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퍼서의 『마음챙김의 배신』 | 책 읽기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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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화된 ‘명상 산업’을 향한 따끔한 일침


『마음챙김의 배신』



 넷플릭스에 명상과 관련한 콘텐츠가 신작으로 출시되어, 명상 관련 프로그램의 위력을 깨달았다. ‘전 세계인들이 이렇게나 명상에 열광하는가’ 하는 기쁜 마음으로 보았더니, 역시나 프로그램 자체가 일종의 홍보물이었다. 명상 관련 사업체인 ‘헤드 스페이스’가 <명상이 필요할 때>라는 프로그램을 넷플릭스에 올린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넷플릭스가 과연 명상과 어울리는 매체일까. 알고 보니 그들은 그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명상 앱과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발 마음챙김의 지혜를 이런 식으로 상업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돈이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자본의 탐욕이 이제 명상까지 산업화하고 있다. 명상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물론 명상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는 교육적인 프로그램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프로젝트, 즉 명상을 통해서 거대한 산업화를 추구하는 대기업들이 생기는 것은 곤란하다. 명상의 의미 자체를 생산성과 효율성, 즉 더 많이 돈을 벌 수 있는 쪽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명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음챙김은 그런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챙김 그 자체만을 위해 복무할 때, 명상은 진정으로 우리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음챙김의 배신』은 바로 이런 명상의 상업화에 멋진 경고장을 날린다. 마음챙김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 즉 내면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상 센터를 세우고, 전문가를 아무리 많이 모셔와도 그 목적이 ‘기업의 생산성 향상’, ‘매출 증가’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마음챙김이 아니다. 게다가 성공한 사람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명상을 이용한다든지(그들의 불안과 죄책감을 가라앉히기 위한 용도로), 잘못된 세상은 전혀 바꾸려 하지 않고 내 마음만 잘 챙기면 된다는 식의 마음챙김은 더더욱 문제가 있다. 마음챙김을 잘못 활용하면 ‘내 개인의 마음만 편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쪽으로 귀결될 수 있다. 나 혼자만 마음 편하면 끝인 것일까. 자기만의 사적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아주 개인적인 마음의 평화로는 진정한 마음챙김 혁명이라 볼 수 없다. 이 책은 영성의 세속화로 인해 명상 프랜차이즈 산업이 되어가고 있는 마음챙김의 세속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담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는 개인적인 처방으로써 마음챙김이 권장되고있다. 기업체에서는 유명한 스님을 초빙해 명상 콘텐츠를 직원들에게 강의하기도 하고, 대학생들의 심리 상담에 마음챙김을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챙김 수련을 단지 ‘모든 것은 내 마음 때문이다’라는 메시지로 축소하고, “내려놓고, 알아차림하면서, 판단하지 않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것은 큰 문제다. 존 카밧진 박사가 마음챙김 명상에서 ‘불교색’을 쏙 뺌으로써 명상을 세계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명상의 본래적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비판은 면하기 힘들게 되었다. 카밧진의 아이디어는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도구로써 명상을 활용하는 것이었는데, 그 본래 의도는 좋았지만 그 의도가 과대포장됨으써 명상은 구도의 여정이 아니라 일종의 심리 처방전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마음챙김의 대표 상품인 ‘MBSR(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완화)’이다. 맥도널드의 빅맥처럼 명상을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든 히트 상품이기도 하다. 명상을 ‘마케팅’하기 위해 불교를 마치 탈착 액세서리처럼 떼었다 붙였다 하는 마음챙김 ‘업계’의 행태는 명상은 물론 불교까지 오해하게 만드는 잘못된 관행이다. 불교를 지우고 마음챙김의 효과만을 가져가려는 이른바 과학적 명상은 명상도불교도 함께 부정하는 잘못된 접근이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나 틱낫한을 마음챙김의 메신저로 ‘홍보’할 때는 갑자기 불교의 이미지와 연결하려는 마음챙김 산업의 이중성은 그들의 얄팍한 상술을 보여줄 뿐이다. 마음챙김은 결코 현실과 동떨어져 불행한 나의 현실을 개인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산업화된 마음챙김은 가짜 깨달음을 마케팅하고 있는 것이며, 깨달음의간난신고 없이 깨달음의 피상적인 효과만을 홍보하는 위험한 산업인 셈이다. 마음챙김을 불교와 결코 분리할 수도 없다. 타인을 향한 한없는 자비심을 갖는 것, 그릇된 자아의식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관점을 없앤다면, 어떻게 마음챙김 자체가 성립할 수 있겠는가. 타인의 슬픔에 결코 눈감지 않는 자비, 자아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해탈의 마음을 버린 마음챙김은 진정한 마라톤이 아니라 러닝머신 위의 무한 달리기처럼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다. 마음챙김은 나와 세계를 향한 눈부신 비전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결합할 때 비로소 진정한 깨달음의 궤도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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