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3대 바다 풍광 절, 고성 문수암|암자 기행

우리 사는 곳,
이리 보기 좋습니다

고성 문수암


남해안 3대 바다 풍광
남쪽 바닷가 사람들이 ‘남해안 3대 바다 풍광’이라 일컫는 절승지가 있습니다. 여수 향일암, 남해 보리암 그리고 고성 문수암입니다. 앞의 두 곳은 불자가 아니어도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익히 아는 곳입니다. 이에 비해 문수암은 불자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진 절이 아닙니다. 더러는 강원도 고성과 경남 고성을 혼동하기도 하니까요.

향일암은 바다와 맞닿은 벼랑 위에 앉아 아득히 바다를 내려다봅니다. 보리암은 금산 높은 곳에서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산자락과 바다를 호방하게 끌어안습니다. 문수암은 조금 다릅니다. 내륙으로 들어간 곳에서, 산줄기가 곰실곰실 바다로 다가가 발을 담그고 찰랑대는 물결과 해찰하는 풍광을 그윽이 바라봅니다.

문수암 마당에 서면, 유난히 들쑥날쑥한 해안과 점점이 뜬 섬들이 손깍지처럼 바다와 어우러진 풍광을 보게 됩니다. 땅과 물의 조화라는 것이 이리 보기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잠기며 제법 마음결이 넉넉해집니다. 옛 어른이 이곳에 절을 세운 이유도, 우리들 마음자리가 그리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남해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지켜온 문수암
의상 스님이 남해 금산으로 기도하러 가는 길에 무이산 동쪽 기슭 무선리의 민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한 노승이 의상 스님의 꿈속을 찾았습니다. 노승은 의상 스님에게, 내일 아침 걸인을 따라서 금산보다 먼저 무이산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날이 밝자 의상 스님은 꿈속에서 일러준 대로 걸인을 따라 무이산을 올랐습니다.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 있고 사위의 산세는 웅장해 마치 오대산 중대를 연상케 했습니다. 이때 또 한 걸인이 나타나서 길을 이끌던 걸인과 손을 잡고 바위 벼랑 사이로 사라져버렸습니다. 벼랑 사이를 살펴보니 걸인은 보이지 않고 문수보살상이 나타났습니다. 의상 스님은 꿈속의 노승은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은 문수, 보현보살임을 깨닫고 그곳에 문수암을 세웠습니다.

706년(성덕왕 5년)에 의상 스님이 창건했다고 알려진 문수암 창건 설화입니다. 고성군은 옛 가락국 가운데 소가야에 속했고, 신라 법흥왕 2년(515)에 신라에 병합되었습니다. 의상 스님 창건설이 얼추 아귀가 맞습니다. 또한 무이산은 화랑들의 수련장이었다 합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문수암은 고성군이 신라 땅이 된 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삼국시대부터 남해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지켜봐왔다는 이야기지요.

문수암의 현재 당우는 1959년 사라호 태풍 이후 새로 지은 건물입니다. 한때 이곳에서 공부했던 청담 스님의 사리탑이 1973년에 세워졌습니다. 청담 스님은 이곳에서 가까운 진주 출신입니다.

옛 스님들이나 신라의 화랑, 그리고 오늘의 우리가 문수암에서 남해를 바라본 느낌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땅과 바다의 조화가 이리 아름다울진대, 거기에 깃들어 사는 우리 살림살이가 미운 꼴이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글|윤제학, 사진|신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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