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교 이야기
불교를 만나
불교 정신 치료의 길을 걷기까지
전현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할 때 여러 절에서 6개월 정도 지낸 적이 있다. 또 의대에 다닐 때에도 불교 학생회에 적을 두고 활동했지만 불교가 내 삶에 크게 자리 잡지는 않았다. 단지 불교가 좋을 뿐인 친불교적인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와의 진정한 인연은 1985년 봄 우연한 기회에 고익진 선생님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 고익진 선생님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이면서 50대 초반이었고 나는 30세의 정신과 전공의 2년 차였다. 그때 고익진 선생님이 한 말이 나의 인생을 바꾸는 시발점이 되었다. 내가 정신과 전공의라는 말을 듣고 “불교는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완벽한 시스템이다. 당신이 하는 정신의학도 정신적인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 아닌가. 인간의 괴로움을 완벽히 해결하는 시스템인 불교의 용어만 조금 바꾸면 훌륭한 정신의학 시스템이 될 것이다”라고 한 말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아! 대단한 분이시다. 기회가 되면 이분께 배워야겠다’ 하고 마음먹었다.
그해 11월 고 선생님이 지도하는 공부 모임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달 한 번 모여 선생님의 법문을 듣고 질문을 내주면 그것을 한 달간 사유해서 점검을 받는 방식이었다. 12월 법문에서 선생님이 업설에 대해 말씀하셨다. 세상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떤 원리로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듣는 순간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는 느낌이 들면서 ‘불교는 진리구나. 이것을 평생 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에게 들은 업설을 내 생활에 적용하니 세상이 잘 이해되었고 괴로움이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불교를 잘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한다면 나처럼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때부터 불교와 정신 치료라는 두 길을 걸었다. 내가 불교 공부와 수행을 통해 뭔가를 알고 경험해 도움을 받으면 그것을 잘 분석해 그것이 누구나할 만한 보편적인 경험일 경우 그것을 불교 용어를 쓰지 않고 일반 용어로 환자들과 나누었다. 이러한 노력을 2014년 ‘불교 정신 치료’ 라는 내 나름의 체계를 세울 때까지 계속했다.
2014년 수행을 통해 불교에 대한 내 나름의 의문과 내가 어떤 존재이고, 나의 행불행은 어떻게 해서 오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고 나서는 그동안 걸었던 불교와 정신 치료라는 두 길이 불교 정신 치료라는 하나의 길로 만났다. 불교가 완벽한 정신 치료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앞으로 이 체계를 정교화해 기존의 프로이트가 세운 정신분석이나 융이 세운 분석심리학과 같이 세계적으로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사용될 수 있는 정신 치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과제로 남아 있다. 걱정은 되지 않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전히 남아 있으니 잘 찾으면 길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불교의 길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가 고익진 선생님을 만나 업설을 알고 불교가 진리라는 사실과 불교에 정신 치료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러나 고 선생님과의 인연은 짧았다. 만난 지 3년 후 고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2003년 미얀마에 가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사띠(마음챙김) 수행을 하기 전까지는 불교 공부에 진척이 없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는 2003년 미얀마에서 사띠 수행을 통해 무상, 고, 무아를 나름대로 경험하고 몸과 마음의 속성을 알고 정신적인 괴로움이 어디에서 오며 어떻게 해야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지 알게 되면서 불교 정신 치료의 중요한 요소를 발견한 것이다.
