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사찰 속으로
믿음으로 돌아가는 절,
귀신사의 석사자상
- 개(狗)로 오해하며 벌어진 이야기
손신영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연두색 풀이 꽃보다 예쁜 봄이 왔다. 메마른 나뭇가지마다 물이 올라 화려한 꽃망울로 콘서트를 펼치는 봄. 봄이다. 자그마한 절집, 김제 귀신사에도 홍매화, 수선화, 산수유가 활짝 폈다. 귀신사는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전주 인근을 대표하는 절집이었다. 전주와 금산을 잇는 길목에 자리했을 뿐만 아니라 수십 동의 불전이 늘어서 장관을 이뤄, 오가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당시 지도에는 귀신사가 금산사보다 크게 표시되곤 했다. 지금은 불전 3동과 요사 2동만 있는 작은 규모지만, 사역 밖의 석조 계단과 석축, 「청도리 3층석탑」과 「귀신사 부도」 같은 석조물들은 과거 광대했던 귀신사를 암시하고 있다.
귀신사(歸信寺)는 귀신사(鬼神寺)로 오해되어, 어떻게 그런 절 이름이 있느냐고 묻는 이가 적지 않다. 처음 법등이 밝혀지던 통일신라시대에는 국신사(國信寺)였다.‘나라에서 신앙하는 절’이라는 의미를 드러낼 만큼, 국가적 사찰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오래가지 않아 귀신사로 바뀌었다. 국(國)이 귀(歸)로 바뀐 것이다. 이후 오랫동안 귀신사로 기록되었는데, 뜬금없이 조선 말기인 1873년에, ‘구순사(狗脣寺)에서 귀신사(歸信寺)로 개명’했다고 한다. 앞글자 변화 순서대로 보면 ‘국(國)・귀(歸)・구(狗)・귀(歸)’로 바뀐 것. 국(國)・귀(歸)로 바뀔 즈음, ‘鬼神寺’라 새긴 기와가 등장한 것까지 더해보면, 귀신사는 국신사에서 개명된 후 민간에서는 귀신사(鬼神寺)로 오인되고, ‘귀’를 ‘구’로 발음하는 지역 사투리에 따라, 오랫동안 ‘구신사’라 불렀던 것으로 정리된다. 문자로는 귀신사(歸信寺), 말로는 ‘구신사’라 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구신사라는 말의 근거로 삼은 문화재가 경내에 있다는 점이다. 대적광전 뒤편 언덕의 석수상.
석수상은 「귀신사 3층 석탑」 앞쪽에 자리하고 있다. 엎드린 석수 위에 기둥을 세워놓은 모습인데, 기둥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쪽은 대나무 마디, 위쪽은 남근 형상이다. 민간에서는 남근숭배 사상이 불교에 융합된 결과로 여기며 구순혈의 기를 누르기 위해 개(狗) 형상의 석수를 세운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석수상과 기둥의 연결은 엉성하고 조형적으로도 조화롭지 않다. 더구나 석수의 얼굴은 개가 아니라 멋진 사자상이다. 귀신사 석사자상처럼 등에 구멍이 있지만 아무것도 끼워지지 않은 사자상은 구례 「논곡리 3층 석탑」에도 있다. 귀신사 상에 비해 얼굴 부분 마모가 심하지만, 신체 표현은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 사자상은 「분황사 모전석탑」 기단, 「불국사 다보탑」, 「법주사 쌍사자 석등」, 「화엄사 사사자 삼층 석탑」 등에서 볼 수 있다. 주로 탑이나 석등과 관련된 것이다. 귀신사 석사자상처럼 배를 땅에 대고 엎드린 형태로는 고려시대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과 조선 초기 「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융탑」 앞의 사자 석등과 「회암사지 무학대사 부도」 앞의 쌍사자 석등이 있다.
이처럼 석사자상은 석등 받침석이 대부분이어서 귀신사와 논곡리탑의 사자상도 등의 넓은 구멍에 간주석을 끼웠던 석등 부재일 가능성이 높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승탑 앞에 석등이 있었다. 이 시기 귀신사에도 승탑 앞에 석등이 조성되었으나 화사석과 간주석은 사라지고 받침석인 사자상만 남은 것 같다. 귀신사 석수상이 석등을 받치던 사자라면 기둥처럼 세워진 석물은 무엇일까? 대나무 마디가 조각된 석주를 사자 석등의 원부재로 보기도 하지만 연결 상태가 엉성해 신빙성이 약하다. 그 위 남근 형상 석주는 차일석(遮日石; 묘소에서 제사 지내거나 행사할 때 치는 천막을 고정하기 위해서 네 귀퉁이에 설치하는 돌)과 닮았다. 정리해보면, 고려시대 혹은 조선 초기 승탑 앞에 조성되었던 석등의 사자 받침석만 남아 방치되어 있다가 후세에 사자 받침석 구멍에 맞는 석재를 꽂아둔 것이 민간에 친숙한 개와 남근석으로 오인되며 여러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절 이름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봄볕이 내려앉는 사자상 앞에서 청도리 마을을 바라보며 불전들이 즐비했던 대가람, 귀신사 모습을 그려본다.
손신영 대학에서 건축,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자 제주대학교 외래교수이다. 한국 전통 건축을 근간으로 불교미술을 아우르는 통섭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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