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불교가 떠오르는 이유는? | 지금, 세계 불교

서구 불교를 말하다

명법 스님
해인사 국일암 감원


불교가 서양에 전해진 시기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불교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일어난 것은 19세기 초다. 불교는 인도학의 한 분야로 연구되었으며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 알려졌다. 불교가 종교로서 전파된 것은 1900년 전후로, 미국은 이민이 가장 중요한 통로였다면 유럽은 불교에 관심 있는 엘리트 모임을 통해 이루어졌다. 미국과 유럽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교류하고 있지만 각국마다 서로 특징이 다른 유럽에 비해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불교는 더욱 통합적이고 역동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이 글에서는 미국 불교를 통해 서구 불교의 성격을 이해하도록 하겠다.

미국 불교의 현황
미국 불교는 그 구성원과 신행 내용에 따라, 미국 주류 사회의 구성원인 백인 중산층이 참가하는 개종 불교, 아시아 이민 공동체에서 신행되고 있는 이민 불교, 기복적 성격과 복음주의적 포교 스타일 때문에 백인 중산층보다 아프리카계와 히스패닉계 미국인에서 많은 추종자를 얻은 일본 신흥 불교, 니치렌 불교와 소카 가카이(創價學會) 그룹으로 구분된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조사에 따라 전 인구의 0.5~0.9%에 이르며 이민 불자가 개종 불자보다 9배 정도 많은데 모국에서 행해지는 방식을 고수하는 이민 불자와 달리 개종 불자들은 주로 명상에 관심을 갖는다. 개종 불자들의 성향과 신행 정도에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며 다른 종교를 믿으면서 불교 수행을 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미국에서 불교가 중요한 종교의 하나로 떠오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 1980년대부터 개종 불자 중 불교 지도자, 법사, 학자들이 등장해 아시아에서 수입된 불교에서 벗어나 미국 문화에 맞게 변용된 새로운 불교 형식을 창안하고 있다.

선의 도입과 미국 불교 형성
1820년경 이주한 중국인과 더불어 미국에 알려진 불교는 1882년 중국인들의 철수와 함께 사라졌다가 미국에서 일하기 위해 이주한 일본인들에 의해 다시 미국에 들어왔다. 일본 이민자들이 1898년 창립한 미국불교단(Buddhist Churches of America)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한 세기 이상 지난 오늘날에도 중산층 일본 이민 불자 공동체 단위에 머물러 있다.

주류 사회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은 19세기 에머슨, 휘트먼, 소로 등 초월주의자와 신지학회 회원들 사이에서 시작되었지만 불교가 미국에 전파된 결정적인 계기는 1893년 개최된 시카고 세계종교회의이다. 이 회의에 참여한 다르마팔라(1864~1933), 사쿠 소엔(1860~1919) 등은 회의가 끝난 뒤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불교를 알리기 위해 애썼다.

1960년 젠붐은 미국 불교사에서 분수령으로 간주된다. D. T. 스즈키(1870~1966)는 선을 심리학적 개념으로 소개함으로써 불교와 심리학 사이의 대화의 문을 열었고, 앨런 와트의 『선의 정신』과 『비트 선, 고지식한 선, 그리고 선』은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두며 젠붐을 확산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에 앞서 잭 케루악(1922~1969), 앨런 긴스버그(1928~1997), 게리 스나이더(1930~ ) 등 초기 비트 시인들은 시대적 반항을 ‘공’과 같은 불교 용어로 표현했다. 케루악의 『법의 부랑자들』은 정신적 반항의 원형으로, 환각 상태를 선적 경험과 일치시키는 등 불교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만들었지만 베이비붐 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비트는 사회 정치적 비판과 불교를 일치시키는 참여 불교의 길을 열었다.

불교의 미국화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스즈키 이후 미국에 이주한 일본 선사들과 그들의 제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삼보교단의 창립자 하쿠운 야스타니(1885~1973)와 미국인 제자 필립 캐플로(1912~2004), 금강승가를 설립한 로버트 에이킨(1917~2010), 제자 토니 파커(1927~ ), 그리고 임제종 사쿠 소엔과 그 제자 조슈 사사키(1907~ ), 에이도 타이 시마노(1932~ ), 오모리 소겐(1904~1994) 등이 1970년대 미국 불교 발전에 기여했다.

순류 스즈키(1904~1974)가 설립한 샌프란시스코 선센터는 1960년대 저항 문화의 토양에서 성장했다. 타사하라(Tassajara) 선센터, 그린 갈치 선센터(Green Gulch Farm Zen Center)를 설립하며 안거 수행 및 친환경 농업, 환경보호 등 사회적 의제와 선의 통합을 시도했으며 1969년부터 미국인 제자에게 계를 주었다. 1983년 섹스 스캔들 이후, 집단 지도 체제와 여성 지도자의 탄생, 불교 윤리에 대한 새로운 강조를 통해 선의 미국화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타이잔 마에즈미(1931~1995)가 창립한 로스앤젤레스 선센터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그의 제자로 젠 마운틴 사원(Zen Mountain Monastery)을 개원한 존 다이도 루리(1931~2009)와 빈민 구제, 노숙자 보호, 사회적 갈등 해소 등 선 수행과 사회참여를 통합한 참여 불교의 모델을 창안한 버나드 그래스만(1939~2019)이 있다.

