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긍정적인 격려와 즐거운 경험은 두뇌를 건강하게 하고 성장하게 만든다. 두뇌는 즐거운 경험을 할 때 이것을 기억했다가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면 이것을 반복하려는 성향이 있다. 자연스럽고 자동적인 이러한 습관은 신경계를 가지고 있는 모든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공통적 성향이다. 고통과 아픔을 피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며 이것을 통해 학습이 일어나고 동기가 유발되는 과정은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널리 알려진 마음과 두뇌가 성장하는 기본적인 과정이다. 이러한 즐거움, 학습, 그리고 동기의 상호 상승 과정이 나타나면 고래가 춤을 추게 되고, 호랑이는 노래를 부르게 되고, 사람들은 신이 나서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승 작용이 인생 전체로 확대되는 것은 인간의 행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마 행복이란 우리의 능력과 활동이 즐거움과 더불어 상승 작용을 하는 과정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행복관을 번영적 혹은 번성적(Flourishing) 행복관이라고 한다. 자신의 활동이 성장해가고 그 성취감에 즐거움을 느끼며 이것을 통해 더욱 발전적 미래로 나아가는 긍정적 상승 과정이 번성적 행복관의 핵심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행복에 관한 그의 생각(즉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자신의 주어진 본질적 능력을 실현하고 그러한 발전적 성장에 즐거움을 가지는 것)을 정신의 최선의 상태, 즉 유다이모니아(Eudaimonia-eu 좋음, daimonia 정신)로 설명한다. 이것은 『논어』의 첫 번째 구절에 “배우고 또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님의 말씀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래도 신나게 춤추게 하는 즐거운 발전에 어두운 함정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것은 건강한 성장의 즐거움이 중독성 있는 맹목적 쾌락으로 변화하는 경우다. 좋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기억했다가 다시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적인 것이지만 즐거움이 맹목적인 쾌락과 충동적 자극을 추구하는 것으로 변하면 중독이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즐거움을 일으키고 느끼는 것은 인간 생활에 자주 나타나는 일이고 행복에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맹목적이며 강한 쾌락의 추구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 두뇌는 감당할 수 없는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두뇌는 쾌락과 중독에 취약하다. 예를 들어 필로폰과 코카인은 두뇌의 특정한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에 관여해 쾌감을 최대한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들 마약 성분은 쾌감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도파민(dopamine)을 더 많이 발현시키게 하거나 더 오랫동안 신경세포의 연결 간극(시냅스)에 머물도록 해 쾌감의 극단치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면 도파민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는 신경 회로(복측피개영역, 측좌핵 그리고 전두엽의 여러 부분) 전체에 장기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간단히 말하면 특정한 화학 물질의 변화가 쾌락을 일으키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그 화학 물질과 관련된 두뇌 영역의 활동과 감도가 변화되는 것이 쾌락이 중독으로 발전하는 일반적 패턴이다.
여기서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먼저 즐거운 느낌과 쾌감은 두뇌의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화학 물질의 발생과 지속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장소는 일반적으로 세포와 세포 사이에 존재하는 (시냅스라고 하는) 작은 간격이다. 이 틈에 어떠한 물질이 얼마만큼 그리고 얼마 동안 있는가 하는 것이 인간의 정신 상태에 (즉 즐거움, 쾌감, 우울감, 흥분, 만족감 등등의 감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이러한 물질들은 뇌세포 내부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된 후에 다시 회수되는 과정을 거치지만 그 영향력이 발휘되는 공간은 세포들이 상호 정보를 교환하는 이 작은 틈새 공간이다. 즉 쾌락과 중독은 특정한 분자의 화학적 성분과 두뇌의 반응이 만들어내는 분자적 현상이다. 기분이나 느낌이나 신바람이 결국은 두뇌의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화학 물질의 분포와 활동에 좌우된다고 하니 조금은 허탈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생리 화학적 과정은 단순히 분자적인 상황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더 큰 결과를 (즉 중독의 고착적 패턴을) 일으킨다.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한 적당한 양의 즐거움과는 달리 맹목적인 자극과 특정한 화학 물질을 통해 나타나는 강한 쾌감은 두뇌에 여러 가지 구조적 변화를 일으킨다. 특별히 이러한 종류의 강한 쾌감이 지속되면 역설적으로 만족의 감도는 떨어지고 (그래서 같은 정도의 쾌감을 위해 더 많은 양의 자극과 약물이 필요하게 되고) 기억의 민감도는 높아져서 두뇌는 쾌감을 더 자주 그리고 더 강하게 추구하게 된다. 즉 쾌감을 더 자주 찾게 되지만 만족의 감도는 떨어지는 중독의 악순환이 두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중독 현상은 오로지 마약 성분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다른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술, 담배, 도박, 게임, 음식, 쇼핑, 스마트폰 그리고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사용 등등은 이러한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활동들이다. 