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마음을 이해하는 인간의 마음
『동물과의 대화』
템플 그랜딘 · 캐서린 존슨 지음, 권도승 옮김, 언제나북스 刊, 2022 |
어린 시절, 반려동물을 두 번이나 가슴 아프게 잃었다. 한 마리는 어미였고, 한 마리는 새끼였다. 어미 보현이가 교통사고로 죽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새끼 복실이도 뱃속에 어린것들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어미는 자꾸만 목줄을 풀고 혼자 신나게 뛰어놀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새끼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도 모른 채 우리가 자고 일어나니 벌써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보현이는 목줄을 너무 세게 매어놓으면 낑낑거리고 괴로워해서 불쌍한 마음이 들어 느슨하게 풀어주면 어느새 제 마음대로 동네 산책을 나가곤 하는, 정말 영혼이 자유로운 강아지였다. 복실이는 아파도 아픈 시늉을 하지 않고 조용히 아픔을 참기만 하는 성격이라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강아지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템플 그랜딘의 『동물과의 대화』를 읽으며, 나는 그때 내가 강아지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지 못했다는 것, 충분히 그들을 존중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가슴 저미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폐아로 태어나 차별과 냉대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동물학자로 성장한 템플 그랜딘은 영화로도 그 인생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다. 템플 그랜딘은 40년간 동물의 행동과 심리를 연구하면서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아픔과 기쁨을 비롯한 온갖 감정을 표현하는 동물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밝혀냈다. 인간에게는 알아채기도 어려울 정도의 미세한 자극이 동물에게는 커다란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것. 온도든 냄새든 빛이든 물기든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어떤 동물들은 커다란 심리적 자극이나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인간의 눈’으로 동물들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물을 의인화해서 바라보는 것은 동물에게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착한 개와 나쁜 개가 따로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 또한 인간 중심적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모든 것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자폐인으로 태어나 다른 사람보다 소리나 촉각에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템플 그랜딘은 자신이 앓고 있는 자폐증이 오히려 동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작은 소리일지라도 자신에게는 마치 천둥번개가 치는 것처럼 크게 들리는 소리들. 다른 사람들이 그저 반가움으로 가벼운 포옹만 해도 자신은 심각한 고통을 느낀다는 것. 이 모든 사실이 ‘남다른 감각’을 타고난 자폐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인 것처럼, 동물도 보통의 인간과는 매우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훈련을 통해서 동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생각도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것이다. 훈련을 잘 시키면 동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동물에게 반발심을 키울 수 있다. 훈련을 통해서 잘 ‘복종’시키면 동물을 훌륭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으며, 오히려 인간의 입장에서 과도하게 길들인 동물은 공포와 불안을 내면화해 인간에 대한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템플 그랜딘은 말한다. 자폐인과 동물은 일반인은 미처 느끼지 못하는 감각까지 모두 느낄 수 있다고. 자폐인은 소리에 대해 매우 예민한데, 그들이 아주 작은 소리만 들어도 느끼는 고통은 일반인이 태양을 똑바로 오랫동안 쳐다볼 때 느끼는 고통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가 고양이가 고통을 숨기는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통을 표현하면 자신의 약점을 들켜 더 강한 동물에게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강아지가 고통을 숨겼던 것은 주변의 다른 존재에게 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동물이 표현하지 않아도 고통을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동물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면밀히 관찰해야 함을. 사람의 마음 또한 그렇지 않을까. 한사코 ‘나는 괜찮아, 난 행복해’라고 주장하는 착한 사람들의 눈빛 뒤에 숨은 공포와 불안을 알아채는 것, 그것이 진정한 마음 돌봄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가 자신 곁의 약한 존재들, 내 곁의 아픈 존재들의 마음을 더욱 예민하고 섬세하게 알아차리는 마음공부를 멈추지 않기를.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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