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곧 모든 것, 모든 것이 곧 하나, 구례 오산 사성암|암자 기행

작은 절, 큰 믿음

구례 오산 사성암 


네 스님이 있었다. 물러설 곳도, 한 걸음 내디딜 곳도 없는 산봉우리 벼랑이 네 스님들의 거처였다. 생사 투탈. 오직 그것을 위해 정진 또 정진할 따름이었다. 드디어 네 스님 모두 본지풍광을 보았다.

이른 아침, 네 스님이 모였다. 하산을 앞두고 작별 인사를 겸해 한마디씩 일렀다. “나는 이제부터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며 노래하고 춤출 것이오.”

가장 연장자인 스님이 말했다. 스님은 손가락으로 벼랑을 가리켰다. 바위에는 ‘약사부처님’이 새겨져 있었다. 어제까지도 없던 모습이었다. 스님의 손가락은 바위에 긁힌 듯 깊이 파여 있었다.

“하나가 곧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이 곧 하나입니다. 모든 중생은 다 평등합니다.” 두 번째 스님의 말을 들으며 네 스님은 서로를 응시했다.

“이 국토가 곧 만다라인즉, 헐고 모자란 곳에 절과 탑을 세워 이 땅의 태평을 빌 것이오.” 때마침 산 위로 솟은 태양이 만물을 저마다의 모습 그대로 빛나게 했다.

“시내에 발을 씻고, 산 바라보며 눈을 맑게 할 뿐입니다.”
산을 내려온 네 스님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지리산 남쪽 구례 들판을 지나 섬진강을 건너면 오산(鰲山, 531)입니다. 산의 형 상이 자라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둥그런 형상과 달리 정수리는 바위로 이루 어져 있습니다. 그 바위의 벼랑에 제비집처럼 앉은 암자가 ‘사성암(四聖庵)’입니다.


사성암은 544년(백제 성왕 22) 인도 스님인 연기 조사가 창건해 ‘오산암’이라 불 리다가 원효(617~686), 의상(625~702), 도선(827~898), 진각(1178~1234) 이렇게 네 스님의 수행처가 된 후 사성암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네 스님은 함께 수행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네 스님의 가상 대화를 상상해봤 습니다. 대화의 공통점은 ‘지금 이곳’을 사람들이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것 이겠지요. 그 세상을 정토라 칭하든 불국토라 부르든 그 또한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성암 바위 벼랑의 약사여래입상(전남 유형문화재 제220호)은 원효 스님이 손가락으로 새겼다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조각 기법으로 보아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므로 원효 스님이 새겼을 가능성은 없지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생의 모든 병고를 나의 것으로 여기는 약사여래, 천촌만락 을 누비며 대중들과 함께한 원효 스님의 마음만으로 충분합니다. 『화엄일승법계도』를 우리에게 남겨준 의상 스님의 화엄사상, 절과 탑으로 이 땅을 평안케 하고 자 한 도선 스님의 사탑비보(寺塔裨補), 지눌 스님으로부터 이어받은 진각 스님의 수선결사(修禪結社). 모두 이 세상을 부처님의 땅으로 장엄하려는 원력입니다.

오산 사성암 바위 부처님께 기대면 눈 아래로 지리산과 구례 들판 그리고 섬진 강이 내 몸속으로 스며듭니다. 하나 안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 안에 하나가 있습니다.

글|윤제학, 사진|신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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