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생물학으로 본 불교의 생명사상 | 불교와 생명과학 3

불교와 생명과학 3


양자생물학으로 본 

불교의 생명사상


이진원 

경희대학교 학술연구교수



뻐꾸기의 경이로운 여행

‘뻐꾹 뻐꾹’ 하고 우는 새의 소리가 뻐꾸기의 울음소리라는 것은 새에 관심이없는 사람이라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뻐꾸기가 우리에게 친숙한 이유는 소리만큼이나 아마도 그들의 독특하고 악명 높은 번식 전략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새들은 새끼를 기르기 위해 짝을 짓고, 직접 둥지를 만든 후, 낳은 알을 품고, 새끼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 고된 어미 새로서 양육의 역할을 하지만, 뻐꾸기는 이런 고된 역할을 다른 새, 즉 숙주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 전가시키는 ‘탁란’이라는 번식 전략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 약 1만여 종의 새들 중 이와 같이탁란을 통해 번식하는 새는 1% 정도로 100여 종이 있다.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탁란 조류들은 모두 여름 철새다. 즉 봄에 우리나라에 찾아와 탁란을 통해 번식을 하고 여름이 가기 전에 우리나라를 떠나 소위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서 겨울을 난다. 독특한 번식 행동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탁란 조류들의 이동 경로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인공위성 추적기를 이용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알려졌으며, 우리나라도 뻐꾸기와 벙어리뻐꾸기의 경이로운 여행을 추적해 이들이 언제 어떻게 이동하고 어디로 가는지 최근에 확인했다. 이들의 여행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끝낸 뻐꾸기는 대부분 8월 중순에서 9월 초순 사이에 서해를 건너 중국으로 들어간다. 중국으로 들어간 뻐꾸기들은 중국 남부 내륙을 관통해 베트남 북부에 다다르고, 라오스, 태국을 거쳐 벵골만과 접하고 있는 미얀마 서부 해안에 다다른다. 약 3,000km를 거의 쉼 없이 날아온 이들은 여기서 어디로 갈지 고민을 하는 듯하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1,000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 빠르게 인도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좀 멀리 가더라도 벵골만 해안을 따라 돌아서 이동해 인도로 들어갈 것인가. 추적한 개체들을 보면 아마도 건강한 개체들은 바다를 가로질러 이동함으로써 시간을 줄이고 그렇지 못한 개체들은 돌아 이동함으로써 생명을 지키는 것 같다. 이렇게 인도 남동부에 도착한 뻐꾸기들은 한동안 그곳에 머물기에 이곳이 그들의 따뜻한 남쪽 나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약 2주간의 휴식을 통해 체력 보충을 마치고 그들은 다시 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바다 건너 아프리카 대륙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도 서부 해안에 도달한 뻐꾸기에게는 벵골만을 건널 때와 마찬가지로, 눈앞에 있는 아라비아해를 바로 건너 아프리카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예멘 등이 있는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벵골만 앞에서는 돌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벵골만을 도는 것은 비교적 거리가 짧고, 일대에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에 오래 걸리더라도 이동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먹이를 충분히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른 얘기다. 더 걸리는 시간만큼 필요한 먹이를 사막 한가운데서 구하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뻐꾸기들은 벵골만보다 훨씬 긴 3,000km에 달하는 아라비아해를 건너 아프리카 소말리아로 들어가기로 한다. 이동을 앞둔 인도 서부 해안의 뻐꾸기들은 몸 상태 를 확인하고, 바람의 방향과 세기, 날씨 등 모든 조건을 점검하고 또 확인한 후 목숨을 건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많은 새들이 바다를 건너다가 탈진해서 죽거나 바다 한복판에서 강한 바람에 휩쓸려 엉뚱한 곳으로 가곤 한다. 이렇게 단번에 아라비아해를 성공적으로 건너 아프리카에 들어간 우리나라의 뻐꾸기들은 아프리카 대륙 동부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며 내려가다 적도를 지나 탄자니아와 모잠비크 일대에서 드디어 월동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약 1만 2,000km 떨어진 이곳이 뻐꾸기가 선택한 따뜻한 남쪽 나라인 것이다. 반면 벙어리 뻐꾸기는 우리나라를 떠나 곧장 남쪽으로 내려간다. 중국 남부와 대만을 거쳐 필린핀과 동남아 일대의 많은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호주 바로 위에 있는 뉴기니섬까지 내려가서 월동을 한다. 서로 비슷하게 생기고 유전적으로도 가까운 뻐꾸기와 벙어리 뻐꾸기이지만 이들의 남쪽 나라는 지구 반대편에 각각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철새들이 어떻게 방향을 잡고 길을 찾아가는지 이동에 대한 질문은 오랫동안 사람들을 흥분시키며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이제는 이들이 별자리나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해 방향을 잡는다는 것이 밝혀졌고, 더 나아가 그 세부 기작을 설명하기 위해 터널링 등 양자역학의 메커니즘까지 대두되어 접목되고 있다. 하지만 뻐꾸기와 같은 탁란 조류들의 이동에는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뻐꾸기와 벙어리 뻐꾸기 새끼들이 무사히 숙주 새에 의해 길러지고 건장해져 그들의 남쪽 나라로 이동할 즈음에는 이미 모든 어미 새들은 우리나라를 떠난 뒤다. 결과적으로, 올해 태어난 새끼 새들은 어미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남쪽 나라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여럿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새들이 아니라 단독으로 주로 밤에 이동하는 새들이니, 이동을 앞둔 어린 새들의 막막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지식을 이용하면 뻐꾸기가 어떻게 아프리카로 찾아가고 벙어리 뻐꾸기가 뉴기니섬으로 찾아가는지 완벽하진 않지만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새들에서 이동 거리나 방향 등이 어느 정도 유전적으로 결정이 된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뻐꾸기를 포함한 철새들이유전적으로 정해진 방향과 거리를 기계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능동적으로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왜 새로 태어난 뻐꾸기 새끼는 지구 반대편의 아프리카로 가려 하고, 벙어리 뻐꾸기 새끼를 적도 넘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뉴기니섬으로 이끄는 힘이 무엇일까? 난생처음 인도 서부 해안에 다다른 뻐꾸기 새끼는 3,000km가 넘는 망망한 아라비아해를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하며, 그것을 건너도록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 이동에 관한 유전 정보들이 어떻게 발현되어 새들의 육감과 선택으로 나타나는지는 단순히 진화의 개념을 적용해 설명하는 그 이상이 필요해 보이며, 새들이 지구 자기장을 보는 것을 이해하는 데 양자역학의 메커니즘이 이용되는 것처럼 양자생물학적 접근법이 그 하나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뻐꾸기와 벙어리뻐꾸기는 수천만 번의 전생을 각자의 몸에 받으며 그 길을 다녔던 업이 마나식에 저장되어 있어서 어미의 가르침 없이도 홀로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며, 엄청나게 많은 개체수가 한꺼번에 이동하는 것도 수천만 번 다녔던 전생의 기억 속의 보편적인 길을 찾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철새의 이동에서 개체 수가 적다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확률이 매우 희박할 것이다. 이것은 연기의 법칙을 따른다.

