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로 이해하는 무아 | 생명과학으로 이해하는 불교의 이치 5

생명과학으로 이해하는 불교의 이치 5


유전자로 이해하는 무아 


유선경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연기(緣起)한다. 조건에 의해 생성·지속·소멸하기에 어떤 생명체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스스로를 스스로이게끔 해주는 본질(자성自性)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는 자성이 결여되어 공(空)하다. 생명체는 연기해 공하다. 연기하는 생명체는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사멸할 때까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생명체와 환경과의 쉼 없는 상호 관계로 변이가 일어나고, 변이의 경로를 따라가면 결국은 어디까지가 개개의 생명체의 범위이고 어디부터가 환경인지 구분하기가 모호해진다. 생명체와 환경의 견고하고 분명하던 경계가 사라져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생명체는 연기하기에 무상(無常)하다.   

연기해 공하고 무상한 생명체 중에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나의 신체가 변하고 내 의식 세계를 구성하는 생각이나 감정 그리고 의지 어느 하나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다. ‘나’라는 사람도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를 겪는 열린 생명체다. 나의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어떤 것도 나를 규정하는 불변불멸한 자아(自我, self)일 수 없다. 연기해 공하고 무상한 나는 독립적인 실체(實體)로서 존재하는 자아일 수 없어 무아(無我)다. 

그러나 불변하는 자아에 대한 집착은 쉽게 포기하기 힘들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아가 유전자(DNA)에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자인 DNA는 ‘나’라는 존재가 시작될 때부터 내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DNA인가라는 생명과학철학의 의문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논의의 편이를 위해 유전자와 DNA를 동일하게 취급하겠다.) 

그러나 생명과학의 연구 결과는 DNA가 언제나 모든 경우에 견고하거나 안정되게 그 고유한 구조를 유지하지는 않는다고 암시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긴 DNA 이중나선이 꼬이고, 또 한 번 더 심하게 꼬이고, 그리고 꼬임이 풀어지고, 나아가 이중나선이 풀어진다. 이어서 가닥마다 새로운 상보적 DNA 가닥이 형성되어 결국은 두 세트의 DNA 이중나선이 형성된다. 이러한 복제 과정은 DNA 구조가 쉼 없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DNA 이중나선 염기 배열을 보면, DNA에 변이가 생겨 염기 배열이 바뀌거나 배열이 제거되기도 한다. 그리고 DNA의 구성원이 아닌 분자들이 DNA의 특정한 배열에 붙은 후 여러 과정을 거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후생 유전 현상을 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DNA는 그 구조나 염기 배열이 언제나 그대로 있지 않다. 그래서 유전자(DNA)는 불변의 자아가 아니다. 

한편 어떤 이는 DNA 이중나선 구조가 아닌 DNA 안에 새겨져 있는 유전 정보가 불변불멸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DNA 염기 배열에 암호화된 유전 정보가 완벽하게 보전되어 지속되기에, 구조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를 항상 나로 규정하는 변치 않는 자아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은 유전 정보가 DNA 염기 배열과는 별개의 어떤 것이라는 전제를 품고 있다. 그래서 유전 정보가 DNA를 구성하는 물질적 분자들이 아닌 비물질적 어떤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러한 유전 정보는 물질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에 인과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본질이나 자아라면 존재 세계에 실재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데, 비물질적 유전 정보는 실재할 수 없기에 자아가 될 수 없다. 

한편 유전 정보를 DNA 이중나선에 실현된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유전 정보를 DNA 염기 배열과 동일시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논의했듯이 DNA 염기 배열이 무상하기에 유전 정보도 똑같이 무상하다. 그래서 무상한 유전 정보는 불변불멸한 자아일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므로 유전자(DNA)나 유전 정보는 몸과 마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를 항상 동일한 나로 만들어준다는 자아가 아니다. 

DNA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환경에 상호 의존하며 변하고 있다. 생명과학의 거시 세계뿐만 아니라 분자 세계까지 꿰뚫는 연기의 진리는 DNA가 무상해 불변한 자아일 수 없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DNA는 자아가 아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해로운’ DNA 배열에 결합하는 RNA 배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여기에 DNA을 자르는 효소(단백질)를 붙여 ‘표적 추적해 제거’하는 실험 기법이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해로운’ DNA 배열만 100% 정확히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 RNA 배열 조각이 ‘해로운’ DNA 배열에 달라붙으면 단백질이 정확히 바로 그 부위만을 잘라내리라 기대했지만, 많은 실험 결과는 예상과는 달랐다. ‘해로운’ DNA 배열 이외의 다른 많은 DNA 염기 배열이 함께 제거되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매우 걱정스러운 것은 ‘해로운’ DNA와 함께 잘려나간 DNA 배열도 동일하게 ‘해로운’ 기능을 해야 문제가 없는데, 그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잘려나간 이 부분이 ‘이로운’  DNA 배열이라면 생명체의 생존과 번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현재의 유전자 편집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에도 근본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름 아닌, DNA는 연기해 공하고 무상하다는 사실이다. 어떤 DNA 염기 배열이 단백질을 만들어 이 단백질이 한때 ‘해로운’ 기능을 하더라도,  이 ‘해로운’ DNA 염기 배열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변이한다. 변이한 DNA가 동일한 단백질을 만들어 동일한 ‘해로운’ 기능을 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설령 생명체가 어느 일정 시간 동안 ‘해로운’ DNA를 제거한 완벽하거나 또는 안성맞춤의 상태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DNA도 그리고 그것의 환경도 변하기 때문에 불변한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붓다의 연기법은 불변하는 ‘해로움’이나 ‘완벽함’ 그리고 ‘안성맞춤’ 등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는 망상임을 깨닫게 해준다. 따라서 DNA(유전자)가 불변한다는 그릇된 전제를 기반으로 한 현재의 유전자 편집 기술은 그렇게 정확하거나 유용한 질병 치료 기술이 될 수 없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을 인지해야 하는데, 현재 유전자 가위 기술은 단순히 특정한 유전자를 제거하는 실험 방법이다. 특정한 유전자 배열 이외의 것은 고려하지 않기에, 그 유전자를 제거한 후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무시하고 진행되는 기술이다. 그래서 이렇게 문제가 심각한 생명과학 기술로 만들어진다는 ‘맞춤 아기’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탄생해 안성맞춤으로 생존 번식할 수 있는 ‘맞춤 아기’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선경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세포분자생물학과 박사 과정 및 텁스대학교에서 철학과 석사 과정을 수학했으며, 미국 듀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네소타주립대학교(Minnesota State University, Mankato)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과학철학과 과학철학 및 인지과학 분야의 논문을 영어와 한글로 발표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명과학의 철학』과 홍창성 교수와 공저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가 있고 홍창성 교수와 함께 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를 영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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