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의 本家 - 詩人 李聖善 | 문태준 시인이 읽어주는 불교 詩

 


정진규 시인은 1939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했고, 2017년 작고했다. 시 전문 잡지 『현대시학』 주간을 오래 지냈고,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우리나라 산문시의 영역을 크게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만하 시인은 한 평글을 통해 정진규 시인의 시는 “흐르면서 조식(調息)을 하고 있다”면서 “우주의 기미(機微)를 잡는 몸”이라고 평가했다. 실로 정진규 시인의 시는 우주와 교감하고 호응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시 「봄비」에서 “봄비 내린다/ 저도 젖은 제 몸을 한 번 더 적신다”라고 썼다. 그리고 이 시구에 대해 스스로 설명하길 “나무들이 제 몸의 물기를 용쓰듯 뽑아 올려 봄비를 마중하듯, 봄비가 젖은 제 몸을 다시 한 번 적시듯 화응하는 시의 우주적인 울림, 그게 시의 본체요 자유가 아닌가”라고 적었다. 시인의 짧은 해설처럼 정진규 시인의 시는 ‘우주적 화응’을 줄곧 노래했다.

이 시 「적멸의 本家」는 이성선 시인을 생각하며 쓴 시다. 이성선 시인의 성품과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허욕과 적멸을 찬탄한다. 

특히 이성선 시인의 시 「미시령 노을」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그 깨달음을 부러워한다. 「미시령 노을」은 이러하다.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시 「미시령 노을」 또한 ‘우주적 화응’을 노래했음은 물론이다.

이성선 시인이야말로 적멸을 노래한 시인이고, 적멸의 허방에 사는 시인이고, 적멸의 본가에 살 자격이 있는 시인이라고 적고 있다. 특히 별세한 이성선 시인의 몸을 “이끼, 바람, 풀잎, 햇살, 나뭇잎 물방울들이 손을 벌려” 받아갔다고 적은 대목은 한 인간의 육신과 마음이 곧 우주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또한 인간의 육신과 마음이 사대(四大)로 종국엔 흩어진다는 것을 시인이 깊이 절감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른바 ‘무위의 시학’을 선보인 정진규 시인은 생전에 사찰과의 인연을 시로도 많이 드러냈다.  

서법에도 조예가 깊어서 시인의 서체는 ‘경산체(絅山體)’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이 있다.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BBS불교방송』 제주지방사 총괄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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