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한텅스텐 김순경 회장의 철학과 경영
인류 사회의 등불이 되어
자비롭게 세상을 비추다
노부호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
불교와의 인연
김순경 회장이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30대 후반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 즉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에 빠지면서부터다. 그는 10년 가까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음에도 기독교의 무조건적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여름휴가를 얻어 무작정 택시를 타고 강원도로 가던 길에, 경기도 가평에 있는 현등사에 들러 마당을 쓸고 있던 노스님을 만나자마자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을 정도로 존재에 대한 의문에 빠져 있었다. 그는 여기서 일주일가량 수행하면서 이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불법에 귀의했다. 이후에도 그는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잠시 여행을 떠났다가 해인사에 들러 성철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난 후 선물로 받은 책갈피 속의 일원상 그림을 보고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밝히는 지혜로 이 사회를 위해 널리 선업을 쌓으라는 무언의 가르침’을 얻었다고 했다.
김순경 회장은 ‘인류 사회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필라멘트 사업을 구상했다. 이 업종은 그가 전혀 모르는 분야였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유망하다고 판단해 ㈜새한텅스텐을 창업했다.
기업 이념과 제도
그는 무엇보다 기업 이념과 가치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류 사회의 등불’이 되어 자비로운 빛을 널리 비춘다는 의미의 ‘자광보조(慈光普照)’라는 기업 정신하에 다음의 세 가지 기업 이념을 세웠다.
1. 인류의 생활 향상을 위한 기업이 될 것을 지향한다.
2. 직원들의 생활 안정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한다.
3. 기업은 삶의 진리를 깨치고 실천하는 수련 도장이다.
세 가지 이념 중에서 3번이 1, 2번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기업이 수련 도장이 되어 직원들의 인격이 향상되면 자연스럽게 인 류의 생활 향상이나 직원의 생활 안정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광보조의 창업 정신과 세 가지 기업 이념의 배경에는 ‘돈 벌려고 기업한 것이 아니고 기업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김순경 회장의 기업관이 있다. 자본을 투자한 투자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청춘을 투자한 직원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기업주를 비롯해 직원과 사회가 모두 주인이고, 기업은 직원과 사회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에는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에서도 보기 힘든 몇 가지 제도가 있는데 그것은 이익 배당 제도, 사원 금고 제도, 종업원 중심의 인사고과와 손익 결산 제도, 그리고 화요 교양 강좌다.
이익 배당 제도는 매년 당기 순이익의 20% 내지 30%를 3년 이상 근속한(특별한 업적이 있을 경우에는 예외) 종업원들에게 배당하는 것이다. 배당액은 인성과 근무 성 적에 따라 정해진다. 인성은 ‘주인 자세 12 덕목’이라는 행동 규범이 있는데, 사원 대표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에서 각 직원의 12 덕목을 평가한다. 여기에 근무 성적을 더해 구한 합계 득점에 따라 배당액이 결정된다. 지급 방법은 현금이 아닌 특별 상여 증서로 지급하고 배당금은 회사에 적립하게 된다. 적립된 배당금은 기본적으로 퇴직 후 1년이 지나면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주식 전환 자금, 결혼 자금, 내 집 마련 자금 등 목돈이 필요할 때도 인출할 수 있다. ‘주인 자세 12 덕목’은 첫째, 일을 만들거나 찾아서 능동적으로 한다, 둘째, 부당한 불평불만을 하지 않고 사리를 가려서 건설적으로 협의를 한다(…) 등 직원들의 인격적 성숙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 제도로 사원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자율적으로 일하게 되었다.
사원 금고 제도는 사원들의 생활 안정과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사원들이 내 집 마련 등 긴급 가계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사원 자율로 운영된다. 사원 금고의 재원은 1992년 사원 금고 개설 당시 김순경 회장이 기금을 출연하고 모든 사원들이 5,000원을 1구좌로 해 1구좌 이상 불입한 것을 재원으로 해서 운영되고 있다.
배당금을 줄 때 인사고과를 실시하는데 인사고과는 인사위원회를 구성해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하고 있고, 손익 결산서도 각 부서의 사원 대표 격인 팀장과 임원들이 자율적으로 작성하고 있다.
화요 교양 강좌는 매주 화요일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1시간 동안 김순경 회장이 직접 강의하는 것이다. 화요 교양 강좌는 27년간 계속되었다.
