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조용히 보듬어주는 월출산 도갑사 | 공간이 마음을 움직인다

월출산 천년고찰 도갑사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공학 박사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출산(月出山)에 있는 도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대흥사(大興寺)의 말사로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인 도선(道詵) 스님이 창건했는데 문수 신앙의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다.

원래 이곳에는 문수사(文殊寺)라는 사찰이 있었으며 도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의 어머니 최씨(崔氏)가 빨래를 하다가 물 위에 떠내려오는 참외를 먹고 도선을 잉태해 낳았으나 숲속에 버렸다. 그런데 비둘기들이 날아들어 그를 날개로 감싸고 먹이를 물어다 먹여 길렀으므로 최씨가 문수사 주지에게 맡겨 기르도록 했고, 장성한 그가 중국을 다녀와서 문수사 터에 도갑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세조 2년(1456) 억불숭유를 국시로 하는 조선임에도 수미(守眉)왕사에 의해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 12개의 암자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는 불교를 탄압하는 열악한 사회 여건 속에서도 대규모의 중창 불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도갑사가 있는 월출산은 높이가 809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면적도 41.88km2이니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넓지도 않다. 그러나 ‘남도의 작은 금강산’, ‘남도의 설악산’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며 기암괴석들이 많다. 도갑사는 이런 산의 서쪽에 있으니 배경이 천하일품이다.

도갑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해탈문을 지난다. 해탈문은 도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데 이 문을 지나면 속세(俗世)의 번뇌를 벗고 부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쪽에는 ‘해탈문’ 다른 쪽에는 ‘월출산도갑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주심포계 맞배집 형태인데, 이중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 원기둥을 세웠다. 무척 담백하다. 도갑사 해탈문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산문(山門) 건축이다. 그러니 이 문을 들어서면서 정말로 해탈의 기분을 느끼게 된다.

월출산은 산 안에 평지가 있을까 싶을 만큼 낮지만 험준한 산인데 기묘하게도 도갑사 터는 평평하다. 크지 않은 절이지만 넉넉하다. 해탈문을 지나면 다각실과 종무소를 거느린 광제루가 나타난다. 광제루 누각에 오르면 도량 전체는 물론이고 월출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일찍이 매월당 김시습이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이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라고 적었던 바로 그곳이다. 어스름 저녁에 달이 뜨면 누각에 올라 점점 밝아지는 달과 별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만사 모두 잊을 수 있다. 

해탈문에서 바라본 도갑사 안. 광제루는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오층석탑과 대웅보전은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 일직선에 배치하지 않은 도갑사의 매력이다.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으로 가는 길. 폭이 좁으나 경사는 얕은 숲의 터널이 해탈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지금의 광제루는 2012년에 복원된 것이다. 절 중심 영역인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서는 진입 누각인데, 누각 아래를 지나는 누하(樓下) 진입 구조지만 계단이 없고 평면 진입이다. 양쪽으로 기다란 행랑채가 있는 것도 독특하다. 광제루는 전란에 소실되어 현판마저도 새로 만들었는데 글씨를 쓴 분은 영암의 교육자이자 서예가인 김상희 선생이다. 

광제루를 지나면 마당 한가운데 오층석탑이, 그 뒤로 대웅보전이 있다. 오층석탑은 안정감이 있다. 절에 가서 석탑들을 볼 때마다 풍찬노숙에 혹시나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도갑사 석탑을 보면서는 그런 기우가 들지 않는다. 오층석탑의 벗은 그 옆에 나란히 있는 느티나무다. 오층석탑의 나이는 천 년가량인데 그보다 늦게 태어났을 느티나무 키는 훌쩍 커서 오층석탑을 훨씬 넘어선다.

오층석탑과 느티나무. 석탑보다 늦게 뿌리를 내렸을 느티나무가 석탑보다 훨씬 크다.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다.
광제루와 긴 행랑. 우리나라 사찰 양식에서 흔하지 않은 건물이다. 

대웅보전도 광제루처럼 2009년에 새로 지어졌다. 1977년 참배객의 실화로 사라졌다가 1981년에 복원되었으나 제대로 복원되지 않아 21세기 들어 중창 불사를 했고 550년 전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중창된 대웅보전은 매우 흥미롭다. 도교사상에서 사용하는 12지신상이 있는가 하면 일반적인 대웅전에서 그리는 십우도가 아니라 팔상도를 그려 넣었다. 게다가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동자 스님에다가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스님, 2002 월드컵으로 추측되는데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보며 스님들이 환호하는 그림도 있다. 사람들은 불교를 고루하고 낡은 종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하며 함께 호흡하는 불교를 잘 표현하고 있지 않나 싶다.

해탈문에서 대웅보전을 바라보면 해탈문-광제루-오층석탑-대웅보전이 일직선으로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한국 불교의 은은함이 그런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일직선으로 놓기보다 조금씩 비껴놓아서 생기는 여유와 세상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선문답으로 말하는 방식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세상이 위태로워지면 승병도 조직해서 동참하는 용맹함도 보여주는 한국 불교이지만 한국 불교의 근본은 이렇게 유유자적 비낌의 여유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도갑사를 지나가면 월출산으로 오를 수 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일주문을 지나 그냥 곧바로 가면 나오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일주문을 보면서 절로 들어가지 않고 왼쪽으로 올라가면 되는데 이 길로 가면 도갑사 대웅보전을 지나 명부전·산신각 사이를 지나는 길과 만난다. 그 산길을 따라 미륵전·부도전·도선국사비각 등이 펼쳐진다. 산을 인위적으로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 빈터에 집을 짓는 불교적 방식이 잘 구현되어 있다. 그 길목에서 만나는 용수폭포는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 용소(龍沼) 바위 바닥을 흐르는 물이 마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같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만큼 역동적이다.

도갑사는 문화재의 보고다. 국보 제50호 해탈문을 비롯해 문수 보현보살 사자코끼리상(보물 제1134호), 기상보현(騎像普賢) 동자상(보물 제1134호) 등 볼거리들이 많다. 그만큼 역사가 깊고 과거에는 웅장한 절이었다. 도갑사 인근에도 볼거리가 많있다. 영암읍에서 목포 쪽으로 8km 정도 달리면 구림 사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군서장터를 지나 4km 정도 오르다 보면 도갑사에 이르는 1km 이상 되는 벚나무 길이 터널을 이룬다. 

사찰 주위로 국보 제144호로 지정된 월출산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해 도선이 디딜방아를 찧어 도술 조화를 부렸다는 구정봉(九井峰)의 아홉 개 우물, 박사 왕인(王仁)이 일본에 건너간 것을 슬퍼한 제자들이 왕인이 공부하던 동굴 입구에 새겼다는 왕인박사상 등이 있다. 사찰 일원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갑사는 서쪽을 향해 있다. 뜨는 해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지는 해를 바라본다. 과거의 영화를 당장 찾는 것은 가능하지 않지만 도갑사는 손실과 상관없이 세상을 여유 있게 포용한다. 도갑사는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나직하게 알려준다. 

이종호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 박사 학위와 과학 국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했다.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전 2권) 등 100여 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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