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 라르손의 『분노 죄책감 수치심』 | 책 읽기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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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가 필요한 순간들

『분노 죄책감 수치심』



감정을 느끼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하지만 사람들은 분노, 죄책감, 수치심을 느낄 때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숨기려고 한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현대인들은 그 모든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두다가 언젠가는 폭발시키곤 한다. 작은 분노와 공격성도 오랫동안 쌓이고 쌓이다 보면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 『분노 죄책감 수치심』은 평생 ‘비폭력 대화’의 중요성을 연구하고 실천해온 저자가 그토록 부정적인 감정들을 과연 어떻게 지혜롭게 해소할 수 있는지를 파헤친 역작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분노와 죄책감과 수치심을 억지로 없애려 할 때마다, 우리의 초점은 ‘타인의 행동에서 잘못을 발견하려는 쪽’으로 옮겨지게 된다. 즉 분노는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자신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뭔가 ‘만만한 대상’을 찾을 때, 사람들은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 예를 들어 자녀나 배우자를 공격하게 된다. 그렇게 비극적인 악순환은 시작된다. 자신이 가장 아끼고 보살펴야 할 대상을 분노의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리는 끔찍한 비극 속에서 아동학대를 비롯한 가정폭력이 양산된다. 지혜로운 탈출구를 찾지 못한 모든 분노와 공격성은 결국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에게 가장 끔찍한 화풀이를 하는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분노, 죄책감, 수치심은 현대인이 가장 다루기 힘든 감정들이다. 저자는 이런 감정들을 과연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비폭력 대화라는 마음챙김의 비법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하며 조심스럽게 폭력의 기억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속을 노크한다. 드라마와 영화와 뉴스를 통해 매일 접하는 폭력의 수위 또한 너무 높고 빈도가 잦다. 당신의 가슴속에도 너무 많은 폭력의 기억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이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닐지라도, 때로는 타인에게 나의 화를 풀기 위해 짜증을 내고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타인의 마음’에 대한 배려심을 잊었던 것은 아닐까. 때려야만 폭력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상 속의 대화 하나, 문장 하나하나도 폭력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인간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 차별과 분노로 얼룩진 ‘언어’가 아닐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폭력 대화는 우리가 가장 자주 상처를 주고받는 도구인 ‘언어’를 치유의 도구로 역전시키는 해방의 몸짓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우선 분노, 죄책감, 수치심을 회피하지 말고, 그것을 ‘우리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신호’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분노 뒤에는 욕구 불만이, 죄책감 뒤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수치심 뒤에는 스스로의 상태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을 수 있다. 그 부정적인 감정들 뒤에 숨어 있는 더 깊은 욕망과 기억을 용감하게 마주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바로 이런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대면하는 데 필요한 것이 비폭력 대화다. 예컨대 ‘네가 나한테 자꾸 상처를 주잖아’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에게 분노와 죄책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런 말 대신 ‘나는 더 많은 도움과 응원이 필요해’라고 말해보자. 상대방을 화내지 않게 하고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한 것을 따지고, 추궁하고, 비난하는 것은 나의 분노 때문에 타인의 분노까지 격발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솔직하고 겸허하게 말하면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이런 식의 비폭력 대화는 우리가 더 나은 인간관계를 맺도록 도울 뿐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알아내는 자기인식(self awareness)의 과정에서 꼭 필요하다.

우리는 자라면서 분노, 수치심, 죄책감을 억압하고, 인내하고, 숨기는 훈련을 해왔다. 저자는 바로 이런 사회화 과정이 지배 체제를 유지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에 집중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은 억압을 당하기 쉽다. 우리가 배운 언어는 쉽게 우리를 복종하는 노예로 만든다.” 바로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려면 우리가 꿈꾸는 대로 살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언어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비폭력 대화다.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이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비폭력 대화야말로 욕망을 억압하고 감정을 은폐하는 문화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오직 ‘우리 사이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냉철하면서도 공감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비폭력 대화의 본질이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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