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모순을 비웃지만
그래도 안아주는 세상
송인자
소설가
대한민국의 각종 매체는 봉준호라는 이름으로 도배를 했다. 그의 영화 <기생충>은 한국 영화사 100년이 되는 해인 2019년에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선정되었다. 국내에서도 천만 관객을 모았으며 세계 각국에서 200여 개의 상을 수상했다. 특히 2020년에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 그야말로 알짜 상을 모조리 휩쓴 것이다.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이라니 더욱 감격스러운 일이다.
여기에서 다룰 영화는 그의 첫 장편인 <플란다스의 개>다.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평론가들로부터는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그의 영화에는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이 있고, 루저(loser)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의 모든 작품은 암울한 현실을 말하면서도 어둡지 않고 유머가 있다. 또 모든 사건과 사건에는 개연성이 충분해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아파트에서 기르는 개는 단순한 기호인가, 불편한 현실인가? 무대는 이웃이 내는 소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공간인 아파트다. 윤주(이성재 분)는 임신한 마누라의 수입으로 겨우 생활해나가는 백수나 진배없는 대학 강사다. 현실도 답답한데 이웃집에서 짖어대는 개소리 때문에 신경이 몹시 날카로워져 있다.
어느 날, 혼자 있는 문제의 강아지를 만난다. 그는 강아지를 처치하려고 옥상으로 갔으나 여의치 않자 지하실로 데려가 보일러실에 방치되어 있는 장롱에 집어넣고서 빗장을 건다. 한편 강아지를 잃은 아이는 전단지를 가져와 아파트 관리소의 경리 현남(배두나 분)에게 도장을 찍어달라고 한다. 지루한 일상에서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자 하는 현남은 아이를 도와 아파트 담벽에 전단지를 붙여준다.
윤주는 대학 선배로부터 갑자기 교수 자리가 진공 상태라며 떡값으로 1,500만원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고 심란한 가운데서도 희망을 품는다. 그런데 그날 저녁,또다시 그놈의 개소리가 요란하자 반사적으로 뛰쳐나간다. 그 소리는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가 안고 있는 강아지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아연해서 돌아서다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다는 전단지의 문구를 본다.
‘성대 수술을 해서 짖지 못해요.’윤주는 후다닥 강아지를 가둬 둔 지하실로 뛰어 내려간다. 그러나 장롱 속은 비어 있고, 그때 경비(변희봉 분)가 강아지를 죽여서 들고 온다. 처참한 심정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장롱 속에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비좁은 들창을 통해 겨우 빠져나온다.
윤주는 문제의 강아지를 처치해버리려는 생각으로 오렌지를 한 봉지 사서 산책 중인 할머니 곁으로 굴려 보내고 할머니는 그걸 줍기 위해 강아지를 내려두고서 달려간다. 윤주는 잽싸게 강아지를 안고서 튄다. 할머니도 관리소 현남에게 와서 신고하며 유일한 가족 ‘내 아기’라며 애달파 한다. 현남은 실종된 강아지를 찾아서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
영화에는 진정한 선인도, 진정한 악인도 없다.
그저 상반되는 요소들이 별 갈등 없이 공존하는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윤주처럼 나쁜 선택을 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사회에 산다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새삼스럽지는 않다.
아파트 옥상에서 친구와 노닥대던 현남은 친구의 문구점 망원경을 신기해하며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우연히 건너편 옥상에서 윤주가 할머니의 강아지를 던지는 걸 목격하고 아연해서 망원경을 떨어뜨린다.
현남이 강아지의 시체를 보여주자 할머니는 병이 나버린다. 경비는 구덩이에 강아지를 묻어달라는 현남이 자리를 뜨자마자 다시 파내어 지하실로 향한다. 그는 끓는 냄비 속 강아지에 간을 맞추려다가 소금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사러나간다. 그런데 그때 보일러실 안쪽 내다버린 누더기 속에서 자고 있던 떠돌이 부랑자가 보신탕 냄비를 보고선 홀라당 먹어버린다. 경비가 돌아왔을 때 냄비는 비어 있다. 참으로 웃지 못할 기막힌 상황이다.
윤주는 아내가 비싼 강아지를 사오자 심사가 불편하다. 아내의 성화에 마지못해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갔다가 그만 잃어버린다. 그런데 평소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던 아내가 실은 만삭인 몸으로 인해 직장에서 잘렸고, 퇴직금 1,648만원 중 자신을 교수로 만들기 위한 자금을 남겨두고 잔돈으로 산 강아지라는 걸 알게 되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윤주도 현남의 도움으로 전단지를 붙이고 다닌다. 가해자였던 그가 입장이 바뀌어 피해자가 되었다. 강아지를 잃은 할머니는 결국 사망한다.
현남은 옥상에서 부랑자가 잡아먹으려고 묶어둔 윤주의 강아지를 발견하자 안고 도망친다. 쇠꼬챙이를 들고 뒤쫓아 오던 부랑자는 덩치 큰 현남 친구의 도움으로 붙잡힌다. 거주지도 일정치 않은 구치소에 가면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다면서 좋아한다. 어려운 주민들을 돕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현남은 중요한 서류 작성을 잘못했고 자리도 많이 비운다는 이유로 관리소에서 잘린다.
윤주의 아내는 남편을 교수로 만들기 위해 현금으로 채운 케이크 상자를 준비한다. 그걸 들고 지하철을 탄 윤주는 구걸하는 여인을 보고 고민하다가 상자를 살짝 들춰 만 원권 한 장을 빼내어 걸인에게 준다. 이게 봉준호표 영화다. 그는 우리네 인생사의 모순을 비웃으면서도 따뜻하게 안아준다.
이 시대의 표준이 되어버린 소시민적 남자. 옛날 서부영화 속 주인공처럼 당당히 불의에 맞서는 통쾌하고 멋진 남성은 이제 없다. 집단적 불행에 한숨지을 뿐 저항하는 발길질도 없다. 특히 봉준호표 영화는 소재 자체가 소외당한 계층을 다루고 있기에 그게 더욱 부각된다.
남자 주인공 윤주는 승자의 대열에 끼지 못한 남자다. 마누라 눈치나 보고 살며, 신경 거슬린다고 남의 집 개를 훔쳐내 죽이고, 아내와 하는 내기가 고작 휴지로 가게까지의 거리 재기를 하는 찌질한 행동만 한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은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완전히 부정하지도 못한다. 윤주는 이 시대를 대변하는 소시민적 남자의 표상이다. 반면 그 자신은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사회적 약자인 여주인공 현남은 자신보다 더 약한 자를 돕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영화에는 진정한 선인도, 진정한 악인도 없다. 그저 상반되는 요소들이 별 갈등 없이 공존하는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윤주처럼 나쁜 선택을 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사회에 산다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새삼스럽지는 않다.
봉준호의 가계는 화려하다. 외조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을 쓴 소설가 박태원 선생이며 부친은 한국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시각디자인과 교수를 지낸 봉상균 선생이다. 형은 서울대 영문과 교수, 누나는 중국 연성대 교수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부모가 미대에 진학할 것을 권했으나 전공은 부담스럽다며 연세대 사회대를 갔단다. 그런데도 결국 영화감독이 된 것을 보면 끼는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아티스트적인 면모와 엔터테이너적인 면모를 절묘하게 갖춘 천재다. 미국 어느 매체의 보도로 그의 가치를 재확인한다. “봉준호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송인자
『월간문학』 소설로 등단했다. 서초문인협회 총무, 한국문인협회 역사문학탐사연구위원,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며, 서초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사람 뒈지게 패주고 싶던 날』, 『기가 막히게 좋은 세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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