양자생물학과 진화, 그리고 다양한 생물의 공존

 기계론적으로 진화의 개념을 간략하게 정의하면 세대 간 형질의 빈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세대 간이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수직적 관계를 말하며 형질이란 눈의 색이나 날개의 길이와 같은 표현형에서부터 그 배후에 있는 유전형까지 모두를 일컬으며, 이들의 상대적 빈도의 변화가 곧 진화인 것이다. 진화는 그것이 생물학에서 가지고 있는 큰 영향력만큼이나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고, 그로 인해 정치나 경제, 문화, 개인의 선택의 영역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그 개념에 대해서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진화라는 단어를 듣고 연상되는 말을 대라면 보통 자연선택이나 다윈, 돌연변이, 경쟁, 적응 등의 단어를 떠올린다. 대부분 경쟁과 선택에 대한 얘기들이며, 결과적으로 진화라는 개념이 경쟁에서의 우위를 통한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종종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화라는 가설을 제시한 다윈이나 월리스를 포함한 동시대 사람들이 가졌던 질문은 무엇일까?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보았고 느꼈으며, 거기서 나온 질문이 무엇이기에 진화라는 답을 내놓았을까?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제도를 포함한 전 세계를 돌면서 채집 여행을 한 것과 월리스가 동남아시아 열대 지역, 특히 말레이시아 지역 일대에서 오랫동안 생물을 조사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 보았던 것은 그들의 고향인 영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셀 수 없이 다양한 생물들이었을 것이다. 화려한 색의 개구리들, 비슷하지만 서로 부리가 다른 새들, 기이한 형태의 파충류와 벌레들, 이렇게 수없이 많은 다양한 생물들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면서 이들이 품었던 질문은 아마도 이 많은 종들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서로 어우러져 있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즉 이들은 생물의 다양성과 공존에 대한 질문을 던졌으며 그 해답으로 진화를 제시했는데,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들의 답을 보면서 다양성과 공존이 아닌 경쟁과 선택을 먼저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생물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때론 질서정연한 듯, 때론 무작위적인 것처럼 보이는 관계들을 형성하며 상호 의존 속에 공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뻐꾸기가 이동을 하는 이유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여름이 지나면서 먹이가 되는 털 달린 애벌레들이 줄어들고, 먹이가 줄어들면서 숙주 새 역시 더 이상 번식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양자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은 호흡과 먹이사슬을 통해 기본이 되는 탄소나 수소와 같은 물질들을 주고받으며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즉 불교의 생명사상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오늘의 내 몸을 구성하던 원소들이 내일은 식물의 몸속이나 새들의 몸속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지구 밖 멀리서 지구 위 생명체들의 움직임을 바라본다면 무작위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질서정연한 모습이 아마도 양자 세계의 전자와 양성자들의 그것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뻐꾸기와 벙어리뻐꾸기의 이동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진화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양자역학의 메커니즘이 필요한 것처럼, 어떻게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하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적 관점과 더불어 양자생물학적 관점을 접목할 것이다.
 불교와 양자론의 유사성이 많은 부분에서 밝혀졌듯이 양자생물학의 연구 결과에 따라 보이지 않는 신비한 생명현상들이 공의 실체를 증명할 것을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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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셰필드대학교(Univ. of Sheffield)에서 동물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박사후연구원, 한국조류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경희대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주요 역서로는 『보전유전학 입문』(공역), 『행동생태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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