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유교,
서로 닮아가는 소통의 역사
지혜경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인문학연구원 전문연구원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유불도 삼교는 오랜 기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각의 사상을 발전시켜왔다. 특히 외래 사상이었던 불교는 중국에 뿌리내리기 위해 토착 사상인 유교, 도교와 소통을 시도하며 불교의 우월성을 알리고자 했다. 도교와의 관계에서는 유사성을 먼저 강조하고 이후 차별성을 꾀했던 반면, 유교와는 관계에서는 차이점을 수용하며 유사성을 만들어갔다. 그래서 유불도 삼교 가운데 불교와 유교의 교섭의 역사는 서로 달랐던 두 사상이 어떻게 소통의 접점을 만들어 회통하면서도 각자의 고유성을 지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대로 불교와 유교는 지향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다. 불교는 세상을 벗어난 삶을 추구하는 반면, 유교는 세상에서의 윤리적 삶을 중시한다. 그래서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 유교와 부딪힌 지점이 유교의 윤리 덕목인 효와 충의 실천이었다. 전통 유교 사회의 효 관념에 의하면, 삭발을 하고 가족을 버리고 출가하는 행위는 불효이다. 유교에 의하면,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는 훼손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잘 보존하고, 가족을 꾸려 자식을 낳아 집안의 대를 이어가는 것이 효를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는 이러한 갈등 지점을 극복하기 위해, 사문의 출가 행위가 더 가치 있는 일을 위한 용기 있는 희생임을 강조하며 불교의 가르침이 더 큰 효를 행하는 실천법임을 설명하고자 했다. 유교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궁금증과 비판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모자이혹론』에서는 기존의 유교의 성인들이 몸을 훼손시키면서도 도를 실천하던 사례를 제시하며, 삭발과 출가가 큰 이상을 실천하는데 문제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위진남북조시대의 여산 혜원 스님은 수행자가 도를 이루면, 그 수행의 공덕이 부모님과 가족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에게 미친다는 이야기를 하며 불교 수행의 공덕이 유교의 효의 실천보다 더 큰 효가 됨을 주장했다. 이 외에도 불교에서도 효의 가치를 중시하고 있음을 중명하기 위해 효 실천 행위를 뒷받침하는 여러 불교적 설화들이 강조되고, 『부모은중경』 같은 경전이 만들어졌다. 한편 일상의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고 출가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해 수행하는 불교 수행자들의 모습은 당시 통치자들에게 충의 윤리 덕목을 위배한 것으로 비춰졌었다. 이에 대해 혜원은 왕권의 지배로부터 분리된 출가 공동체의 독자성을 주장하며, 불교와 유교가 다루고 있는 세계가 다름을 분명히 했다. 비록 이후 불교 승려들이 왕권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고, 정치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며 불교도 세상을 교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탈속과 세속의 경계선은 불교와 유교를 가르는 기준으로 계속 존재해왔다.
두 사상이 서로 다루는 세계와 지향하는 바가 달랐지만, 불교와 유교의 유사성을 찾는 논의는 계속되었다. 북위시대에는 불교의 오계(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음주, 불망어)와 유교의 오상(인, 의, 예, 지, 신)을 동일시하는 유불일치론이 등장했다. 비록 당나라 때 불교의 병폐로 인해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불교를 배척하는 논의들이 일어났으나, 한편에서는 불교와 유교의 통합론도 대두되었다. 예를 들어 배불론의 선봉장인 한유의 경우, 불교가 일상적 윤리를 잘 알지 못하고, 삶에 대해 허무적 태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으나, 불교에 우호적이었던 이고는 불교의 마음 수행과 유교의 수행론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면서 유교의 우월성을 살려내자고 주장했다. 이후 등장한 유불도 삼교를 하나로 보고자 하는 삼교통합론, 삼교회통론, 삼교융통론이 당시에 주류적 담론으로 서서히 자리매김했다.
공통의 소통 기반인 마음과 본성 논의를 찾아내어 서로
비슷한 구조를 가진 사상이면서, 각자 고유의 영역을 담당하며
태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으나, 불교에 우호적이었던 이고는 불교의 마음 수행과 유교의 수행론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면서 유교의 우월성을 살려내자고 주장했다. 이후 등장한 유불도 삼교를 하나로 보고자 하는 삼교통합론, 삼교회통론, 삼교융통론이 당시에 주류적 담론으로 서서히 자리매김했다.
