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덕적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사무량심(四無量心)과 그 의미
제이 L. 가필드
본지 편집위원, 스미스 칼리지 철학과 석좌교수
모든 개인이 각자의 도덕적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착각
불교 수행에서는 더 나은 삶을 살고, 고통을 유발하기보다 완화하기 위해 허상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허상들은 많은 경우 우리가 진화해오면서 본능적으로 지니게 된 것이며, 불교 이론에 따르면 무시(無時) 이래로부터 우리 안에 존재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허상이 자연적이라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적인 정신 질환에 가까우며, 사성제 중 두 번째에서 말하듯 고통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허상 가운데 가장 심오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우리가 도덕적 우주의 중심에 서 있다는 착각이다. 이 허상은 주객의 이원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허상의 결과이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볼 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진 상태에서 세상을 인식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의 눈이 모든 것을 보지만, 막상 제 자신은 시야 밖에 있어 스스로를 보지 못하듯 말이다.
자신이 도덕적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인식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선택해
이런 식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우리는 자신을 세상에서 특수한 위치를 점하는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라고 여기게 된다. 우리가 주체이며, 다른 모든 것들은 단순한 객체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어떤 객체들은 우리 가까이, 어떤 객체들은 멀리 있으며, 일부에게는 다가가고 싶고, 일부는 피하고 싶어진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욕망하는 대상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이며 우리 행위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되거나, 반대로 우리가 거부감을 느끼는 대상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이며 마찬가지로 우리 행위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이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관점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왜 그랬어?”라는 물음에 많은 경우 “내 마음이지”라는 답변이, 혹은 “왜 그걸 샀어?”라는 물음에 “이게 좋아서”라는 답변이 충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개인이 각자의 도덕적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견해는 수많은 경제 이론에서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의 이익은 무시한 채 내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며, 이는 스스로의 이해관계만 챙기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더욱 강화한다.
사무량심은 더 이상 스스로의 안위나 고통을 행동의 유일한 이유, 심지어 주된 이유로도 삼지 않게 해
불교적 통찰은 우리 자신, 그리고 합리적 행동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거부하도록 가르친다. 불교 윤리학자들은 네 가지 신성한 심적 상태, 즉 사무량심(四無量心, brahmavihāra)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친애하는 마음(자무량심 慈無量心, maitrī), 소중히 여기는 마음(비무량심 悲無量心, karuṇā), 차별 없는 마음(사무량심 捨無量心, upekṣā), 그리고 함께 기뻐하는 마음(희무량심 喜無量心, muditā)을 일컫는다. 이러한 마음을 기르면 우리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진다. 사무량심은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중심 자체가 없는 도덕적 공동체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과 경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의존적임을 깨닫게 해준다.
친애하는 마음이란 서로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때 잘되기를 바라는 대상이 우리에게 특별히 가깝거나, 그들이 행복할 때 우리 기분도 좋아지기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그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잘되기를 바라고, 그들이 더 행복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벗이며, 우리가 모든 중생에 대해 그렇게 느끼고 행동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은 벗이 될 수 있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란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들의 고통이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닌 오로지 그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헌신하는 것이다. 이렇듯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모든 중생에 대해 갖게 되면, 바로 보살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위로 실현될 때에만 이 마음이 진정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차별 없는 마음이란 상대를 잘 알든 모르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우리에게 친절하든 친절하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가 대우받고 싶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다. 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이러한 태도를 잘 기른다면 일종의 평정심과 평온함으로 이어지며,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강한 애착이나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한 증오로 인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친애하는 마음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모두에게 넓힐 수 있게끔 해준다.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란 나 자신이나 친구, 가족뿐만 아니라 타인의 성공과 미덕을 통해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을 의미한다. 행복의 원천을 더욱 늘림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더 돕게 될 뿐 아니라, 스스로도 더욱 행복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마음가짐을 종합하면, 더 이상 스스로의 안위나 고통을 행동의 유일한 이유, 심지어 주된 이유로도 삼지 않게 된다. 우리는 상호 의존적인 행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그물망의 일부일 뿐이며, 모든 이들의 행복과 고통은 다른 모든 이들의 행복과 고통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또한 나만의 편협한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실은 아주 비합리적임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지혜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혐오를 줄여줄 수 있다. 이를 통해 비로소 고통의 뿌리를 끊어내게 되는 것이다.
번역|조연우
제이 L. 가필드(Jay L.Garfield)|피츠버그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스미스 칼리지 철학과 석좌교수이며, 본지 편집위원으로 있다. 이 외에도 하버드 신학대학원 불교철학 객원교수, 멜버른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Knowing Illusion: Bringing a Tibetan Debate into Contemporary Discourse』, 『Buddhist Ethics: A Philosophical Exploration』 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