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온전한 석불을 볼 수 있는
경주 남산 보리사
“절은 별처럼 많고, 탑은 기러기 행렬 같다(寺寺星張 塔塔雁行).” 『삼국유사』에 나오는 말로,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고 진흥왕대에 이르러 불교가 크게 일어나는 과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신라의 도읍 경주는 그렇게 불국토를 희구했습니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고, 무상한 세월에 풍화되어갔습니다. 원래 꿈이라는 게 그런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또 꿈을 꿉니다. 떨어질 것을 염려해 피어나기를 주저하는 꽃은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남산은 경주 북쪽의 소금강산, 서쪽의 단석산, 동쪽의 토함산과 함께 경주를 품고 있습니다. 남북 약 8km, 동서 약 4km인 남산에는 150여 곳의 절터, 120여 구의 석불, 96기의 석탑이 있습니다. 산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절집이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보리사는 남산 북동쪽 미륵곡에 있는 절입니다. 이 절이 처음 세워진 때는 886년(신라 헌강왕 12)입니다. 『삼국사기』에 신라 49대 헌강왕과 50대 정강왕의 능이 ‘보리사’ 동남쪽에 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창건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빈 절터로 남아 있다가 1911년에 덕념 스님이 작은 암자로 중창했습니다. 이후 1977년부터 묘운 스님이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과 선원, 삼성각, 종각, 요사채 등을 갖추어 오늘에 이릅니다. 1911년 중창부터 지금까지 비구니 스님들이 일군 도량입니다.
보리사는 절 마당을 들이기 위해 쌓은 축대가 얼굴 같은 절입니다.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 축대는 최소한으로 다듬은 자연석을 생긴 모양대로 맞추었습니다. 쌓은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모든 사물을 다 저렇게 살려 쓴다면, 귀천이라는 분별이 들어설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예술보다 한 수 위, 도의 품격입니다.
보리사 삼성각 옆 옛 절터에는 석불좌상(보물)이 있습니다. 현존하는 남산의 석불 가운데 가장 온전한 형태로 남은 부처님입니다. 석굴암 본존불보다 늦은 8세기 후반에 조성한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 부처님은 석굴암 부처님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보입니다. 머리에 비해 몸과 다리 부분이 왜소한 것이 아쉬운 점으로 평가되는데, 그것 때문에 더 좋습니다.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사실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몸의 특성을 느끼게 되듯이 말입니다. 그냥 우리의 육신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위의 얼굴 표정은, 그냥 닮고 싶어지게 됩니다. 근엄하지만 감히 범접하지 못할 모습이 아닙니다. 은근히 웃는 모습이되, 눈가나 입에 웃음이 매달려 있지 않습니다. 얼굴의 모든 근육세포에 웃음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 부처님을 보면서, 웃음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손과 발이 웃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웃음입니다.
웃어라, 웃어라고들 합니다. 그것도 물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정녕 깊은 웃음은 일상에서 몸과 생각에서 나와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겠습니다.
글|윤제학, 사진|신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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