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일본 조동종과 도겐의 선사상|일본 불교

현대 일본 조동종

김호귀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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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겐 선사

선종의 출현

기원전 5~6세기에 출현한 불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깨달음에 기반하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한 수행 방식으로 소위 선(禪, dhyāna)을 채택한 이래로 선은 불교의 보편적인 수행법으로 전승되어왔다.

불교가 기원을 전후로 중국에 전래된 이후, 6세기 초에는 보리달마(菩提達磨: 5~6세기)를 초조로 내세우는 중국 선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중국 선종은 8세기 초부터 인도 선의 면모와 다른 중국 선의 특징을 발전시켜갔다. 그것은 수행과 깨달음의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인도 선의 경우 오랜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성취라는 입장에서 전수(漸修)가 강조되는 선수후증(先修後證)이 강조되었다. 이에 비해 중국 선의 경우는 수행과 깨달음을 별도로 간주하지 않는 수증일여(修證一如)의 입장에서 돈오(頓悟)가 강조되었다.

이와 같은 중국 선의 역사에서는 9세기 중반부터 10세기 중반에 걸쳐서 소위 위앙종(潙仰宗),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의 선종오가(禪宗五家)로 분립하면서 다양한 선 사상 및 선 수행의 문화를 창출했다. 선종오가 가운데서 조동종(曹洞宗)은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와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과 운거도응(雲居道膺: 835~902) 등의 선풍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 널리 전승되었다. 한국 선의 역사에서는 10세기 전반기에 이엄(利嚴) 등 20여 명이 중국의 조동종풍을 수입해 한국 조동종의 역사를 전개했다.


일본의 조동종과 도겐

일본 불교는 6세기 전반에 공전(公傳)된 이래 나라 시대(710~794), 헤이안 시대(794~1183), 가마쿠라 시대(1183~1333), 무로마치 시대(1333~1573), 에도 시대(1573~1868), 메이지 시대(1868~ ) 이후 현대 불교로 이어지는 역사를 경력했다. 이 가운데 일본 선종의 역사는 중세 가마쿠라 시대 이후부터 비롯한다. 소위 종파 불교로 일컬어지는 가마쿠라 신불교 가운데는 정토종과 선종과 일련종 등이 크게 흥기했다.

일본의 선종은 임제종 에이세이(榮西: 1141~1215)가 입송(入宋)해 임제종 황룡파(黃龍派)의 선법을 전래했지만, 히에이산 불교의 반대로 말미암아 1198년에 『흥선호국론(興禪護國論)』을 저술해 선법의 정당성을 주창했다. 이후에 도겐(道元: 1200~1253)은 히에이산에서 불법을 공부한 후에 24세(1223) 때 스승 묘젠(明全: 1184~1225)과 함께 입송해 천동산(天童山)에서 수행했다. 거기에서 명전 스승이 입적하자, 경덕 선사(景德禪寺)의 장옹여정(長翁如淨: 1163~1228)의 문하로 옮겨서 신심탈락(身心脫落)을 경험하고 인가(印可)를 받은 후, 28세(1227) 때 귀국했다.

도겐은 교토의 건인사(建仁寺)에 주석하면서 『보권좌선의(普勸坐禪儀)』를 저술했다. 이어서 우치(宇治)의 안양사(安養寺)로 옮겨 『정법안장』의 「변도화(辨道話)」 대목을 저술했다. 37세(1236) 때 흥성보림사(興聖寶林寺)를 개산했고, 44세(1243) 때는 진언종 길봉사(吉峰寺)에서 수행했는데, 이듬해(1244) 7월에 대불사(大佛寺)를 개당했고, 1246년에는 영평사(永平寺)라고 개명했다. 대불사를 영평사로 개명한 까닭은 중국의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의 연호인데, 처음으로 불법이 전래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48세(1247) 8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7개월 동안 가마쿠라에 머물면서 이미 저술했던 『호국정법의(護國正法義)』를 강의하고, 집권 2년 차인 21세의 호조 도키요리(北朝時賴)에게 정법을 언급하며 천하를 버리라고 설법했다. 영평사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청규에 따른 엄격한 생활과 지관타좌(只管打坐)의 용맹정진을 독려했다. 54세(1253) 8월 28일에 입적했다.

도겐은 95권본 『정법안장(正法眼藏)』, 10권본 『영평광록(永平廣錄)』, 『영평대청규(永平大淸規)』, 『보권좌선의』, 『학도용심집(學道用心集)』, 『정법안장수문기(正法眼藏隨聞記)』 등의 저술을 남겼다. 이와 같은 도겐의 선법을 바탕으로 일본 불교의 조동종이 출현했다.

