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을 읽고 감탄하다 | 나의 불교 이야기

나의 불교 이야기


『반야심경』을 읽고 

감탄하다


김성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김성구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 학위(Ph.D, 소립자 물리학 이론)를 취득했다.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 수를 역임했고, 퇴직한 후 동국대 불교학과 학부 및 대학원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경상남도 함양에 약천사를 창건했다. 약천사에 불교과학아카데미를 개설해 2014부터 매 월 불교와 현대 물리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 물리학으로 풀어본 반야심경』(공 저), 『천태사상으로 풀이한 현대 과학』(공저),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와 불교』가 있다.

내가 불교를 만난 것은 우연이다. 우연이라고 했지만 불교학을 하고 불교와 과학을 강의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그 우연이라는 것이 사실은 연기법을 모를 때 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교회를 다녔으니 불교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1965년 2월 대학교 2학년이 되기 며칠 전 학교 실험실에 들렀더니 누가 갖다두었는지 거기에 『능엄경』이 있었다. 호기심에 처음 몇 장을 읽었는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종교는 기독교, 철학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했다고 하는 단편적인 글귀가 전부였다. 그러니 어린 마음에 나는 그리스의 철인들이야말로 가장 논리적이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능엄경』에서 설하는 부처님의 설법은 그리스의 철학자들 이상이었다. 말씀이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이율배반의 이치까지 설명하고 있었다. 『능엄경』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은 후와 읽기 전의 내 마음은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되었다. 그때 지평선 안에 있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지평선 너머에도 또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고 기회가 있으면 꼭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불교를 접할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1966년 10월쯤 『반야심경』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 같은 과 학생 중 누군가가 『반야심경』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하면서 그 뜻을 풀이하는데 상당히 깊이 있는 말처럼 들렸다. 전공이 물리학인지라 이때는 이미 현대 물리학과 양자역학의 기초에 대해서는 웬만큼 배운 뒤였는데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내게는 꼭 ‘양자진공(量子眞空, quantum vacuum)’을 아는 사람이 사물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불경에 대한 놀라움을 참을 수 없어 그 친구한테 부탁해 『반야심경』 해설서를 구해 읽었다. 그 당시는 내가 불교를 전혀 모를 때이므로 대승 경전이 따로 있고, 남방 상좌부 경전이 따로 있는 줄 모르던 때라 부처님이 직접 『반야심경』을 설한 줄 알고 읽었다. 부처님이 양자역학을 알 리가 없는데 어떻게 사물의 이치를 이렇게 설명할 수가 있나 하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읽었다.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 내 생각에는 양자역학을 아는 사람이 사물의 이치를 설명한다면 이렇게 설명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능엄경』과 『반야심경』에 감탄한 이상 마음만은 불교를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마음 상태가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쉽게 불교를 접하거나 불교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경에 관해서는 어떤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산에 절이야 많지만 무턱대고 아무 절이나 찾아가서 지도를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서점에 들러 여러 가지 불경의 해설서를 사서 읽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가 그때 시작한 것은 교(敎)도 선(禪)도 아니지만 ‘교’라는 창을 통해 멀리서 불교를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핵심에는 선(禪)이 있는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학교 4학년 때 심하게 폐결핵을 앓게 되었다.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은 먹었지만 몸이 점점 쇠약해지면서 걷기도 힘들고 음식물을 씹어 삼킬 수도 없어 주스와 우유만 마시는 상태가 되었다. 어떤 음식이든 입에 넣고 씹다 삼키려고 하면 토할 것 같았다. 몸이 워낙 쇠약해져 음식물 거부 반응이 온 것이다. 이때는 누구한테 지도를 받는 일도 없이 책을 보고 요가와 좌선을 열심히 했다. 좌선도 요가 책에서 설명한 대로 수식관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심한 폐결핵을 앓으면서 서울에 있을 수가 없어 시골에 내려가 1년 요가와 좌선을 열심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식을 보고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도해보았더니 음식을 씹어 삼킬 수 있었다. 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그 순간의 느낌은 꼭 기적을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건강을 회복하자 1971년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고 매주 조계사에 가서 청담 스님의 설법을 들었다. 스님의 설법은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쉬운 우리말로 설법을 한 것과 계를 강조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스님이 강조한 계란 생활 속의 불법(佛法)으로서 윤리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인데, 쉽게 말해 상식에 맞는 삶을 뜻했다. 상식에 맞게 살되 옳은 일은 반드시 행하고 그른 일이라면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법구경』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 같지만 실천하기 어려운데 법력이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스님의 설법에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말로 쉽게 설명했다. 설법이 쉽고 힘이 있어 스님의 설법을 무척 좋아했는데 인연이 짧았는지 스님은 그해 말 열반에 드셨다.