기술 개발과 세계화
㈜새한텅스텐은 창업 초기에는 생산 시설의 미비와 기술 부족 등으로 불량률이 높았고, 생산성도 떨어졌다. 또 영업 활동도 저조해 판매 실적 역시 낮았다. 1979년 여름 회사는 도산 위기에 빠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이때 회사에 원자재를 공급해주던 일본의 스나가 텅스텐주식회사의 스나가 회장으로부터 3만 달러의 운영 자금을 지원받아 회생과 동시에 스나가 텅스텐주식회사와 기술 제휴 협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전 사원들이 기술 개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1980년 11월 드디어 새한텅 스텐이 만든 필라멘트 제품이 처음으로 해외로 수출되었다. 그 후 인덕대학과 산 학 협력으로 기술 경쟁력을 높이면서 수출이 매출의 70~80%를 차지할 정도로 중가했고, 2011년에는 ‘500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로 새한이라는 이름은 점점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인류 사회의 등불’이라는 창업 정신도 세계 곳곳에 새한의 제품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2004년에는 새한기술연구소를 설립해 필라멘트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을 주도 할 반도체 분야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여 초소형, 초정밀 제품의 검사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인 ‘프로브 핀(Probe Pin)’을 개발해 새한마이크로텍도 창업했다.
경영 철학의 기초 - 불교 사상
김순경 회장의 자광보조의 창업 정신과 세 가지 기업 이념의 기초가 되는 불교 사상은 다음 네 가지다.
자타불이(自他不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둘이 아닌 하나이다. 우리는 모습과 생각은 달라도 그 다름, 차이는 대립과 차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화와 협력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동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면서 화 합해야 한다. 화합은 조직의 기본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
우리가 관계 속에서 존재해야만 한다면 나만 잘 살아야 된다는 것은 탐욕이다. 나눔과 봉사의 정신으로 상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순경 회장 이 새한을 창업하면서 경영 이익 사원 배당 제도를 사규로 명문화해 시행하고, 사원들의 생활 안정을 도모한 것은 자리이타의 정신이다.
인과일치(因果一致).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을 잘해야 성과가 좋아지기 때문에 좋은 제도를 도입해야 경영 성과가 좋아질 것이다. 경영 이익 사원 배당 제도, 주인 자세 12 덕목과 화요 교양 강좌 등은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초가 되어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기틀이 되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 이다. 생존 발전하기 위해서는 계속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 김순경 회장은 외국 기업과의 기술 제휴와 국내 대학과의 산학 협력을 통해서 기술 개발에 매진해 세계 속의 새한이라는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결어
보통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는데 김순경 회장은 처음부터 자광보조의 창업 정신에 기초를 둔 인류의 생활 향상, 직원들의 생활 안정과 삶의 질 향상, 수련 도장으로서의 기업이라는 가치와 철학을 앞세웠고, 영업과 생산이 중요하지만 그 보다 직원들의 인성 교육을 더 중요시함으로써 가치와 사람을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성장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기술 개발에도 열심히 노력해 새한텅스텐을 세계 속의 기업으로 자리 잡게 했다.
필자는 평소 경영자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김순경 회장은 바로 이러한 나의 생각을 표본으로 보여주는 경영자다. 그의 경영은 불교 철학에 기초를 두고 이루어지고 있다. 경영자가 어떤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얼마나 깊이 있게 실천하느냐가 그 기업의 경영 수준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필자가 2003년 김순경 회장과 대담한 내용과 『자광보조(慈光普照)』(김순경 저, 어문각, 2010년)에 기초해 김순 경 회장이 경영을 2세에게 물려준 때인 2003년 10월까지 그의 경영 철학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으로 경영 전반에 대해 평가한 것은 아니다.
노부호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Asian Institute of Managemen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버지니아 주립대학교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경영연구소 소장, 미국 인디애나대 Fulbright 교환교수, 일본 와세다대 일본 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 객원교수, 미국 네브래스카대(링컨) 경영학과 조교수,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 중앙대 부교수,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21세기 비즈 니스 포럼 공동 대표, 대한불교진흥원·불교방송 이사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V이론에 의한 제3의 경영』, 『통제 경영의 종말』 등이 있으며, 『경영 혁명』, 『해방 경영』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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