 식욕이 보도 못한 괴물처럼 스님을 잡아 삼켰다. 그 괴물은 아귀(餓鬼)였다. 스님은 전율했다. 자신이 혹독한 시험에 든 것을 알았다. 자신이 식욕과 무모한 싸움, 미련한 싸움을 벌이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자문했다. 인간은 채식동물이면서 육식동물로서의 DNA를 타고난 것인데, 그리고 식욕은 인간의 본능적·기본적 욕구인데, 자연의 이치에 저항하는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닌가? 식욕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과연 무엇일까? 

스님은 최종적으로 육식을 금하는 계율에 마주섰다. 파계의 만행을 하고도 득도한 고승들을 떠올렸다. 스님은 스스로 상, 중, 하, 세 등급을 매겼다. 공부가 낮아 파계하는 하품(下品) 스님, 그저 그렇게 계율을 지키는 중품 스님, 해탈의 마지막 관문에서 파계하는 상품 스님! ‘그렇다. 마지막 싸움은 계율에 있다. 나는 계율에 구속되는 노예가 아니다.’ 이런 결론이 고기 맛에 무너질 자기변명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스님은 읍내 고기구이 집으로 갔다. 밝은 마음으로 기쁘게 갔다. ‘그토록 갈구하던 고기 맛을 보러가는 길인데, 다른 생각은 다 제쳐두고, 즐길 일만 남기자.’ 

음식점에 들어섰다. 스님 복장을 한 사람이 들어서자, 식당 주인이나 손님들이나 탁발하러 온 스님이라 여겼다. 그런데 가운데 식탁에 떡 하니 자리 잡는 스님을 보고는 모두들 궁금증이 일었다. 스님은 다가온 주인에게 갈비구이 2인분을 주문했다. 주인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주인은 손님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느끼고는 일이 어떻게 되어나가는가 두고 보기로 했다. 불판 위에 도톰한 갈빗살이 얹혔다. 고기는 자글자글 익어가며 촉촉한 육즙을 내밀어 보였다. 집어 먹을 때가 되었다. 주인이 먹기 좋게 갈빗살을 잘랐다. 스님은 그중 제일 먹음직한 살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음식점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대화를 중단하고 숨죽이며, 스님 입 앞에 놓인 한 점 고기가 입 안으로 들어가려는 광경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스님은 먹음직하게 구워진 고기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스님이 일생에 누릴 수 있는 최고로 기쁜 순간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스님은 살점을 입 안으로 가져가기 전에 젓가락으로 들고 10초 정도 쾌감을 맛보기 직전의 골든 타임을 음미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갑자기 고기 맛을 보고 싶어 하던 그 무서운 식욕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훤하게 밝아져왔다. 눈앞에 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온갖 욕망과 회한과 보리심이 요동치다가 일순간에 잠잠해졌다.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음식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암자로 가는 길이 곧게 나 있었다.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음이 한없이 투명해졌다. 자연과 하나 되는 자신을 느꼈다. 고기 맛을 보려는 식욕은 티끌조차 일지 않았다. 스님은 식욕뿐만 아니라 다른 온갖 욕망에서도 벗어난 듯했다.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스님은 무너지려는 최후의 순간에 부처님이 자신을 불러 올린 것을 알았다. 



임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법과대학 교수로 31년간 재직 후, 현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 서적 이외에 장편소설 『영성지수(靈性指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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