삼교통합론은 세속과 탈속의 구분을 넘어서서 유교와 불교, 도교가 통합될 수 있는 새로운 접점을 제시하며, 삼교를 통합하고자 했다. 이 담론은 기본적으로 유불도 삼교가 지향하는 바는 같으나 그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유불도가 공통으로 지향하는 바란, 세 가르침 모두 사람의 선한 본성을 계발시켜 깨달음의 길로 이끌게 한다는 것이다. 북송시대에 삼교융통의 입장에 서서 유불 간의 소통을 논의한 계숭 선사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는 유교와 불교가 서로 융통할 수 있는 이유를 성인의 마음에서 찾았다. 성인의 마음이란 모든 사람이 착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는 이것을 도라고 했다. 이 도는 마찬가지로 중생의 마음에도 들어 있는데, 성인의 가르침을 만나야 발현시킬 수 있다고 한다. 계숭에 의하면, 붓다의 가르침은 마음과 세상을 벗어난 경지를 다스리며, 중도와 오계의 가르침을 펴는 반면, 공자의 가르침은 세상을 다스리며, 중용과 오상의 가르침을 통해 중생을 교화한다. 또한 그는 주역에서 말하는 인간과 우주의 본성과 불교에서 말하는 본성이 결국은 같다고 이야기하며, 유교와 불교의 소통의 접점을 넓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 전혀 달라 보이던 유교와 불교는 심성론(마음과 본성)이라는 소통의 기반을 찾아내었다. 로버트 샤프에 의하면,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논의는 맹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불교는 이 맥락 속에서 불성의 논의를 발전시키며 심성론을 정립했고, 이 영향을 받아 유학자들도 좀 더 체계적 심성론을 정립해 신유학을 만들었다. 주자학과 양명학. 두 학파 모두 인간의 선한 본성의 근원을 우주적 이치(天理)로 설명한다. 다만 성리학은 감정적 부분은 제외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순수 본성 부분만을 우주적 이치로 설명하는 반면, 양명학은 본성과 감정을 모두 포함한 마음 전체를 우주적 이치로 보았다. 그래서 양명학자들은 마음을 우주라 말했다. 양명학의 이러한 마음에 대한 이해는 불교의 마음 이해와 가깝다. 중국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도 단순히 개개인의 마음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인 우주적 마음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명은 우주와 같은 마음의 본래 모습을 양지라고 불렀으며, 양지를 우리의 욕심이 가리지 않을 때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양지의 모습은 선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불성과 유사하다. 인간 마음의 본래 모습이 불성이며, 번뇌의 가림 없이 불성이 그대로 작용할 수 있을 때 부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명학에서는 심지어 양지를 설명할 때 본래면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주자학에 비해 양명학은 불교와 유사한 심성론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간 마음을 우주적 마음으로 보고, 인간의 이기심 또는 번뇌에 가려진 선한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심성론의 구조는 서로 유사하나 각각이 말하는 선한 본질인 양지와 불성이 지칭하는 내용과 이를 드러내는 수행법에서는 차이가 있다. 정인재 교수가 『불교평론』의 열린 논단 강의에서 언급한 양지의 특성을 요약해보면, 양지는 인간이나 성인이 모두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것으로 ‘도덕적 심미적 법칙인 천리(天理)’이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며, 동시에 측은해하는 마음이다. 이와 비교해볼 때, 불성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 부처가 되려는 마음을 내고 수행하는 자질, 최고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자질일 뿐, 보편적 도덕적 법칙이 아니고, 도덕적 판단을 초월한다. 물론 부처의 네 가지 마음인 자비희사의 성질이 있기 때문에 불성은 양지의 측은지심과 유사한 자비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두 사상의 심성론의 차이는 마음의 본질에 도덕적 법칙이나 판단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에 있다. 그렇기에 양지를 드러내는 수행은 도덕적 자각에 입각한 지행합일, 도덕적 실천 행위이다. 반면 불성을 드러내는 수행은 마음을 비우고 도덕적 이분법적 사유의 틀을 벗어나는 참선 수행이다.
이처럼 불교와 유교는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이질적인 사상이었으나, 수 천년의 긴 시간 동안, 그 다름의 부딪힘 속에서 서로의 논의를 흡수하며 공통의 소통 기반인 마음과 본성 논의를 찾아내어 서로 비슷한 구조를 가진 사상이면서, 각자의 고유의 영역을 담당하며 서로를 보완하는 다른 사상으로 발전해왔다.
지혜경 연세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철학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박사 후 전문 연구원을 거쳐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방문학자로 한국의 종교, 일본의 종교 등을 연구했고, 연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연세대 철학연구소 인문학연구원 전문연구원이자 희망철학연구소 철학교수, 경희대와 가천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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