이들은 마약과 같은 화학 물질은 아니지만 마약과 비슷한 방식으로 두뇌에 변화를 일으켜 마음이 자극에 집착하고 맹목적으로 쾌감을 추구하게 만들면서 사람들을 반복적인 행동(중독)의 늪에 빠지게 한다. 분당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김상은 교수팀의 두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인터넷 게임 과다 사용자의 두뇌 활동은 마약 중독자의 뇌와 유사한 활동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두뇌는 약물 남용, 도박 중독, 충동 조절 장애를 겪는 환자들의 뇌와 같은 비슷한 방식으로 오른쪽 안와전두피질, 왼쪽 미상핵, 오른쪽 두회에서 비정상적인 활동을 일으킨다고 한다. 즉 다양한 종류의 중독성 행동의 바탕에는 쾌락을 추구하며 자극에 집착하는 두뇌 활동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독은 즐거움에 대한 두뇌의 정상적인 반응과 탄력적 회복의 능력을 약화시켜 마음을 특정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욕구 충족의 눈먼 기계가 되도록 만든다. 그래서 충동적 행동이 나타나고 판단이 흐려지고 감정이 자주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정신적 혼동 상태이며 두뇌의 무정부 상태다. 이런 상황을 되돌릴 방법은 없는 것일까? 몸을 디톡스(detox)하듯 두뇌와 마음을 집착과 중독에서 풀어내는 방법은 없을까? 중독적 성향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인지적 통제 능력을 강화하는 방법도 있고 행동적 성향을 직접 규제하는 방법도 있다. 많은 상담과 재활 프로그램이 이러한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마음과 정신의 궁극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적 명상 방법이 각광받고 있다. 명상은 중독과 번민의 바다에 빠진 몸과 마음을 구할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이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불교적 명상 기법을 이용하는 마음챙김중독재발방지(MBRP, Mindfulness-Based Relapse Prevention) 프로그램이 있다. 이것은 명상을 이용하는 재활 프로그램인데 중독 억제에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명상이라고 하면 의식이 특정한 집중의 상태에 놓인 것을 말하는데, 두뇌의 시각에서 본다면 명상이란 두뇌가 일정한 상태에 머물도록 마음을 훈련하는 방법이다. 이 일정한 상태란 느낌과 생각이 자동적인 자극과 반복적 패턴에 머물지 않은 현재 지금의 내가 처한 구체적 상황에 집중하는 상태를 말한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은 금속성 소리만 들어도 슬롯머신에서 동전이 떨어지는 것을 듣는 듯한 착각을 한다고 한다. 커피에 중독된 사람들은 물건이 타는 냄새를 조금만 맡아도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한다. 쾌감을 일으키는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기억이나 기대가 과도하게 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는 이유는 마음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고 먼 곳을 떠다니면서 욕구와 쾌락을 추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도한 기억이나 동기화가 나타나는 집착의 마음이 사라지도록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구체적 감각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명상이 하는 일이다. 명상은 바로 이러한 흔들리지 않는 집중의 마음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마음이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명상을 통해 이러한 집중 효과를 일으키는 두뇌의 기관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뇌섬(insula)이 아닐까 한다. 뇌섬은 몸의 상태와 신체의 전체적 느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신체 감각(interoception)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알려진 두뇌 기관이다. 그런데 뇌섬이 명상 수행을 하는 분들의 두뇌에서 매우 활성화된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아마도 명상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나의 신체 상태를 바라보는 집중 훈련을 뇌섬의 활동을 통해서 강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결과 맹목적 쾌감이나 충동적인 자극을 반복적으로 추구하게 만드는 과도한 기억이나 동기화가 억제된다. 물론 명상이 마음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만병통치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두뇌를 다듬고 중독에 빠진 마음을 다스려 안정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두뇌에는 중독된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평정의 마음도 있다. 이 평정의 마음은 단지 조용한 마음이 아니라 집중된 마음이다. 이 마음은 명상적 집중을 통해 중독된 마음을 이겨내고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는 마음이다. 평정의 마음은 명상의 신경과학을 통해 그 실질적 존재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석봉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신경과학 박사 후 과정을 거쳐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버니아 대학교(Alvernia University)에서 니액 연구 교수(Neag Professor of Philosophy)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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