셋째는 초기 경전인 니까야와 율장, 아비달마를 공부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알고 앞으로 무엇을 경험해야 하는지 정확한 지도를 갖게 된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인과의 법칙을 기반으로 하면서 인과의 법칙에 의해 우리가 우리를 이루는 몸과 마음을 눈곱 만큼도 통제할 수 없다는 무아라는 사실과 죽으면 윤회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괴로움이 끝없이 계속되는 윤회로 부터 벗어나라는 것이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고 부처님이 제시하는 수행법은 모두 그것을 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삼매를 닦는 사마타 수행을 해 삼매를 얻은 후 삼매를 얻음으로써 생기는 지혜의 눈으로 먼저 궁극적 실재인 궁극적 물질과 정신을 보고 그 후에 그것의 속성인 무상, 고, 무아를 보고 아는 위빠사나 수행을 한 것이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하기 전에 이미 눈, 귀, 코, 혀, 몸과 같은 감각기관과 통상적인 마음으로 하는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나름대로 무상, 고, 무아를 경험할 수 있었고 우리 몸과 마음이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으며 어지간한 괴로움은 다 없앨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계는 있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궁극적 실재인 궁극적 정신과 물질을 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12연기를 봄으로써 지금의 내 존재가 어떻게 해서 생기고 어떻게 해서 유지되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지금의 어떤 현상이 어떻게 해서 있는지 알고 모든 의문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정신과 의사로서 불교 정신 치료의 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부처님이 올바로 깨달으셨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제자들에 의해 온전히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불교 공부와 수행을 통해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많은 괴로움이 사라졌다. 불교의 핵심인 인과의 법칙을 알면서 어떤 것이든지 모두 필연적인 이유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이 힘들지 않게 되고 나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지 않게 되었다.
후회를 하지 않게 되고,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아프지 않게 되고, 마음이 아플 때 또 이어서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다. 또 사물에 대한 수식어가 떨어졌다. 예를 들면 ‘오늘 발표 잘했다’ 할 때 ‘잘’이 수식어다. 발표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인과의 법칙에 따라 일어났을 뿐인데 그것을 잘 못 보니 거기에 우리의 판단이 붙는 것이다. 수식어는 우리가 만든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만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면 괴로움이 없어진다. 내 생각에 아라한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자연처럼 된 존재다. 그래서 아라한에게는 신체적인 현상은 있지만 정신적인 괴로움은 없다. 존재함으로써 겪을 수 있는 것을 그대로 다 겪지만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없다.
나에게 불교 공부는 외도가 아니라 본업이다. 불교는 내가 하는 정신의학을 더 잘하게 해주고 새로운 정신 치료법까지 개발하게 해준다. 이런 사실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든지 그 분야와 불교를 같이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불교가 그 분야에 큰 힘을 준다. 지혜와 어려울 때 견딜 수 있는 힘을 준다.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여러 권의 책을 내고 그중에 두 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검증된 진리로서의 불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2014년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끝내고 2015년에 우리나라에서 출판한 『정신과 의사의 체험으로 보는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불교와 명상 책 출판으로 유명한 미국의 위즈덤 출판사(Wisdom Publications)에서 『Samatha, Jhāna, and Vipassanā』라는 제목으로 2018년에 출판이 되었다. 그다음이 2018년에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전현수 박사의 불교정신치료 강의』가 학술 책 출판으로 유명하고 이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은 거의 교과서가 되는 스프링어(Springer) 출판사에서 2021년에 『Buddhist Psychotherapy: Wisdom from Early Buddhist Teaching』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나로서 큰 영광인 동시에 우리나라 불교가 세계에 기여했다는 생각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면서 초기 불교는 검증된 진리라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그런 만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고 여건이 허락하는 한 초기 불교를 알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 아울러 전문가나 일반인들 모두 불교 정신 치료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쉽고 근거가 분명한 설명을 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리고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니 그것을 자신들만 알아서는 안 되고 후대의 사람들에게 꼭 전해야 된다고 생각한 제자들처럼 나도 부처님과 제자들의 도움으로 경험한 것을 전하는 데 힘이 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다.
전현수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받고 전문의가 되었다. 한양대 의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에 미얀마에서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수행을 했다. 저서로는 『정신과 의사의 체험으로 보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전현수 박사의 불교정신치료 강의』 등이 있고 『붓다의 심리학』 등의 번역서가 있다. 해외 발간 저서로는 『Samatha,Jhāna, and Vipassanā』(Wisdom Publications), 『Buddhist Psychotherapy: Wisdom from EarlyBuddhist Teaching』(Springer)가 있다. 2018년 대한불교진흥원의 ‘원효학술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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