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마음이 만든 가상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 신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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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마음이 만든 가상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비가 와서 길에 떨어진 꽃잎을 보고 어떤 사람은 꽃이 벌써 다 떨어져 아쉽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낭만적인 꽃길이 되었다고 반응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일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를 다양한 사유 체계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불교의 관점으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개념을 통해 파악해볼 수 있다. ‘일체유심조’는 ‘일체는 오직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뜻으로, 당나라 유학길에서 깨달음을 얻은 원효의 일화는 한국 불교사 중 일체유심조의 결정적 장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체유심조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마음이 만든 가상이다. 그렇다면 세계가 마음이 만든 가상(일체유심조)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의 저자는 불교가 일체유심조를 말하는 이유를 가상을 실재로 여기는 오류를 타파하기 위해서라고 정리한다. 이는 생멸하는 현상 너머 불생불멸의 부처의 마음, 부처의 마음이 모든 중생에게 본래 내재해 있는 청정한 마음을 의미하는 진여심(眞如心)을 깨닫게 하는 기준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에서 일체유심조와 함께 ‘공적영지(空寂靈知)’를 강조하고 있다. 공적영지는 ‘텅 비고(空) 고요한(寂) 마음이 신령하게(靈) 자신을 아는 지(知)’를 의미한다. 공적영지는 중생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층 마음의 자기지(自己知), 즉 마음이 마음 자체를 스스로 자각해 아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 책이 공적영지를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행의 방법을 지시하는 개념이 아니라 수행과 무관하게 이미 작동하는 마음 활동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공적영지는 수행을 통해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며, 동시에 수행을 통해 깨닫고자 하는 것, 마음의 본성에 해당한다. 그리고 공적영지는 우리에게 인간이 표층에서는 서로 달라도 심층에서는 모두가 하나라는 것, 공통의 기세간에 함께 거주하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해주며, 이로부터 보편성의 윤리, 일심의 윤리, 자유의 윤리가 전개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1강 공의 세계’, ‘2강 연기의 세계’, ‘3강 수행의 세계’, ‘4강 일체유심조의 마음’, ‘5강 공적영지의 마음’ 총 다섯 강(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3강은 불교의 수행이 지향하는 해탈한 마음, 즉 부처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수행에 대한 고찰은 초기 불교의 무아, 공, 연기가 대승불교의 일심(一心)과 본각(本覺)으로 연결되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수행은 초기 불교와 대승불교가 하나의 불교, 즉 통합적 불교(회통불교)를 이루고 있음을 살펴보게 해준다.

2020년 봄 『BBS불교방송』의 유식(唯識) 강의를 정리·보강한 이 책은 강연의 생동감을 살린 문체로 작성되었다. 이는 강연의 현장감을 살려주는 동시에 자칫 딱딱하고 난해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철학적 개념들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는 다양한 도표, 그림, QR코드 등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구성은 이 책이 철학서를 넘어 독자의 사유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김선우|화요 열린 강좌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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