청담 스님과의 인연을 끝으로 그 뒤에 가끔 절을 다니고 송광사 수련회에 나가 수계를 받기도 했으나 어느 특정한 절이나 특정한 스님을 만나 지도를 받은 적은 없다. 다만 생활 속의 불법을 강조하던 청담 스님의 가르침이 머리에 남아 나름대로 계정혜 삼학을 닦는다고 노력은 했다. 그러나 성취한 바는 없었다. 성취한 바는 없지만 선승들의 일화가 재미있고, 공과 중도의 이치가 참으로 마음에 들어 한 40년간 불교에 관한 책은 열심히 읽었다. 선승들의 일화에 관한 이야기 중에도 특히 중국 명말의 스님인 운서주굉의 『선관책진(禪關策進)』이 마음에 들어 10년간 매일 자기 전에 한 시간씩 읽고 간화선을 흉내 내어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 불교학을 정식으로 공부할 인연이 생겼다. 인연은 우연처럼 찾아왔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면서 지내던 중 2004년 봄부터 목이 아파 강의를 할 수 없었다. 병원에 갔더니 성대에 문제가 있어 목이 아픈 것이라고 해 여러 가지 물리치료와 함께 약을 먹었으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강의를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목이 심하게 아팠다. 이때 떠오른 생각이 명예퇴직을 하고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해 불교학을 정식으로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입학 자격으로는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진학할 수도 있었으나 기초 개념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학부로 학사 편입을 했다. 그리고 이때 퇴직 후의 생활을 고려해 무엇을 하면서 지낼까 생각하다가 아내와 상의한 결과 수행 생활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고 시골에 우리가 지낼 사찰을 하나 지었다.

학부와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후에는 동국대학교에서 강의할 기회를 주어 ‘불교와 현대 물리학’과 ‘불교와 인지과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만일 학교에서 계속 교편을 잡고 있었더라면 이때는 이미 정년퇴직을 할 나이가 지난 때였으나 강의 열정은 30대 강사에 못지않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가르치다 보니 이제 대중들을 상대로 불교학을 강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5년에는 강사직을 그만두고 함양 약천사에서 불교과학아카데미를 개설해 지금껏 불교학을 강의하고 있다. 일반 사찰과는 달리 수강생은 매달 마지막 주말에 1박 2일로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저녁에는 현대 과학과 불교를 내용으로 90분 강의를 듣고 아침에는 선(禪)과 관련해 생활 속의 불교라는 내용으로 45분 정도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한다. 그리고 4시간 동안 좌선을 하고 1시간 동안 행선에 참여하는데 반응이 좋아 두 반으로 나누어 한 반은 매월 첫째 주 주말에 템플스테이를 한다. 강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불교의 기본적 개념을 현대 과학적으로 해설하는 것인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작년 초부터 템플스테이가 어려워 금년 2월부터는 유튜브를 통해 강의하고 있다. 유튜브 강의 내용은 고성제와 무아 윤회 및 무소유의 개념을 바르게 전달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나 자신을 비롯해 모든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을 삶으로써 우리나라가 세계의 문화 도덕의 중심 국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김성구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 학위(Ph.D, 소립자 물리학 이론)를 취득했다.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퇴직한 후 동국대 불교학과 학부 및 대학원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경상남도 함양에 약천사를 창건했다. 약천사에 불교과학아카데미를 개설해 2014부터 매월 불교와 현대 물리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 물리학으로 풀어본 반야심경』(공저), 『천태사상으로 풀이한 현대 과학』(공저),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와 불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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