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참회|10분으로 배우는 불교

불교의 참회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


불교의 참회는 수행 중에 행한 잘못을 드러내고
그것을 고치려는 태도를 확립하는 것을 의미
일반적으로 잘못을 깨닫고 깊이 뉘우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참회’는 본래 불교 용어다. 기독교에서도 참회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책이나 공연 등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는데,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불교에서는 참회, 기독교에서는 회개 또는 회심이라고 사용한다. 참회와 회개는 유사한 종교적 행위이자 심리적 상태이지만, 각자의 역사적 배경과 종교문화에 따라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참회는 불교 경전의 번역 과정에서 만들어진 용어로서 ‘원망과 분노 없이 받아들인다’라는 의미를 지닌 범어 kṣama의 음역(音譯)인 참(懺)과 ‘잘못을 뉘우친다’라는 의미의 한자어 회(悔)가 합쳐진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참회는 현재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참회와는 의미가 다르고, 참회의 방법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거쳤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참회는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행동을 보인다. 불교의 참회는 수행 중에 행한 잘못을 드러내고 그것을 고치려는 태도를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는 사회적으로 용서를 받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고, 후자는 스스로 내면의 청정함을 되찾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초기 불교의 참회는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이것을 공동체 앞에서 공개하는 것’
부처님 재세 당시로 돌아가보면, 참회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에 수행자들이 함께 모여 계율의 조목을 읽으면서 누가 어떻게 계율을 위반했는지 점검하는 의식이었다. 이때 스님들이 자신을 돌이켜보거나 동료 스님의 지적을 받아 위반 사례가 확인되면 곧 대중 앞에 나아가 참회한다. 초기 불교의 참회는 대중 앞에서 또는 적어도 1명의 스님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을 말하는데,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이것을 공동체 앞에서 공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누군가 참회를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이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 후회와 죄책감을 느껴서 자신이 해를 끼친 상대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초기 불교의 참회법은 ‘해를 끼친 사람’에게 진정한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초기 불교의 참회에서는 피해를 준 상대방에 대한 사과보다도 부처님 또는 스승이나 동료 수행자에게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고 고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그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달리 말하면, 초기 불교에서는 잘못했음을 시인하고 그것을 고쳐서 다시 행하지 않는 것에 무게를 둔다. 이것은 잘못했음을 시인하고 상대방의 용서를 받는 것에 중점을 두는 상식적인 의미의 참회와는 다르다. 피해자의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초기 불교의 문화에서는 내 잘못으로 다친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얻는 것보다 그러한 행위를 했을 때의 내 마음가짐, 즉 청정하지 않은 마음에 빠져서 마음챙김을 하지 않고 옳지 않은 행위를 했을 때의 마음을 고치는 것이 더 큰 과제이다. 건전하지 않은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단속하기 위해 단속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어 공개하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그것을 동료 수행자가 인정해줄 때, 참회가 마무리된다.

미래를 위해 단속하고 자제하는 것이 불교 참회의 핵심…
참회는 이러한 반성과 청정함을 위한 것
불교 전통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예를 들어 앙굴리말라의 참회나 아소카왕의 참회에 관한 이야기들의 초점은 그들이 청정한 마음을 얻게 된다는 것에 있다. 그들이 자신의 잘못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을 찾아가 사죄를 구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반면에 기독교 전통의 이야기에는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것은 신에게 반드시 용서를 구하는 회개의 절차와 관련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회개의 과정을 통해 신과의 관계가 회복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바로잡는 일도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에 달려 있다.

초기 경전에서 참회의 뜻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어휘가 ‘pațikaroti’라는 말인데, 이것은 ‘(내가) 다르마를 어겼음을 고백하고 그 잘못을 시정합니다’라는 뜻이 있다. 잘못을 시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것은 다르마를 어기기 전의 청정함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강하다.

청정함은 불교를 대표하는 말이다. 붓다고사는 불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길을 청정함을 달성하기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불교의 수행자가 계를 어긴다는 것은 순수함에서 불순함의 길로 갔다는 것이고 그것을 고치고 다시 순수함으로 돌아오는 것이 참회이다.

불교의 참회가 타인에게 사과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후회하고 상대방의 아픔을 달래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더 나은 것으로 바꾸고 싶다면 사과만큼 좋은 일은 없다. 다만 사과를 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것이고 용서받고 나서 일시적으로 마음이 편함을 느낀다면, 불교의 참회가 요구하는 본래의 의미가 힘을 잃어버린다. 다시 말하자면 마음속에 깔린 업장이 정화될 기회를 잃고 만다. 그래서 초기 불교 또는 인도 불교문화에서 볼 수 있는 참회는 사과하는 것보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스승 또는 청정한 수행자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친 후 그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훌라야,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해 ‘내가 지금 몸으로 행했던 이 몸의 행위는 나도 해친 것이고 다른 사람도 해친 것이고 둘 다를 해친 것이다. 이 몸이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과보를 가져온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몸의 행위를 스승이나 현명한 동료 수행자들에게 실토하고 드러내고 밝혀야 한다. 실토하고 드러내고 밝힌 뒤 미래를 위해 단속하고 자제해야 한다. (『맛지마니까야』 61)

미래를 위해 단속하고 자제하는 것이 바로 불교 참회의 핵심이다. 이미 저지른 행위는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엎지른 물과 같다. 그리고 그 행위가 초래하는 과보는 피할 수 없다. 언젠가 인연이 무르익으면 내가 한 잘못된 행위의 결과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리석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시 행하지 않도록 내 마음가짐을 고치고 단속할 수는 있다. 이것이 참회의 목적이다.

“라훌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거울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비추어보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 마찬가지로 신체적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정신적인 활동을 할 때, 항상 지속적인 반조와 함께 행해야 한다.”

부처님은 지속적인 알아차림을 중요한 수행의 일부라고 강조하셨다. 불교의 참회는 알아차림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진심으로 반성하고 자기 생각과 행동과 말을 법(다르마)에 비추어보며 실제로 건전한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확인하는 행위와 의지다. 참회는 이러한 반성과 청정함을 위한 것이다.


문진건|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통합심리대 철학 및 종교연구소에서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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