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보살핌에 관한 아름다운 세 권의 책
정여울
작가
어떤 경제적 보상도 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 중의 대표 격은 바로 ‘돌봄 노동’이다.
집안일을 비롯한 살림뿐만 아니라 아픈 사람을 돌보고, 가족 중에서 신체적 불편을 겪는 이를 끊임없이 보살피고 간병하는 일은 주로 여성들에게 맡겨진 일이었다.
최근에는 돌봄에 관한 아름다운 책들이 많이 나와 돌봄 노동이 얼마나 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돌보는 자’를 돌봐야 하는 시간, 돌보는 사람이 겪고 있는 수많은 아픔과 절규에 귀 기울여야 할 시간이다.
1. 『어머니를 돌보다』
돌봄에 필요한 에너지는 아름다운 삶을 위한 에너지와 같아
모두가 꺼리는 노동이 있다. 나를 낳아준 부모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돌봐주는 노동. 부모의 소변과 대변을 챙겨야 하며 그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들어야 하며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모든 배려와 의학 지식을 동원해야 한다. 작가 린 틸먼은 무려 11년 동안 아픈 어머니를 돌보며 때로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연민에 눈물 흘리기도 하며, 마치 딸을 낳아 키우듯 병든 어머니를 돌본다. 이 책에서는 어머니를 돌보느라 박탈당한 자유, 좌절, 분노, 짜증, 고통, 죄책감, 불안까지도 빠짐없이 기록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돌봄’이라는 단어를 결코 쉽게 쓸 수 없게 만든다.
저자는 “노인 환자는 특히나 의학계에서 가망이 없는 짐짝으로 여겨진다”는 냉혹한 진실을 마주하며, 어머니의 몸을 구석구석 씻겨드리고, 어머니의 푸념을 들어드리고, 어머니의 모든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분투한다. 기억상실을 겪으며 자꾸만 가방이 없어졌다고 걱정하는 어머니, 딸에게 죽고 싶다고 말하는 어머니, 한 번도 딸이 원하는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지 않았던 어머니, 죽어가는 어머니, 그러나 아직은 살아계시는 어머니,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어머니, 가끔은 제정신이 돌아오는 어머니. 그 모든 어머니가 내 어머니임을 받아들이고, 보살피고, 보듬는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한 번씩은 마주해야 할 삶의 진실을 가차 없이 대면하게 만드는 책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라.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세심한 주의력, 경청하는 태도(당신도 경청해야만 한다), 진심 어린 숙고, 솔직함, 성실함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아름다운 돌봄에 필요한 에너지는 곧 아름다운 삶을 위한 에너지와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의 돌봄을 통해 살아 있고, 숨 쉬고, 사람다워지기 시작해, 세상을 떠날 때도 누군가의 돌봄에 의지해 사라져간다. 돌봄은 부수적인 노동이나 그림자 노동이 아니라 삶의 가장 절실한 필수조건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2. 『돌봄과 작업』
일을 계속하면서 돌봄이라는 무게를 지탱하는 여성들
이 책의 부제는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이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내면서 동시에 아이를 돌보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 책은 수많은 여성 창작자들의 돌봄 노동과 동시에 ‘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과정을 마치 오색찬란한 퀼트처럼 아름답게 보여준다. “양육 이야기 없이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이해가 가능하다고? 말도 안 된다”(과학자 이소연)는 문장은 가슴을 울린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돌보고 보살펴온 소중한 사람들의 노동으로 지탱되어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을 쓴 정서경 작가는 출산과 양육 이후로 “진짜 사랑이 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번역가 홍한별은 ‘아이들은, 아이들이 자라서 된 모든 어른은, 세상의 모든 여리고 약한 자들은 가엾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아이를 낳으면서 내 신체의 일부를 내어주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 삶의 일부를 내어주는 여성들은 ‘돌봄’이라는 단어가 지닌 엄청난 삶의 무게감을 매일 절감하며 살아간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보살피는 시간과 내 일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 매일 부딪힌다면. ‘나의 시간’은 거의 없고 오직 돌봄의 시간, 보살핌의 시간만이 일상을 가득 채운다면 자신의 일을 계속하면서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모든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이 책은 따스하고 다정한 언어로 위로해준다.
