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아닌 내일을 사는 삶 | 캠페인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사는 삶


박재민 
배우



영하 71.2℃. 화성에나 있을 법한 가늠조차 어려운 이 미지의 기온이 실제로 지구상에 존재할까? 그러나 실제로 러시아연방의 북동부에 위치한 오이먀콘(Oimyakon)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 기록한 최저 온도이다. 이 기록은 인간이 사는 마을 중 최저 온도로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지금도 오이먀콘은 인간이 사는 가장 추운 마을로 기록되어 있다. 집 안 현관의 기온이 한국의 일반 가정집 냉장고 온도보다 낮아 고기 등의 식품을 그대로 냉장 보관하는가 하면, 기온이 영하 30℃로 올라가면 사람들이 따뜻하다며 가벼운 티셔츠 차림으로 가게에 가는 마을이 오이먀콘이다.  

더 놀라운 것은 오이먀콘의 여름 날씨다. 오이먀콘은 분지다. 겨울에는 차가운 기운이 마을을 둘러싼 산을 넘지 못해 계속해서 추위지는데 반해 여름에는 열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기온이 섭씨 40℃를 육박해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무려 110℃에 달한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오이먀콘이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동네라고 자랑한다. 

오이먀콘은 1년 중 거의 절반이 혹한기이기에 짧은 기간 동안 겨울을 날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사냥을 통해 식량을 비축하는데, 신기하게도 각 가정은 한겨울을 버틸 정도의 식량만 확보하고 그 이상은 사냥을 나가지 않는다. 오이먀콘 주민들은 절대로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거나 불필요한 안락함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보다 내일을 바라보고, 나보다 더 큰 자연을 바라본다.

오이먀콘의 삶을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필자가 오이먀콘 소르돈노흐(Sordonnookh)라는 마을에 아주 잠깐이지만 살아본 경험 때문이다. 마을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이 방문했다는 ‘1호’ 방문 증명서도 발급받았을 정도이니 감히 오이먀콘의 전문가(?)라 자부할 수 있겠다. 오이먀콘에서의 삶은 모든 것이 불편하고 부족했다. 한 번 쓰고 버릴 법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용도로 또 쓰인다. 다 쓴 칫솔은 청소용 솔로 환생하고, 청소용 솔은 다시금 자동차 정비용 기름 솔로 환생한다. 인간만 윤회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 또한 환생에 환생을 거듭하여 나름의 업을 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오이먀콘의 집들은 생활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다회용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고, 일회용 제품은 그 본래의 목표와 달리 환생의 삶을 살게 된다. 이렇듯 일회용품이 극단적으로 적은 삶,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곳이 바로 오이먀콘이었다. 물론 주민들이 이렇게까지 일회용품의 사용을 주저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삶의 터전인 자연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무소유를 정의했다. 기가 막힌 가르침이다.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는 것이 아니라, 딱 쥘 수 있는 만큼만 쥐는 것, 그것이 무소유인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손에 무엇을 쥘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삶에 전혀 필요가 없는 허욕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반드시 필요한 생명수가 될 수도 있다. 자명하고 간단해 보이는 이 원칙을 불교에서 중요한 가르침으로 설파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소유는 실로 얼마나 힘든 수행이란 말인가. 하지만 필자는 오이먀콘의 주민들이 어떻게 무소유의 삶을 영위하는지 목격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수행자 같은 삶을 오이먀콘 주민들은 매년, 아니 평생을 산다. 오이먀콘 주민들은 소유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소유하고 그 이상의 불필요한 안락함에 집착하지 않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달 음식 그릇을 봉지에 싸서 내놓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는 일회용품의 사용이 너무 익숙해져 식당에 ‘불편하니 일회용 그릇으로 보내달라’고 요청을 한다. 만약 불필요한 안락함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 있다면 우리가 매일 목격하는 지구 종말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사나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했다는 기사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사는 삶. 나의 안락함보다 자연의 보존을 중시하는 삶, 물건의 부족함이 생활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삶, 그것이 진정한 평안이요 안락임을 알기에 그들의 삶은 결코 부족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우리도 오늘부터, 아주 자그마한 오이먀콘 생존법을 실천해보면 어떨까?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되뇌며 말이다. 

박재민
배우. 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고 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대한스키협회 스노보드 심판위원장,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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