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죽다가 살아난 경험
임웅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사람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는다. 살아가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겪기도 한다. 중병에 걸리거나 인재(人災)든 천재(天災)든 엄청난 재앙을 당하거나 전쟁과 테러 같은 난리에 휩쓸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극한 경험을 한다. 등골에 식은땀이 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죽기 일보직전의 경험을 한 사람에게는 뿌리가 뽑히는 정신적 지진이 수반되기도 한다. 죽다가 살아난 경험을 하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인생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 모든 존재의 의미와 순위를 가늠하는 가치관에 있어서 근본적인 전도(顚倒)가 초래될 수 있다.
나는 여러 차례 죽다가 살아났다. 젖먹이 때는 내가 병약하기도 했고 한국전쟁의 와중에 의료 처치를 제대로 받을 수 없어서, 부모님이 나를 죽은 걸로 포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는 다섯 식구가 모여 잠자고 있던 방에 창칼이 찌르듯 번개가 들이쳐서 일가족이 몰사할 뻔한 일도 있었다. 방 안을 가로지르는 번개 빛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정면으로 태양을 응시하는 듯했다. 낙뢰가 방 안 벽면을 때려 큰 구멍을 뚫어놓았다. 아버지는 당일로 마당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 있는 미루나무를 베어버리도록 했다.
50대 중반의 나이 때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죽을 뻔했다. 허름한 농가 주택이 딸린 작은 땅을 사서 주말에 전원생활을 하던 때였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즈음 울타리로 심은 조팝나무가 무성하게 자랐기에 예초기로 가지 절단 작업을 했다. 나는 가지 사이에 가려 있던 말벌 집을 보지 못하고 예초기로 건드리는 실수를 범했다. 순간 왱 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말벌 떼가 내 얼굴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왔다. 내 동작도 빨랐다.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재빨리 얼굴 아래로 숙이고, 몸을 뒤쪽으로 날렸다.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편 땅 위에 꽈당 넘어져 꼼짝 못했다. 내 얼굴에는 이미 두세 군데 말벌 침이 꽂혔다. 말벌 떼의 공격을 보는 순간 나는 죽든가 아니면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으리라고 직감했다. 극히 짧은 순간 온갖 상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던 사람이 낙하하는 몇 초 동안을 몇 분처럼 느끼면서, 자기가 살아온 마디마디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말벌에 쏘여 죽기 직전의 내가 꼭 그랬다. 그 와중에도 내가 말벌에 쏘여 죽는 것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더라도 순탄히 죽어야지 웃음거리가 될 일로 죽는 것은 그 찰나에도 용납되지 않았다. 개학한 후 학생들이 모여 “선생님이 말벌에 쏘여 죽었대!” 하고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땅 위에 너부러져 지면에 납작하게 붙어 꼼짝 못하고 있었던 게 나를 살렸다고 했다. 말벌은 움직이는 물체, 솟아 있는 물체를 공격한다고 했다. 축구공만큼 덩어리진 말벌 떼는 공격 목표를 잃어버리고 울타리 상공을 몇 번 선회하고는 옆집으로 날아갔다. 옆집 충청도 할머니가 외치는 소리가 더더욱 느리게 들렸다. “그 집에 무슨 일이 있어유? 웬 벌떼가 이렇게 난리를 친데유!” 그렇게 해서 나는 죽다가 살아났다.
60대 후반에 나는 또다시 죽다가 살아났다. 이번에는 자동차 사고였다. 혼자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계기판에 타이어 이상 신호가 들어왔다. 곧바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조처를 취해야 했는데, 나는 낙관했다. 타이어 바람은 서서히 빠지는 법이니, 그럭저럭 30분가량 남은 목적지 톨게이트를 벗어나 펑크 수선을 하면 되리라 싶었다. 그러나 20여 킬로미터를 달렸을까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 가보는 인천 부근의 고속도로인데,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덩치 큰 화물차들이 많았다.
차에 네 바퀴의 주행 균형이 흔들리는 느낌이 왔다. 고속도로 노선이 교차하는 톨게이트에서 맨 왼쪽 하이패스 차선을 통과하자마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 톨게이트 통과 차선은 무려 스물이 넘어 보였는데, 내 후방 대여섯 차선에서는 화물차량들이 무서운 기세로 가속해 오고 있었다. 펑크 난 타이어가 순간적으로 폭발해서, 내 차가 도로 중간에 정지해버린다면, 돌진해 오는 화물차에 깔려버리고 말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속도로 보나 차간 거리로 보나 앞서 달리다가 갑자기 주저앉은 승용차를 화물차가 온전히 살려둘 것 같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즉각 갓길로 차를 뽑아야 할 위기임을 깨닫고, 급격히 우측으로 내달렸다. 어떤 승용차 운전자가 손을 흔들어 내 차의 앞 타이어를 가리키는 장면이 보였다. 펑크 난 타이어에서는 짙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내가 차를 갓길에 세우려고 과감히 차선 변경을 시작한 지 10초가 지나지 않아 펑크 난 타이어가 무지막지하게 폭발했다. 여러 갈래로 찢긴 타이어 고무 조각이 하늘로 치솟았다. 차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천우신조로 내 차는 갓길 가까이까지 도달해서 멈춘 것이 아닌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는 처참한 사고를 면했음을 알았다. 한 5초만 늦었어도 내 차는 화물차들이 달려오는 차선에서 멈추었을 것이고, 화물차는 내 차를 깔아뭉갰을 것이다.
나는 차에서 기듯이 빠져나와 온몸을 벌벌 떨었다. 5초 정도의 극히 짧은 시간 차이로 나는 죽음의 문턱을 벗어났다. 사고 후 나는 몸이 떨려 운전을 할 수 없었다. 견인차를 불러 사태를 수습하도록 했다. 나는 그 길로 집에 가서 혼이 나간 사람처럼 사흘을 꼼짝 못하고 누워 지냈다. 정신적 충격이 그토록 컸다. 생사를 넘나든 그 순간이 머리에 맴돌았고, 내가 죽거나 식물인간이 된 환상에 사로잡혔다. 누워 지낸 사흘 동안 삶과 죽음이 지척에 맞닿아 있음을 절감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여러 번 위기 때마다 죽을 수 있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살아났다. 고비를 넘긴 내 삶은 무슨 의미를 안고 있을까? 나를 살려준 하늘은 내게 무슨 사인을 보내는 것일까?
죽다가 살아난 경험들을 되새기던 나에게 개안(開眼)이라면 개안이라고 할 변화가 찾아왔다. 죽다가 살아나서 다시 얻은 삶은 하늘로부터 ‘덤’으로 받은 삶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죽을 운명이었던 내가 여러 차례 기적적으로 살아나 덤으로 받은 새 생명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서서히 뿌리내렸다. 덤으로 받은 삶은 내가 좋아라 하고 일신의 안락만을 꾀할 차원의 것이 아니고, 무언가 조그마한 것이나마 기여하면서 이웃과 사회를 위해 덤으로 얻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죽다가 살아난 경험’에서 비롯한다. 변화한 삶이 좀 어렵고 힘들더라도 죽음을 면하고 덤으로 얻은 것인데,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 축복이 아니겠는가!
임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법과대학 교수로 31년간 재직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전공 서적 이외에 장편소설 『영성지수(靈性指數)』, 단문집(短文集)인 『센타크논 전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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