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뵈메의 『휴먼 터치』 | 정여울 작가의 '책 읽기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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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마음과 몸의 연결 고리


『휴먼 터치』


레베카 뵈메 지음, 안미라 옮김, 새로온봄 刊, 2022

얼마 전 단골 미용실에 갔다가 눈이 유난히 커다란 강아지를 만났다. 길가에 버려져 교통사고를 당한 강아지를, 미용실 사장님이 입양해 키우고 있었다. 사장님은 이미 오랫동안 몰티즈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도, 길가에 버려져 교통사고까지 당한 불도그를 동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하고 입양까지 결심했다. 세 마리 강아지를 한집에서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사장님의 입가에서는 좀처럼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강아지들 때문에 항상 온기가 있다고. 그 온기가 너무 좋다고. 사장님의 그 따스한 마음씨 때문에, 나는 멀리 이사 가서도 10년 전 그 단골 미용실에 계속 찾아가게 된다. 입양된 강아지 이름은 ‘헤븐’인데, 헤븐이가 나에게 다가와서는 내 손을 마구 핥았다. 그 따스하고 뭉클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까르르 웃음이 나왔다. 나는 사실 불도그를 무서워하지만, 헤븐이의 따스한 혓바닥이 내 손을 핥는 순간 그 두려움이 사라졌다. 언뜻 보기에 사나운 불도그의 겉모습은 나에게 두려움을 주었지만, 주인의 충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는 불도그는 낯선 존재인 나조차도 친구로 받아들여준 것이다. 이렇듯 나와 다른 존재와의 따스한 접촉이야말로 두려움을 이겨내는 최고의 치유제가 아닐까.

『휴먼 터치』는 바로 이 ‘접촉’의 중요성을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알려준다. 인간의 터치뿐 아니라 살아 있는 것들의 모든 터치가 삶을 더 아름답게 한다. 예컨대 고양이는 자신을 쓰다듬도록 허락하며, 고양이를 쓰다듬는 사람은 뿌듯함과 친밀감을 동시에 느낀다. 동물이 자신을 쓰다듬도록 허용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믿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불도그가 내게 먼저 다가와서 내 손을 핥아주는 것이 그토록 기분 좋았던 이유는 바로 그 뿌듯함, 신뢰감, 이제 너와 나는 서로 낯선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다정한 접촉은 친밀감과 안전함, 행복감을 준다. 반대로 적대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접촉, 특히 폭력은 불행과 불안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접촉이 궁극적으로 행복을 강화한다는 것, 더욱 다정하고 빈번한 접촉으로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저자는 애정을 담아 전달하는 이상적인 터치는 섭씨 32℃의 체온으로 초당 1~10cm의 속도로 쓰다듬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전해준다. 물론 터치의 온도와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심 어린 눈빛과 따스한 마음 그 자체일 것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 깊이 믿고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터치는 더욱 많은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을 분비하게 만든다. 손을 잡는 것, 머리를 쓰다듬는 것, 등을 두드려주는 것, 포옹, 키스 등 그 모든 애정의 표현들은 옥시토신을 분비시킨다. 저자는 터치와 친밀감, 행복 호르몬 옥시토신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표현한다. “놀랍게도 옥시토신의 효과는 스스로 강화된다. 터치가 자주 이루어질수록 친밀감은 커진다.” 

코로나 시대는 다정한 사람들과의 빈번한 신체적 접촉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코로나 시대 이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는 것은 바로 이런 따스한 접촉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반영한다. 저자는 터치를 일종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사람다운 삶,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서로를 더 자주 토닥이고 위로해주어야 하기에. 불안할수록, 힘들고 외로울수록, 인간은 더 많은 접촉과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터치’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말 못하는 아기들은 터치를 통해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정하게 토닥여주고 안아줘야 비로소 잠드는 아기들의 모습은 터치야말로 중요한 소통의 수단임을 알려준다. 언어가 없어도 전해지는 감정의 속삭임, 복잡한 설명 없이도 곧바로 전해지는 사랑과 친밀감의 소통 수단이 바로 터치다. 언어 이전의 원초적 언어, 그것이 바로 터치인 것이다.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어 ‘언택트(untact) 시대’라는 말까지 일상화되어버리는 코로나 시대일수록, 우리는 서로를 더욱 따스하게 토닥여주며 ‘살아 있음의 온기’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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