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으로 이해하는 불교 경전 길라잡이|『법화경』 (1)
『법화경』이란
어떤 경전인가?
차차석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교수
『법화경』은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전 중의 하나다. 기원을 전후로 편집되었으며, 사상적으로는 반야계 경전의 편집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무신론적 입장을 따르는 반야계 경전들과 달리 유신론적 입장을 따르는 경전이다. 또한 부처님을 초인격화해 중생을 구원할 수 있는 구세자(救世者)로 묘사한다. 따라서 반야경처럼 깊은 깨달음의 세계를 설명하는 관념적인 교리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포용과 자비의 실천을 중시한다.
『법화경』은 인간에게 부처님이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본질적인 의문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부처님과 중생의 관계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된 것이 출세본회(出世本懷)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방편 설법이다. 부처님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며,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과 통찰에서 시작된다.
『법화경』은 전편을 통해 부처님의 초월성과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과 일체 법공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때 반야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반야계 경전과 달리 대승과 소승을 대립적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반야경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 운동가들은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성 교단을 소승이라고 폄하하며 비판했다. 소승의 가르침으로는 중생들을 열반의 세계로 인도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기성 교단에 대한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승과 소승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양쪽을 비판하는 동시에 융합하려는 불교 운동가 집단이 등장한다. 『법화경』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 운동가들이 바로 그러한 집단 가운데 하나였다.
『법화경』에서 주장하는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은 바로 이러한 불교 교단사의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성문, 연각, 보살은 궁극적으로 일불승(一佛乘)에 귀착하기 때문에 배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성문이 초기 불교 이래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행하는 출가자 집단을 지칭한다면, 연각은 대중들을 외면한 채 자신만의 깨달음을 우선시한 부파 교단의 출가자들을 지칭한다. 반면 보살은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인물로, 특히 반야 사상을 중심으로 대승불교 운동을 전개하며 기존의 부파 교단과 정면으로 대립했던 불교 운동가들을 지칭한다.
『법화경』에서는 이들 ‘성문·연각·보살’을 각각의 개성이나 근기에 따라 드러나는 성품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삼승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성문은 4성제에 대한 가르침을 좋아하는 불교도, 연각은 12연기설을 좋아하는 불교도, 보살은 6바라밀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불교도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 모두가 일불승으로 들어오는 길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치의 우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논란이나 대립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법화경』은 회삼귀일을 주장해 대승불교 운동으로 인한 기성 교단과의 대립과 갈등을 종식시키고자 했다. 어떠한 교리를 통해서든 열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중요하게 여겼던 포용과 융합의 실천이라 본 것이다.
『법화경』은 인간은 누구나 내면적인 가치를 존중받아야 하며 인격적 차원에서 평등하다고 말한다. 남녀노소, 출가자와 재가자를 불문하고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를 판단의 준거로 삼고자 했다. 더 나아가 인간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수기(授記)를 강조하고 있다. 『법화경』은 종교적 실천과 현실 생활이 따로 분리되지 않도록 오종법사행(五種法師行)을 중시했다. 오종법사행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법사가 될 수 있으며, 일체의 선행이 곧 성불의 원인이 된다고 가르쳐 출가자와 재가자의 장벽을 허물고자 했다. 형식이 아닌 본질을 추구해 현실을 이상적인 세상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천태종의 성립과 『법화경』
중국에 『법화경』이 처음 번역된 것은 서기 286년 무렵이다. 이후 많은 스님들에 의해 연구되었으며, 중국 불교에서 『법화경』의 보급과 연구는 천태종이라는 종파를 탄생시켰다. 천태종은 북제 시대의 혜문(慧文, 6세기 중엽)과 남악혜사(南岳慧思, 515~577)를 거쳐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에 이르러 그 사상과 수행 체계가 완비되었다. 따라서 중국 천태종의 실질적인 개창조는 천태지의라고 말할 수 있다.