마인드풀니스 운동과 미국 불교의 형성
위빠사나(Vipassana) 명상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개종 불교 형태로, 마인드풀니스는 1960년대 아시아에서 직접 배우고 1970년대 돌아온 미국인들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팔리어 ‘sati’의 번역어 중 ‘mindfulness’가 최종적으로 선택되는 과정은 불교의 미국화 과정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 제프 윌슨은 1970년대 나타난 마인드풀니스 운동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미국인 재가자를 지도한 아시아 스승들, 미국에서 불교의 거의 모든 형태를 흡수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틱낫한, 그리고 마인드풀니스를 탈맥락화해 심리 치료법으로 시장에 내놓은 존 카밧진을 꼽는다.

1974년 초걈 트룽파(1937~1987)가 설립한 히피와 대안 영성 추종자를 위한 여름 불교 학교는 미국 마인드풀니스 운동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가 조직한 국제 샴발라와 나로파 대학은 미국 불교의 중요한 기관으로서 불교지도자 양성과 새로운 불교 형식 창안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 미국 마인드풀니스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조셉 골드스타인과 잭 콘필드가 중요한 동반자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1975년 샤론 살즈버그, 재클린 슈왈츠와 함께 통찰명상협회(Insight Meditation Society)를 창립했다. IMS 지도자들은 마인드풀니스를 종교가 아니라 자각과 심리 치유의 방법으로 소개했으며, 승가와 재가의 구분이나 전통 의례를 배제하고 모든 불교 전통에서 자유롭게 뽑아온 요소들을 서양 심리학과 융합해 현대적 삶의 방식에 맞추었다. 1981년 콘필드는 캘리포니아로 옮겨 스피릿 록 명상센터(Spirit Rock Meditation Center)를 개원했다. 이 단체들은 서양에서 가장 존경받는 센터로 성장했으며 수많은 미국인 지도자들을 양성했다.

한편 틱낫한(1926~ )은 마인드풀니스 명상과 참여 불교를 통합한 제3의 길을 개척해 미국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1961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종교학을 배우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현대 불교를 강의했던 그는 1976년 『마인드풀니스의 기적(The Miracle of Mindfulness)』에서 마인드풀니스를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명확한 설명을 제시하여 서구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모든 존재의 상호연관성과 자비에 대한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강조하면서도 ‘마인드풀니스’를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행으로 보고 걷기 명상과 마인드풀니스 명상을 중점적으로 지도했다. 1982년 프랑스 보르도 근처에 국제적인 공동체인 플럼 빌리지를 설립하고, 캘리포니아 디어 파크 사원(Deer Park Monastery), 뉴욕 벽암사(Blue Cliff Monastery) 등을 창립했다. 재가자, 비구, 비구니를 포함하는 이 조직은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해 ‘마음챙김 생활공동체(Community of Mindful Living)’ 네트워크를 이루었다.

마인드풀니스 운동의 세 번째 중요한 원천인 존 카밧진은 틱낫한, 숭산 스님 등 아시아 불교 지도자들과 통찰명상센터 지도자들에게 명상 지도를 받았다. 그는 마인드풀니스를 과학적으로 증명된 자연적이고 측정 가능한 이익을 주는 심리 치료 방법이라고 주장하며 심리학과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가 개발한 ‘마인드풀니스 기반 스트레스 감소(MBSR)’ 프로그램은 현대 미국인들의 질병에 강력한 해독제를 제공하며 ‘마인드풀니스 기반 심리 치료 프로그램’ 개발의 기폭제가 되었다.

1980년대 마인드풀니스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먼저 불교명상센터에서 시도되었고 마인드풀니스에 대한 학술 논문과 학위 논문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인드풀니스는 마인드풀니스 식사, 마인드풀니스 운전 등 일종의 브랜드가 되어 비불교도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2000년대 마인드풀니스는 스포츠를 비롯해 관계, 양육, 교육 등 미국인의 관심을 끄는 거의 모든 것에 적용되었다. MBSR은 심리 치료 기법으로 정착되었으며 과학적 연구를 통해 권위가 확보되고 유명인에 의해 홍보되자 ‘마인드풀’을 제목으로 하는 서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서적들은 불교를 언급하지 않거나 마인드풀니스를 종교가 아니라 심리학 또는 과학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40년 동안 현대 의학과 생의학 분야에서 명상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달라이 라마가 참여한 불교와 신경과학 사이의 대화다. 달라이 라마가 과학자들과 직접 대화하고 불교 명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도록 격려함으로써 불교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면서도 불교 윤리와 전통의 기반을 떠나지 않는 것과 달리, 마인드풀니스 운동은 미국 문화의 강력한 현세 긍정적 요청에 맞추어 마인드풀니스를 팔정도 수행과 불교 계율로부터 탈맥락화하고 탈가치화했다.

2010년 이후 세속화된 마인드풀니스를 ‘맥마인드풀니스’라고 명명하는 등 비판적 성찰이 일어났으나 불교의 종교적 차원과 윤리적 기초를 회복하려는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불교 지도자들의 노력이 얼마나 성공적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마인드풀니스는 미국 불교가 창안한 새로운 형식임에 분명하다. 심리 치료 방법으로서 미국을 넘어 아시아로 역수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MBSR 지도자들의 명상 숙련도, 상품화, 윤리적 문제 등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명법 스님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고 운문승가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불문과 졸업 후,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독일 미학으로 석사, 동양 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미학과 강사 및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상담학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해인사 국일암 감원으로 있다. 저서로 『선종과 송대사대부의 예술정신』, 『미국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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