이후에 도겐의 조동종은 에죠(懷奘: 1198~1280)가 제2대 주지를 계승했다. 에죠는 15년 동안 주석하다가 제3대 주지를 기카이(義介: 1219~1309)에게 물려주었지만, 자쿠엔(寂圓: 1207~1299)과 기엔(義演: ?~1314) 등이 반대했다. 이후로 조동종 교단은 제3대 주지를 둘러싸고 50여 년 동안 혼란이 계속된 소위 삼대상론(三代相論)에 휩싸여 분열되었다. 그것은 도겐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계승했는가, 그리고 기카이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문제였다. 이후 기엔이 제4대 주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혼란은 지속되었다. 기엔이 1314년에 입적하자, 기운(義雲: 1253~1333)이 제5대 주지가 되었다. 기운은 도겐의 정통 선풍을 계승하고, 가람을 확장하며, 도겐의 60권본 『정법안장』을 편찬했다. 이후로 영평사는 분란을 씻어내고 중흥하게 되었다.


도겐 선의 면모

도겐 선 사상의 특징은 지관타좌라는 좌선을 중시하는 방법이다. 도겐이 좌선을 중시한 까닭은 좌선을 불법의 정문(正門)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도 깨달음의 미묘한 방법을 정전(正傳)했고, 또 삼세의 제불도 마찬가지로 좌선으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곧 부처님의 깨달음[正法眼藏]을 정전(正傳)하는 방법이 좌선이었다.

좌선의 역사에서 당(唐)의 조계혜능(曹溪慧能: 638~713)이 좌선을 일상의 모든 행위에서 해방시킴으로써 선을 깨달음의 종교로 규정했던 것에 비해, 도겐은 혜능과 달리 선을 좌선의 종교로 규정함으로써 선을 깨달음의 종교로부터 해방시켰다. 도겐이 좌선으로부터 깨달음을 해방시켰다는 것은 선에 있어서 깨달음이 불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좌선에다 깨달음의 분상에서 이루어지는 수행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의미다.

그 때문에 도겐은 “헤아려 알려고 하지 말라. 좌선은 깨달음의 모습이다. 깨달음이란 지관좌선(只管坐禪)일 뿐이다”고 말한다. 이로써 보자면 인도 및 중국의 선에서는 좌선을 ‘깨달음을 향한 수행’으로만 파악했음에 비해 도겐은 좌선을 ‘깨달음의 분상에서 이루어지는 수행’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도겐의 좌선 곧 지관타좌를 본증묘수(本証妙修)라고 말한다. 본증묘수란 이미 깨달아 성취된 상태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이러한 입장의 행위가 바로 지관타좌다. 오롯한 좌선의 행위가 그대로 깨달음으로 현성되기 위해서는 좌선 자체가 깨달음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좌선의 행위는 깨달음의 분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로서 본증묘수다. 지관타좌가 지관타좌인 까닭은 바로 본증묘수라는 본각문(本覺門)의 사고방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겐은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가 아닌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외도의 가르침이다. 불법에서는 수행과 깨달음을 하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수행이란 깨달음의 분상에서 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처음의 발심이 곧 본래의 깨달음 전체이다. 이런 뜻에서 수행을 해도 수행 이외에 달리 깨달음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수행하는 바로 그 자리에 깨달음이 현성하기 때문이다. 수행이 곧 깨달음이기 때문에 깨달음에는 끝이 없고, 깨달음이 곧 수행이기 때문에 수행에도 시작이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면모에 대해 또한 도겐은 “불도를 닦는다는 것은 자신을 닦는 것이고, 자신을 닦는다는 것은 자신을 잊는 것이다. 자신을 잊는다는 것은 만법을 증득하는 것이고, 만법을 증득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身心]을 탈락하고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身心]도 탈락시키는 것이다. 깨달음의 흔적에도 머물지 않고 머무름 없이 깨달음의 흔적을 계속 나타낸다”고 말한다.

도겐의 선풍에서 신심탈락(身心脫落)은 깨달음의 경험이기도 하고, 도겐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스승의 인가이기도 했다. 신심탈락이란 몸과 마음이 자유를 얻는 것으로 몸과 마음의 한계를 초월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탈락신심(脫落身心)이란 신심탈락된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도겐의 깨달음은 바로 지관타좌에 의한 신심탈락이다.  


김호귀|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한문불전번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선리연구』, 『선의 어록』 등이 있고, 『금강삼매경주해』, 『통록촬요』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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