천태지의는 18세에 출가해 23세 때 남악혜사를 만나 7년간 법화삼매와 일심삼관의 수행법을 공부했다. 38세 때인 575년 절강성의 천태산에 들어가 11년간 산상에서 수행했다. 585년에는 진나라 황실의 초청으로 금릉의 광택사에서 『법화경』을 강의했는데, 이곳에서 587년 『법화경』의 주석서인 『법화문구』 상하 10권이 탄생했다. 만년에 고향인 형주로 돌아가 옥천사를 건립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사상을 펼치게 되는데, 593년에 『묘법연화경』이라는 제목과 전체 불교의 사상을 원돈의 뜻으로 풀이한 『법화현의』 상하 10권, 594년에는 원돈지관의 실천 법문인 『마하지관』 상하 10권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들 천태삼대부는 그의 제자인 장안관정(章安灌頂, 561~632)에 의해 모두 편집되어 전하고 있다. 이후 천태산으로 은퇴해 597년 60세를 일기로 적멸에 들었다.
천태지의는 교학과 선정을 하나의 사상 체계 속에 묶어 교학과 선정을 동시에 공부하는 교관병수의 교학 체계를 수립했다. 천태지의가 수립한 사상은 깊이가 심오하고 폭넓은 만큼 후세에 미친 영향도 막대했다. 상호 침투와 수용이라는 『주역(周易)』의 원리를 불교의 수행과 구원론으로 응용해 삼제원융론이라는 독자적인 사상을 만들었다. 또 일념삼천설 등의 사상을 수립해 선종 사상의 일심 또는 마음이라는 핵심적인 개념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사변적인 그의 사상체계는 대중성에서 멀어졌다는 점에서 종교가로서의 한계도 지니고 있다. 불교가 종교라는 점에서 보면 대중성을 유지하며 최상의 구원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천태지의는 심원한 사상 체계를 수립했지만 대중들이 접근하기 힘든 논리에 치우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천태종이 대중적인 종파로 오랫동안 그 교세를 떨치지 못했던 것도 그러한 사상 체계의 단점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후대의 불교 사상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은 선종, 정토종, 밀교 등 종파의 영역을 초월했다.
『법화경』의 중국 전래와 구성
『법화경』의 한역은 총 여섯 번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중 현존하는 역본은 축법호 역 『정법화경』과 구마라습 역 『묘법연화경』, 사나굴다 공역 『첨품묘법연화경』이다.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세 역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제바달다품」의 독립 여부와 「촉루품」과 「다라니품」의 위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구마라습 역의 『묘법연화경』은 「제바달다품」이 없으나 현행 『묘법연화경』은 「제바달다품」을 독립된 품으로 편재해 28품으로 구성하고 있다. 나머지 두 역본은 「제바달다품」의 내용을 「견보탑품」 뒷부분에 함께 수록해 27품으로 구성하고 있다. 또 『정법화경』과 『첨품묘법연화경』이 「촉루품」을 맨 마지막 27품에 두어 대승 경전의 일반적인 형식으로 따르고 있는 것과 달리, 『묘법연화경』은 「촉루품」을 제22품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법화경』이 적어도 200여 년에 걸쳐 세 번의 층위를 거치며 결집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경의 구성에 있어서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경전의 형식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촉루품」의 위치가 서로 다르다는 것, 또 「제바달다품」을 독립된 품으로 둔 것과 그렇지 않은 역본이 있다는 것은 경전 결집자들의 성향과 안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유통본 『묘법연화경』의 경우 「제바달다품」을 독립된 품으로 편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했던 법화 사상의 진면목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또 맨 마지막에 위치해야 할 「촉루품」을 후대에 성립된 유통분의 앞에 둔 것도 주시할 필요가 있는데, 「촉루품」에서 서사 구조를 완결하고 뒤의 품들을 경전의 유통을 권장하는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전 성립사로 본다면 제1~제2류에 성립된 품들이 경의 완결된 구조를 유지한 채, 제3류에 성립한 품들을 제22 「촉루품」 뒤에 배치한 것이다.
『법화경』은 다른 어떤 대승 경전보다 역동적이고 서사 구조의 완결성이 높은 경전이다. 언뜻 보면 내용은 평이해 보이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사상은 심원하기만 하다. 잘못된 수행 풍토를 배격하며 청정한 수행 집단을 이룩하려는 개혁적 성향, 수행의 대중화 지향, 인간의 평등과 구원의 보편성 중시, 인간을 모두 부처님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등은 『법화경』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차차석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 보조사상연구원 기획실장 및 동국대, 금강대, 원광대, 서울대 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법화사상론』, 『중국의 불교문화』, 『불교상식백과』(공저), 『조계종사 고중세편』(공저) 등이 있고, 『법화사상』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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