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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라보는 나’와
‘참나’ 사이의 끝없는 전쟁
『나는 왜 내가 힘들까』
마크 R. 리어리 지음, 박진영 옮김 , 시공사 刊, 2021 |
어떤 사람은 자신을 너무 혐오해서 문제가 되고, 어떤 사람은 자화자찬이 너무 심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어느 쪽이 더 심각한 문제일까?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은 자기를 너무 혹독하게 다루어 우울증에 빠질 위험이 높고,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은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혀서 타인의 소중함을 미처 보살피지 못한다. 둘 다 심각한 문제이지만,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훨씬 더 위험하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금세 알아보고 기피하지만, 남몰래 자기혐오에 중독된 사람은 자해를 하기도 하고, 치명적인 우울감에 빠져 있으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기도 한다. 자기혐오야말로 마치 바이러스처럼 전 세계에 퍼져버린 현대인의 마음속 그림자가 아닐까.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자기를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아끼고 보살피는 것이야말로 타인과 세상을 사랑하는 첫걸음이다.
이 책은 잘못된 자기 인식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들면서 우리가 ‘자아’라고 알고 있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실은 뼈아픈 허상임을 직시하게 만든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나는 겨우 이런 삶을 살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라는 부정적인 세계관과 자기혐오가 합쳐질 때, 사람들은 결국 자신은 물론 이 세상 전체를 혐오하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자기 인식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가혹하게 대하거나 지나치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왜곡해서 바라본다.” “나는 내 자아를 관찰하면서 그간 얼마나 자아가 삶의 질을 끌어내리는 원흉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나를 공격하는 원흉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바로 자아와 에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행위가 그 문제들을 만들어낸 원흉이라는 사실이다.” 자존감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문화 자체가 현대인을 괴롭힌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하루. 얼마나 권태롭고, 획일적이며, 단조로운가. 자존감은 꼭 높지 않아도 된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조언도 때로는 고통이 된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나’에게 지나치게 집중되는 에너지를 타인과 세상 속으로 넓혀가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선택이다.
하루 종일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관리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좋아요’를 몇 개나 눌러줄까, 오늘의 팔로어는 얼마나 늘거나 줄었을까를 고민하는 삶.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병들게 하는 지나친 자기중심성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아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아군이자 가장 무서운 적이며,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가장 큰 역경은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자아의 산물이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한 관점의 변화만으로도 가능하다. 곧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별 볼 일 없고, 아무런 개성이 없으며, 뛰어난 재능도 없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은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끝없이 열린 가능성이며, 언제든지 틀릴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음을 믿어야 한다. 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타인과 세상을 향한 관심, 역사와 사회를 향한 연대감,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
아들러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타인을 행복하게 하기’라는 새로운 과제에 도전해볼 것을 제안했다. 만약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우울하고 처량하다는 생각으로 괴롭다면, 주변에서 한 사람을 골라 ‘오늘은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자’라는 생각으로 최소한 세 가지 좋은 일을 실천해보는 것이다. 아들러를 미처 알기도 전에, 어리고 순수했던 학창 시절에, 나는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내 기쁨과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일들’에 기쁘게 집중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시 전쟁 속에서 힘들어하던 내 친구를 위해(나도 내 문제로 힘들었지만, 그때는 내 친구가 더 힘들어 보였던 것이다) 몰래 생일 케이크를 사서 둘만의 생일 파티를 열기도 했고, 항상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인 적 없었던 매점 직원 언니를 위해 아름다운 꽃다발을 선물해 그녀를 처음으로 웃게 만들고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타인을 기쁘게 해주는 일’이야말로 더 깊고 따사로운 나 자신과 만나는 일이기도 했음을, 이제야 알겠다. 이 책의 원제는 ‘자아의 저주(The Curse of the Self)’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제목 아닌가. 온통 ‘나, 나, 나’라는 주술에 빠져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를 가꾸는 데만 골몰하는 현대인을 향해, 이 책은 타인과의 진정한 교감, 세상 속에서 나의 진정한 미션 찾기, 나아가 나르시시즘을 벗어나 더 크고 깊은 나를 향해 번져가는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제안하고 있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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