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대한 자비 | 캠페인 “육식을 줄이자”


생명에 대한 자비


정병조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벌써 35년쯤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인도 네루(Nehru)대학교의 국제학대학원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때 델리에서 세계종교평화회의가 열렸는데 한국 종교 대표 세 명도 참석했다. 불교는 초우 조계종 총무원장, 가톨릭은 김수환 추기경, 개신교는 강원룡 목사 등 세 분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인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더위와 음식이다. 역겨운 향신료 때문에 어지간히 비위가 강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 나는 회의장에 가서 세 분을 뵙고 우리 집에 저녁 초대를 했다. 차마 스님만 모시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집사람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스님들의 내왕이 빈번했기 때문에 채식 식단이 별문제가 없지만 기독교 쪽의 두 분에게는 예의가 아닌 듯싶었다. 그렇다고 육식과 채식을 반반으로 하기도 어색해서 고민 끝에 채식으로 저녁을 차렸다.
 며칠 동안 한식을 못 드신 세 분은 김치와 된장찌개에 벌써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식단이 온통 그린필드였기 때문에 다소 의아한 듯 보였다. 이윽고 추기경이 물었다.
 “정 교수는 불자여서 고기를 안 드시는 모양이네요.”
 “아닙니다. 저도 고기를 먹습니다. 다만 즐기지는 않습니다.”
 화제는 당연히 왜 스님들이 고기를 안 먹을까로 흘러갔다. 고기 먹는 행위는 일상적인데 왜 금기시할까 하는 의문도 제기했다. 건강 문제에서 적자생존까지 고기 먹는 일에 대한 정당성이 언급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반문했다.
 “왜 고기를 먹습니까? 건강 말씀은 사실과 다릅니다. 인도의 12억 인구 중에 약 6억 정도는 채식주의자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성인병이 거의 없고, 육식하는 이들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삽니다. 내 생각에는 고기 먹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맛있으니까요.”
 모든 생명은 죽는 것을 싫어한다. 천수를 누린 삶에도 여한이 남는데, 하물며 힘이 약해서, 인지(人智)가 발달하지 못해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모든 생명은 죽는 것을 싫어한다.
불교에서는 이 자비의 마음을 오계의 첫 번째 불살생(不殺生)으로 설명한다.
인간을 죽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동물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불교의 수행자들은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을 절제한다.
식육의 문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불교에서는 이 자비의 마음을 오계의 첫 번째 불살생(不殺生)으로 설명한다. 인간을 죽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동물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불교의 수행자들은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을 절제한다. 식육의 문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종교의 목표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자비에 있다고 본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중생 제도’이고 기도교식으로는 ‘이웃 사랑’이다. 그래서 불교의 스님들은 맛있는 고기반찬은 중생들에게 양보하고 스스로는 거친 풀 음식으로 연명하고자 한다. 비단옷은 이웃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누더기로 일생을 마치고자 한다. 이 정신이 살았을 때 불교는 건강했고 나라 또한 튼튼했다. 그러나 이 정신이 퇴색하면 불교도 망했고 나라 또한 무너졌다.
 『범망경(梵網經)』이라는 부처님 가르침이 있다. 이곳에는 십중(十重)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가 언급되고 있다. 십중이란 열 가지 바라이죄, 즉 교단 추방에 이르는 중죄를 가리킨다. 사십팔경계는 마흔여덟 가지의 가벼운 죄를 말한다. 살면서 자주 범할 수 있고, 또 그에 따른 과보 또한 미약하다. 그래도 그 악업이 반복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사십팔경계의 두 번째가 음주, 즉 술 마시는 일이고, 세 번째가 식육, 즉 고기 먹는 일이다.
 화랑의 스승 원광 법사는 세속오계를 말할 때 특히 살생유택(殺生有擇)을 강조했다. 산목숨을 부득이하게 해쳐야 할 때는 두 가지를 유의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첫째는 택시(擇時), 즉 때를 가려야 한다. 오뉴월 동물들의 번식기와 육재일(六齋日)에는 살생하지 말라. 두 번째는 택물(擇物), 즉 대상을 가려야 한다. 사람이 짐승을 해칠 때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이다. 그런데 해가 안 되는 미물은 해치지 말라. 아울러 가축, 예컨대 개나 소, 말이나 돼지 등은 죽여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산목숨을 해치면 또 다른 심각한 업보가 따른다. 즉 내 안에 있는 선근(善根)을 점차 사라지게 한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고기 먹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고기를 덜 먹으면 우선 내 건강이 보장된다. 당뇨나 고혈압, 혈관 질환 등을 막을 수 있다. 또한 불자들의 자연 사랑, 자연의 섭리를 지킬 수 있다. 불자 되는 첫걸음은 이와 같은 자비의 실천이 우리들 행동 양식의 주체여야 한다.



정병조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졸업 및 영남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도 네루(Nuhru)대 교수 및 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 (사)한국불교연구원 이사장 겸 원장, 동국대 부총장, 불교학 연구회 회장, 금강대 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불교방송(BBS)』 라디오 프로그램 <무명을 밝히고>를 오랫동안 진행했다.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인도철학사상사』, 『불교문화사론』, 『한국 불교철학의 어제와 오늘』 ,『불교강좌』, 『반야심경의 세계』, 『현대인의 불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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