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을 못하는
족쇄를 풀어내는 비결
- 『법구경』 속 출세간의 영웅 이야기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불교의 대웅(大雄), 번뇌의 족쇄를 풀어내다
“나는 이겼다!”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 꼬살라국의 빠세나디왕은 지나가다 우연히 이 기쁨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왕은 전후 사정을 알아보게 한 후 이유를 듣고 나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 바라문은 진정 위대한 영웅이다”라고 찬탄하며 그에게 큰 포상을 내렸고 그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인연담이 숨어 있을까요?
부처님은 세상의 모든 영웅 중 으뜸가는 대웅(大雄)입니다. 그러니 불자들 역시 당연히 대웅의 자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간의 영웅은 외부의 적을 이긴 존재입니다. 하지만 불교의 영웅은 내면의 적인 번뇌의 족쇄를 풀어낸 존재입니다. 세간의 영웅과 적에 대한 관점이 정반대입니다. 항상 내 앞을 가로막는 유일한 적, ‘번뇌의 모든 족쇄를 풀어내고 벗어나는 것’이 곧 대웅의 길이자 해탈입니다.
그 바라문은 ‘옷이 한 벌뿐인 자’라는 의미인 ‘쭐라 에까사따까’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바라문이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바라문 부부는 봄날 아름다운 꽃이 만개해도 함께 외출할 수 없었습니다. 옷이 한 벌뿐이니 서로 번갈아가며 옷을 입고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부부는 위대하신 부처님께서 마을에 방문해 법문을 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을 직접 만나 뵙고 법문을 듣고 싶었기 때문에, 아내가 먼저 법문을 들으러 가고 남편은 나중에 가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간절히 바라던 법회에 들어가자마자 마음에 큰 기쁨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법문을 듣고 나니 다섯 가지 환희심이 몸과 마음을 휘감았습니다. 그는 환희용약(歡喜踊躍)해 부처님께 예를 올린 후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옷 한 벌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이것을 부처님께 공양 올려야겠다!’
그러나 옷을 벗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옷을 공양하면 아내가 발가벗고 다녀야 하는데 괜찮을까?’
공양을 올리고자 하는 마음과 이에 대한 저항의 마음이 줄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초경부터 시작된 이 고민은 중경을 지나 말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는 평생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욕심과 신심이 싸우고 있는 동안 초경, 중경이 지나가버렸다. 이기심이 더 늘어나면 삼악도의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 옷을 지금이라도 공양 올려야겠다!’
그는 정성스레 공양을 올렸고, 이 때문에 그렇게 기쁘게 외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겼다!”
경험에 전념하고 몰입하는 마음 훈련,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금강경』은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안심(安心)을 회복할 수 있는 핵심 수행법으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강조합니다. 무주(無住)와 무상(無相) 그리고 보시(布施)가 합쳐진 이 수행법은 결정을 못 내리는 족쇄를 풀어내는 비결입니다.
중생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못해!’라는 마음입니다. 무시 이래 우리가 해탈하지 못하도록 지긋지긋하게 방해한 범인이 바로 이 중생상입니다. 중생상에 사로잡히니 용솟음치는 환희심으로 부처님께 공양 올리려는 선행의 마음조차 순식간에 불안해집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꺾이고 포기했던 것입니다.
이 중생상이라는 족쇄를 풀어내는 방법인 무주상보시를 자세히 설명한 것이 바로 『금강경』입니다. 무상(無相)-반야(般若)의 이치로 모든 고정관념을 극복하고, 무주(無住)-사띠(Sati, 깨어 있음)의 훈련으로 대상에 사로잡힌 마음을 깨어 있는 마음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무주상(無住相)-안심(安心)의 상태에서 보시(布施)하는 만행(萬行)을 실천한다면 자연히 경험에 전념하고 몰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무상한 진리를 수용하고 극락처럼 환희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수행 지침입니다.
족쇄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시간, 5초
‘못해!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익혀야 하는 핵심 습관 하나가 있습니다. 5초 안에 결단 내리는 습관입니다. 바라문의 두뇌는 공양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 후 5초가 넘어가는 순간부터 ‘관성’의 법칙에 지배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뇌는 변화를 거부하도록 온갖 합리적인 핑계를 만듭니다. 그 핑계 하나하나가 내가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됩니다. 이 족쇄를 최소화하고 중생상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골든 타임(golden time)은 5초입니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주된 범인은 내가 사로잡혀 머물러 있는[住] 나의 상(相)입니다. 서커스장에 있는 거대한 코끼리를 묶어두는 데 필요한 것은 힘없는 밧줄 하나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묶여서 학대당하며 자라난 코끼리는 충분한 힘을 갖춘 때에도 힘없는 밧줄 하나를 풀지 못합니다. 이것이 내 자유를 내가 묶은 상(相)과 주(住)의 진실입니다. 무주상(無住相)의 힘은 이 모든 부자유를 극복할 수 있는 핵심 원리이고, 이를 실천하는 데 주요 습관은 5초 안에 내리는 결단입니다.
바라문에 대한 일화는 『법구경』 116번 게송에 대한 인연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불자와 중생에게 다음과 같이 간절히 조언합니다.
“선행은 서두르고 악행은 억제하라. 선행을 더디게 하면 악행을 즐기는 마음이 일어난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것인가, 못한다는 중생상에 묶일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5초 안에 이루어집니다. 나를 이기고 해탈로 나아가 대웅이 되는 비결은 결국 이 작은 습관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결정을 못하는 습관 때문에 불안하다면 마음속으로 외치세요!
‘5, 4, 3, 2, 1 할 수 있다!’
어떤가요? 지금 당장 수행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원빈 스님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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