3. 『사랑의 노동』
자신을 돌보면서 남을 돌보는 강인함 길러야
돌봄 노동은 그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문화적 가림막’으로 은폐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한사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뿌리 깊은 문화적 가림막을 걷어내고, 돌봄 노동이 과연 얼마나 사회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커다란 성과다. 작가는 돌봄 경제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는 문화를 비판하면서 “돌봄의 관계에 흐르고 있는 시간, 관심, 공감, 존중, 신뢰, 존엄, 호혜, 연대”를 주목한다. “지겹도록 신화화되는 것과 달리, 돌봄은 성인이나 천사나 영웅의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가슴을 울린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신화화되는 가정의 돌봄, ‘헌신과 봉사’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신화화되는 사회적 돌봄. 그 모두가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못하다. 아무리 ‘온라인 활동’이 수많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 할지라도, 돌봄은 여전히 오프라인 활동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몸이 불편한 환자를 씻기고 먹이는 일, 그들의 침구를 갈아주고, 방을 청소해주는 일은 온라인으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손잡아주기, 지켜보기, 기다려주기는 어떤가. 그 모든 것이 돌봄이다. 관심과 배려의 시선을 놓치지 않은 채 항상 그들의 의견을 경청해주는 것이야말로 돌봄의 핵심일 수 있다. 반드시 곁에 있어야만 가능한 이런 일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는 공동체 자체가 해체되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을 공동체는 물론 핵가족마저 해체되어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내가 아플 때 과연 누가 나를 돌볼 것인가’라는 절박한 문제가 더욱 절박해진다.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자기를 돌보는 기술이 필요하다. 안색이 왜 그런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물어보는 가까운 가족이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내가 더더욱 나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나 자신을 향한 책임감과 돌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남을 돌보느라 지쳐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자신을 돌보면서 남을 돌보는 강인함을 길러야 한다. 나를 돌볼 때는 강인하고 씩씩하게, 남을 돌볼 때는 부드럽고 너그럽게.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때로는 저마다 나를 돌보는 것이 너무도 어렵기에, 돌보는 사람을 돌보는 또 다른 타인이 필요하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제도의 도움이 필요하고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낯선 타인의 도움도 필요하다.
더 케어 컬렉티브의 『돌봄선언』(니케북스, 2021)은 코로나 시대 이후 사회적인 돌봄이 더욱 절실해진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난잡한 돌봄’이라고 선언한다. 이것저것 따지는 합리적인 돌봄이 아니라, 무조건적이고 무목적적이고 앞뒤를 가리지 않는 난잡한 돌봄이야말로 세상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이런 ‘무차별적인 돌봄’을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중생을 향한 자비’가 아닐까. 예전에는 ‘자비’라는 낱말만 돋보였지만 지금은 ‘중생’이라는 낱말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자비의 대상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중생인 이유는, 중생이 그 누군가를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 없이, 설령 그가 밉고 나쁜 사람일지라도 상관없이 사랑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자비’의 반대말은 어쩌면 ‘각자도생’이나 ‘무관심’ 같은 단어가 아닐까. 중생을 향한 자비는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냉혹한 시대 인식에 맞서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기도 하다. 각박한 이 세상을 이 돌봄의 의지로 맞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이 아니라 만인의 만인을 향한 돌봄의 세상으로 만들고 싶다. 천 개의 손으로 중생의 아픔을 보살피면서도 항상 내 사랑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천수보살처럼. 내 안의 천 개의 손을 뻗어 세상에 가닿을 수 있는 무차별적인 자비의 꿈이 우리 마음속에 더 오래, 더 널리 싹트기를.
정여울
KBS라디오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살롱드뮤즈> 연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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